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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구심 짙어지는 정부 'ISD' 대응능력
'다야니 패소' 취소소송…비전문가 금융위가 주도…"승소가능성 희박"
2018-07-04 19:19:37 2018-07-04 19:19:37
[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해외투자자가 제기하는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 능력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ISD 소송에서 처음으로 패한 이란의 다야니 가문의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합병건을 무효로 되돌리기 위한 취소소송에 나섰지만, 배상금 지급을 미루는 '시간끌기용'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한국 정부에 ISD를 제기한 소송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해외투자자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4일 국제연합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중재판정부의 지난달 판정에 대해 영국중재법상 취소 사유가 있다고 판단해, 영국 고등법원에 중재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지난 2010년 4월 이란 다야니 가문이 자신들의 싱가포르 회사 D&A를 통해 대우일렉을 매수하려다 실패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다야니는 계약 보증금 578억원을 돌려 달라고 했지만, 대우일렉 채권단은 계약 해지의 책임이 다야니에 있다며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다야니는 ISD에 제소했으며, 지난달 6일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중재판정부는 매각 과정에서 채권단의 잘못이 있었다며 다야니에 계약 보증금과 반환 지연 이자 등 73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정은 외국 기업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한 ISD 소송에서 첫 패소한 사례였던 만큼 정부의 대응에 이목이 집중됐다. 정부는 "다야니가의 중재신청은 한국정부가 아닌 채권단과의 법적 분쟁이므로 한·이란 투자보장협정상 ISD 대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또 "채권단 대표인 자산관리공사(캠코)는 대한민국 국가기관으로 볼 수 없고, 캠코의 행위가 대한민국에 귀속된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반박했다.
 
국가 대상이 아니므로 중재판정부가 관할을 갖고 있지 않고, 당사자들이 사전에 합의한 중재지가 영국이기 때문에 해당 소송은 영국 법원이 관할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다. 영국 법원은 중재판정부가 다야니가의 신청에 대해 관할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판단하게 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당초 이번 ISD 소송이 성립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법적 대응에 나섰다"며 "취소 소송이 받아들여지면 중재판정부의 판정은 없던 일이 되고, 배상금도 물어내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취소소송에서 우리 정부가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단심제인 ISD에 대한 취소소송은 국내 재판의 '항소'가 아니라 '재심'의 의미를 갖는다. 취소소송은 판정에 중대한 하자가 있거나 중재판정부가 적법하게 구성되지 않았을 경우 하는데, 사실상 이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ISD 판정에 대한 취소소송이 수용된 사례가 극히 드문 것도 그 때문이다.
 
이에 따라 ISD 소송에 대한 정부의 대응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당장 ISD 대응조직 구성의 적절성이 논란이다. 다야니가 ISD 소송은 금융위가 주무 부처인데, 금융위는 국제 통상 및 소송 전문기관이 아니다. 정부 부처간 협업이 부실한 가운데 '중재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무조건 비밀주의를 고수해온 태도도 도마위에 올랐다.
 
법조계 관계자는 "왜 졌는지 등에 대한 정보는 패소 판정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 뚜렷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며 "잘못된 판단에 근거해 취소 소송에 나서는 것이라면 또다시 국민혈세만 낭비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앞으로 줄줄이 이어질 ISD 소송에 악재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정부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제기한 ISD 연내 판정을 앞두고 있으며,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도 우리 정부를 상대로 ISD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의 다른 관계자는 "별개의 사건으로 재판부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단정할 수 없지만, 론스타 재판의 경우도 당초 우리 정부가 100% 승소한다고 자신했었지만, 승소 확률이 절반으로 떨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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