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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안전경영 정보공개는 위험관리의 사회적 지혜
2016-07-25 06:00:00 2016-07-25 06:00:00
국제노동기구(ILO)'노동안전보건을 위한 세계의 날'을 정한 건 2003428일이다. 이 기념일 제정은 19935월 태국의 케이더(Kader)라는 장난감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에서 유래한다. 케이더는 '심슨 가족' 인형을 만들던 기업이었다. 사업주는 노동자들이 물건을 빼돌릴 가능성을 우려해 외부에서 공장문을 잠그고 외출했고, 그 사이 화재가 발생해 188명의 젊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중 174명이 여성노동자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제자유노련의 각국 대표자들은 1996428일 유엔 지속가능발전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노동자들이 병들고 사망하는 산재사고의 현실을 외면한 채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한 일인가'라며 전 지구적인 해결을 촉구했다.
 
기념일 제정,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한다. 위험은 원청에서 하청으로, 하청의 하청으로 외주화 되고 있고, 유사한 유형의 사고가 동일한 기업에서 반복되고 있다. 기초적인 산업안전법 위반으로 인한 사고가 많아 전근대적이다. 이렇게 2015년도에만 9만명 이상이 산업재해(사고재해+질병재해)를 당했고, 사망자는 1800명이 넘는다. 정부는 재해율과 사망만인율이 지난해에 비해 감소했다고 발표했지만,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재사망 1위라는 불명예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기업이 생산한 제품과 서비스도 소비자들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기업 안전사고의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안전과 생명을 이윤이라는 경제논리의 발 아래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그랬고, 현재까지 701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3698명의 누적 피해자를 발생시킨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그렇다. 산재 측면에서는 인명사고를 유발한 기업에 형사책임을 묻는 이른바 '기업책임법' 도입 요구가 이어지고, 제품안전 측면에서는 '제조물책임법''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주장이 거센 이유다.
 
이런 국면에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국회CSR정책연구포럼의 지원 하에 올해부터 안전보건 등과 관련해 사고노출 위험성이 높은 산업군에 속한 12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사업장 안전과 제품서비스 책임 등 안전경영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구했다. 이른바 '안전경영정보공개프로젝트(SMDP : Safety Management Disclosure Project)'. 기업이 공개한 정보를 금융기관을 필두로 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기관·지역사회·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안전 관련한 최초의 프로젝트다.
 
현재 기업과 정부와 전문가 집단은 안전 관련한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고 있다. 시장과 시민사회 영역에서 유통되고 있는 정보는 지극히 제한적이고 파편적이다. 정보의 이러한 비대칭은 위험사회를 더욱 가속화 하고 구조화 시킨다. 그래서 현대 산업사회를 '위험사회'로 칭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정부와 기업이 이해관계자들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일을 위험관리의 사회적 지혜라고 역설한다. 정보공개는 위험에 대한 '사회적 제어력(통제력)'을 높이기 위한 전제적인 행위와도 같다.
 
사회적 제어력이라는 단어를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협치(協治) 즉 사회적 거버넌스(Goverance) 구축을 통한 안전 위험관리라고 보면 된다. 기업이 안전 관련 경영정보를 공개하는 건 이 협치를 위한 기본이다. 기업은 안전경영 정보를 정기적이고 상시적으로 공개함으로써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얻고, 특히 금융기관들의 장기투자나 대출을 받을 수도 있다. 사회책임투자자들은 기업의 지속가능성 평가에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을 고려하고 그 중 안전도 중요한 고려대상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3위 규모의 국민연금의 경우 ESG 평가지표로 보건안전 시스템, 안전보건 경영시스템 외부인증, 산재다발사업장 지정 등 산업안전을 고려하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지속가능금융센터, 서스틴베스트 등 기업 ESG 평가기관들도 안전 이슈를 고려하고 있다.
 
미국의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경영의 우선은 생존에 있으며, 기업경영의 기본원리는 이윤을 최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손실(loss)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안전경영(Safety Management)은 기본적으로 손실을 방지하거나 최소화 하는 위험관리(Risk Management). 따라서 비용(Cost)이 아니라 투자(Investment)로 봐야 하며, 실제로 선진국에서는 안전에 대한 제반 노력을 투자와 수입의 개념으로 인식한다.
 
안전경영은 곧 사람에 대한 투자이며 공동체에 대한 투자다.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는 그 존립 근거를 상실한다. 마찬가지로 이윤창출이라는 명분으로 근로자의 안전과 생명을 중대한 위험 속에 방치하거나 소홀히 하는 기업, 또 지역사회라는 공동체 구성원의 안전을 위협하는 기업도 그 존립 근거가 약하거니와 결국은 잃고야 만다. 살인적 독성을 가진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옥시는 조직적인 불매운동 등으로 한국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놓여 있다. 배기가스와 소음 시험 성적서를 조작한 환경부로부터 인증취소와 판매중단 예고를 받은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도 자사의 34개 차종 79개 모델을 725일 판매중단했다. 이달 말까지는 환경부의 인증취소와 판매중단이 확실시 될 전망이다.
 
두 기업은 제품안전을 포기한 대가로 한동안 많은 이윤을 얻었지만 지금은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있다. 돈만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기본인 신뢰와 명성도 잃었다. 게임이론을 차용하자면 두 기업은 '제로섬 게임(zero-sum game)'도 아닌 '마이너스 섬 게임(minus-sum game)'을 한 셈이다. 기업도 손해지만 사회도 심각한 손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안전경영'이라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철저히 방기한 결과다.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현명한 선택은 '플러스 섬 게임(plus-sum game)'밖에는 없다. 실패한 사회에서 혹은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비즈니스는 성공할 수 없다는 전제가 플러스 섬 게임의 기본철학이다. 상생의 정신이며 이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를 극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적인 지침인 ISO26000이 제시한 바처럼 기업은 비즈니스 전 과정에 걸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기대사항(expectations)을 고려하고 회사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교집합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가 대표적으로 왜곡했지만 다윈 진화론의 핵심은 경쟁의 격화 과정에서의 적자생존(適者生存)이 아니었다. 다윈은 '인간의 계보, 선택과 성의 연관성'이라는 책을 통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서로 돕고 단합하는 종들, 즉 협력을 잘하는 구성원들이 다수인 공동체가 잘 번창하고 가장 많은 수의 자손을 부양한다고 썼다.
물론 그렇다고 기업이 공동체의 이익만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기업의 일반적인 특성상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비즈니스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고 기대사항을 균형감을 가지고 고려하라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통을 해야 하며, 이 소통의 기본은 자신의 정보를 가급적 투명하게 공개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안전 문제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는 시장의 요구이기도 하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argos6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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