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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정부는 없었다
2016-06-26 16:37:13 2016-06-26 16:37:13
가습기 살균제 사건 수사가 마무리 국면이다. 늦게나마 유독성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기업 측과 엉터리 실험을 해준 대학교수가 줄줄이 기소되며 최소한의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피해자들이 입은 그간의 고통과 사회적비용에 비하면 이조차 '면피'에 가깝다. 이 혼란의 시기, 정부는 어디에 있었나. 
 
화학물질은, 그 위험성을 떠나 여전히 우리 도처에 깔려 있다. 안전보건공단 화학물질정보(MSDS)에 등록된 화학물질만 총 1만8587종이다. 이들 물질의 용도별 독성을 전부 안다는 것은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도 불가능하다. 소비자들이 슈퍼마켓에서 화학물질이 들어간 생활용품을 의심 없이 구매하는 것은 정부가 이에 대한 안전성을 관리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구멍 난 관리체제 하에서는 이 같은 믿음은 거둬들여야 한다. 화학물질을 원료로 한 생활용품에 대한 전수조사조차 이번이 처음이다. 무엇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보건복지부, 환경부 등 각 부처의 책임 떠넘기기와 이를 바라보기만 하는 청와대와 총리실의 조정 부재는 세월호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복지부는 2006년 원인 불명의 폐질환으로 어린이 사망자가 학계에 처음 보고됐음에도 2011년 11월에야 가습기 살균제 시판을 중지했다. 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가 꾸린 민관 합동 폐손상조사위원회가 제안한 컴퓨터단층촬영(CT) 촬영에 대한 예산을 지원하지 않아 조사가 지연된 일화는 유명하다. 폐 손상 원인이 감염병이 아닌 특정 화학물질로 규명되었다는 이유로 책임을 환경부로 떠넘겼다. 
 
환경부 역시 2012년 11월에야 환경보건위원회를 열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환경성 질환으로 지정할 지 여부를 심의했지만, 위원회 반대로 무산됐다. 피해가 대기, 수질, 폐기물 등 환경오염 때문에 발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환경성 질환으로 지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관련 부처가 국민생명을 놓고 핑퐁게임을 하는 사이 위험은 일상화가 됐다. 뉴스는 곧 잊혀지고, 진열대에서 치워진 옥시 제품들도 대중의 망각 속에 슬그머니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그렇게 국민안전은 또 다시 무방비 상태로 남겨진 것이 지난날의 교훈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등 특정 화학물질에 대한 특별법 마련 외에 화학물질 전반의 수입·제조·제품화·유통 등 각 단계에서 관리체계를 조율할 정부 기구가 절실해 보인다. 물론 이 기구에는 화학물질 관리뿐만 아니라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권한도 부여해야 할 것이다. 뒷북 대처라도 제대로 했음 하는 바람이다.
 
조승희 기자 beyon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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