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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10년 적폐'도 청산 못하고 어찌 역사 운운할까
2017-10-11 06:00:00 2017-10-11 06:00:00
정치보복이라고 한다. 참을 만큼 참았으니 적극 대응하겠다고 한다. 퇴행적 시도이며 국익을 해친다고 한다. 적폐청산에 대한 이명박 진영의 반응이란다. ‘가장 도덕적인 정권’을 자임했던 이들이니 그들의 공언처럼 자신 있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진심으로 이들이 어떤 반론과 증거를 제시하는지 지켜볼 생각이다. 특히 ‘국익’과 ‘퇴행’을 언급한 부분에 주목한다.
 
하긴 이들 정권에서 비롯된 언론장악의 결과 지금까지 공영방송의 수뇌부를 장악한 이들이 언론의 자유와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운운하고 있으니, 그들을 조장하고 보호한 주역들에게 어찌 할 말이 없을 것인가. 하나, 지록위마와 곡학아세의 주역들을 통해 견강부회와 적반하장이 다시 시현되는 것을 보니 그저 아연할 뿐이다.
 
사람에게도 품격이 있듯, 나라에도 품격이 있다. 그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어떤 품격을 갖추게 되었을까. 그리고 시민들이 촛불로 탄생시킨 현정권의 품격과 그들의 품격은 어떻게, 얼마나 다를까.
 
한 사람은 사익을 불리고 지키기 위해 국가기관을 동원한 흔적들이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다른 한 사람은 사적 인연을 통해 국정을 농단한 혐의로 탄핵되고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대체 어떤 민주국가의 공직자가 이보다 더 역사를 퇴행시키고 국익과 국격을 해쳤을까.
 
공통점도 있다. 자신과 다른 입장과 생각을 가진 이들을 적극적으로 사찰하여 그들의 삶을 파괴했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한 것이다. 민간인 사찰이 그렇고 블랙리스트가 그렇다. 불온서적까지 지정하여 생각을 통제하려 들었고, 정보기관을 동원하여 각종 더러운 짓에 돈을 뿌렸다. 역사의 퇴행과 국격의 추락, 국익의 훼손은 이런 데에 붙이는 말이다.
 
게다가 정권에 붙어 일신의 영달을 도모한 자들은 전문지식을 앞세워 더러운 시도에 합작하고, 그 과정에서 쏠쏠한 이득과 자리를 챙겼으니 반민주정권의 부역자라는 비판을 피해갈 도리가 없다. 4대강 사업과 종편 출범을 감싸던 갖은 궤변의 기억도 생생한데, 비극적으로 떠난 전 대통령 모독을 자문한 심리학자까지 있다는 소식은 참으로 인간의 본질을 회의하게 한다.
 
우리 현대사의 가장 부끄러운 흔적은 누가 뭐래도 친일과 독재가 남긴 유산과 오물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70여 년 전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한 회한을 지금도 거듭하면서, 당장 10년도 되지 않은 일을 그것도 적법한 절차와 정당한 과정을 통해 정리하고 청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역사와 정의를 운운할 수 있을까.
 
2002년, 친일청산을 위한 시민사회와 학계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포함한 친일파 명단 발표가 이루어진 시기가 있었다. 당시 ‘보수’와 ‘자유주의’를 신봉한다던 자칭 우익논객들은 그러한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 법적 도덕적 근거까지 운운하며 억지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박한용 선생은 친일청산을 반대하는 10대 궤변을 정리했다. 과거를 잊자는 ‘망각론’, 모두가 친일을 했다는 ‘공범론’, 한때의 친일로 한 사람을 매도하지 말자는 ‘공과론’, 친일파를 오히려 수난을 감내한 사람으로 떠받드는 ‘순교자론’, 친일청산을 주장하면 빨갱이라는 ‘색깔론’, 막강한 권력의 의도에 연약한 개인이 저항하기엔 무리였다는 ‘호구책론’,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꿈을 이루려 노력했을 뿐이라는 ‘직분충실론’, 이제 와서 거론하는 것은 죄 없는 후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라는 ‘연좌제론’, 국력을 소모하는 불필요한 담론이라는 ‘국론분열론’, 그리고 ‘정치적 음해론’이 그것이다.
 
오늘, 수십년 쌓인 적폐의 주역과 그 부역자들이 내뱉는 언사 또한 15년 전의 궤변과 들어맞는 건 분명 이유가 있다. 주권자의 뜻을 모아 제대로 된 성찰과 정리가 필요한 이유도 선명히 드러난다. 저들은 항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어떤 궤변도 마다하지 않고, 어떤 악행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부끄러운 조상이 남긴 유산을 스스로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 언젠가 다시 권력을 쥐게 되면 또다시 더러운 역사를 이어갈 것이라는 점 등이다.
 
더러움을 지워내지 않고, 오염의 원인을 없애지 않고 새로움과 반짝임을 바랄 수는 없다. 자가용 차량의 작은 흠집과 오물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어찌 더러운 권력이 남긴 저 깊은 상처를 방치한단 말인가.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겪었다. 이제는 털어낼 때다.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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