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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사람)“북디자인은 교류하고 교감하는 것”
중국 출신 세계적인 북디자이너 뤼징런, 한국 첫 특별전 열다
2016-09-29 06:00:00 2016-09-29 06: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지난 23일 세계적인 북디자이너 뤼징런(69·Lu Jing Ren) 청화대 교수를 만나기 위해 찾은 경기 파주출판도시 ‘지혜의 숲’에서는 전시 준비가 한창이었다. 늦은 저녁 시간이었음에도 뤼 교수는 직접 제자, 스텝과 함께 책을 진열하고 있었다.
 
전시장 곳곳에는 아크릴상자 안에 배치되지 못한 책들이 여전히 분주한 상황임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뤼 교수는 여유가 있었다. 미소를 잃지 않고 주변인들을 챙겼다. 인자함과 따뜻함이 전시장 공간을 가득 채워갔다.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북디자이너 뤼징런. 그는 이미 중국에서는 북디자인계의 물길을 바꿔놨다고 평가 받는 인물이다. 1978년 31세에 베이징 청년출판사에 입사해 문학 삽화를 그렸던 그는 1989년 42세의 나이에 일본 스기우라 고헤이를 만나 북디자인 외길 인생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중국에서 표지 장식에만 머물렀던 책들을 글자부터 내지, 전체적 기획까지 모두 바꾼 선구자가 된다. 독일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도 여러 차례 선정된 바 있는 그의 작품들은 현재 세계 출판인들의 주목을 한눈에 받고 있다.
 
이번에 뤼 교수가 준비한 전시는 한국에서의 첫 특별전으로 공식 명칭은 ‘전승과 창조-뤼징런 북디자인과 10명의 제자전(9월24일~10월23일)’이다. ‘파주 북소리 2016 행사’의 부대행사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그와 제자들이 만든 책 1000여권이 전시된다.
 
전시 준비를 어느 정도 끝낸 뤼 교수를 근처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이번 전시의 소감부터 한국과 중국의 북디자인에 대한 생각, 향후 계획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털어놨다.
 
먼저 한국에서의 첫 특별전을 파주에서 열게 된 소감을 물어봤다. 책과 디자인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도시에서 전시를 열게 된 것에 깊이 감사한다고 했다.
 
“파주는 2005년 동아시아출판인포럼 참석을 계기로 처음 왔었습니다. 당시 책의 유토피아 같은 곳이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책을 주제로 도시를 짓는다는 것은 중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거든요. 이후 매년 1~2차례씩 방문했고 한국엔 책과 디자인을 사랑하는 독자와 출판인이 굉장히 많다는 점에 깊이 감동했어요. 제 특별전을 이곳에서 열게 돼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한 만큼 한국의 북디자인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중국보다 앞선 현대적 감각을 높이 산다고 평가했다.
 
“한국과 중국은 한자권의 나라로 서로 문화상의 이념이나 언어상의 구조, 표현 방식 등에서 유사성이 있습니다. 자연 친화적인 흐름 속에 유교 교육적인 이념들도 담겨있어 함축적이고 따뜻한 디자인들이 나타나죠. 하지만 한국은 중국보다 한 발 먼저 서양권 문화를 받아들였어요. 전통에 현대인적 개념을 적용해 새로운 것으로 응용해내는 능력이 중국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눈여겨보는 대표적인 한국의 북디자이너로는 정병규와 안상수, 안지미 등을 꼽았다. 전통과 현대의 공존 개념을 책 속에 뛰어나게 구현하고 있는 인물들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들의 작품은 한자문화권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간직하면서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기능성과 탐구성을 갖춘 작품들이 많아요. 최근에는 독립출판사들을 돌아다니면서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들도 관심 있게 보고 있는데요. 전통에 기초해 한국만의 창조력을 뛰어나게 구현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는 자신의 북디자인에 있어서도 중국의 고유 전통을 계승시켜 현대적으로 창조하는 개념을 적용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주제도 ‘전승과 창조’다.
 
“제가 한국에 오면서 창의적이고 독특한 디자인적인 사상들에 영감을 받듯이 중국의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책들을 한국에 알려보고 싶어요. 양국이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부족한 점을 발견하면 동양문화권 전체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한국과 중국이 제 전시로 출판 역사를 교류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이 전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뤼 교수는 불혹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교류의 중요성을 몸소 체험한 경험이 있기도 하다. 그를 오늘날의 뤼징런으로 만들어 준 뒤에는 일본의 디자인 거장 스기우라가 있었다.
 
“스승님은 제게 훌륭한 북디자이너는 책의 겉모양만 꾸미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줬어요. 시각적인 정보가 페이지에 살아 숨쉬고 종이의 오감적 여음이 책을 넘길 때마다 살아있어 독자들의 정서를 물들여야 한다는 것을요. 교류가 아니었다면 얻을 수 없었던 것들입니다.”
 
앞으로도 뤼 교수는 세계를 오가며 다양한 교류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내년 1월에는 미국에서 개인전을 열게 되고 중국에선 제 북디자인 활동 4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를 할 계획입니다. 아직은 부끄러운 실력이지만 디자이너뿐 아니라 편집자, 작가들이 제 전시로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란 개념에 대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북디자인은 끝없이 교류하고 교감하는 것이니까요.”
 
중국 출신 세계적 북디자이너 뤼징런. 사진/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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