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은수미 "해고 직면한 이들이 준 표의 의미에 답해야"
파견법이 실업대책이라는 건 말장난…구조조정에 무한책임 지겠다면 대책 나오기 마련
'돈의 시간'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을 위한 국회로 거듭났으면
2016-05-02 13:00:00 2016-05-02 14:25:25
[뉴스토마토 최한영기자] 지난 2월22일 테러방지법의 국회 통과를 지연시키기 위해 야당은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시작했다. 은수미 의원은 대표적인 '필리버스터 스타' 의원이었다. 10시간 18분의 연설을 마치며 은 의원이 “같이 살자. 어떻게 하면 화해하고 사랑하고 함께 할 수 있는지, 응원하고 격려할 수 있는지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한 호소는 글과 영상으로 회자됐다.

 

그러나 총선에서 경기도 성남 중원에 출마한 은 의원은 낙선의 쓴잔을 마셨다. 그는 지난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2040세대 청년층의 투표 참여 바람과 국민의당의 녹색바람 중에서 녹색바람의 마음을 얻는데 부족했다”고 선거 결과를 되돌아봤다.

 

아직 20대 국회가 개원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4년 후 21대 총선에 성남 중원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그 때까지는 '원외 정치인'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은 의원은 “아직 내 손에 쥐어진 도구(정치)가 전혀 쓸모없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그 도구를 사용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정치를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말 아니다’, ‘그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판단되면 그 때는 다른 길을 가야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20대 국회에 대해서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자기가 사는 것 이전에 우선 국민을 좀 살렸으면 좋겠다. 그것이 총선을 통해 드러난 민심이고 국민이 준 기회를 입법부답게, 헌법을 수호하는 국회답게 쓰는 것”이라는 바람을 드러냈다.

 

- 재선에 실패한 원인은 어디에 있었다고 보나.

 

능력이 부족했다. 이번 총선에서는 두 가지 바람이 불었다. 청년층이 투표장을 많이 찾은 ‘파란바람’과 국민의당의 ‘녹색바람’이다. 지역구별 특징이 있는데, 파란바람이 세게 분 지역구가 있었고, 청년바람과 녹색바람이 함께 불었던 곳이 있었다. 성남 중원은 후자였다. 국민의당 지지율이 선거 한달 전 8%에서 선거 직전 20%대로 올랐다. 이것을 나에 대한 지지로 바꿔낼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필리버스터를 통해 전국적으로 더민주를 지지하는 표심에는 기여한 것 같지만 지역구에서는 부족했다. 내가 4만5000여표. 국민의당 후보가 2만여표를 얻었다. 그런 점에서 무능했다고 본다.

 

- 국민의당 후보에 단일화 제의는 하지 않았나.

 

국민의당에서 거절했다. 막판에도 만났는데, 안하겠다고 했다.

 

- 낙선 후 페이스북에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새누리당의 압승을 막은 것’이라고 썼다. 20대 총선에서 더민주가 원내 제1당으로 부상한 것이 의미하는 것은.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본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정치의 목적은 약자를 위한 것이다.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은 약자가 된다. 시민의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에게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본다. (더민주가) 약자를 위한 정치를 할지 혼란스러움 속에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주어진 기회를 어떤 식으로 쓸지가 중요하다.

 

- 총선 패배 직후 '4년 후 21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고 성남 중원 더민주 지역위원장으로 활동할 뜻을 나타냈다. 빨리 움직이는 이유는.

 

약속이자 신념이다. 나는 정치 외에 다른 길로 되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돌아갈 수 있는 둥지를 부쉈다. 그렇다면 시작은 중원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 의원은 지난 2월 27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중원은 대한민국의 슬픈 역사를 안고 있는 곳으로 임시 일용직이나 자영업자, 비정규직을 비롯해 사회적 약자도 많다. 계속해서 사회적 약자 편에 선 정치를 하겠다고 생각했고 그럴려면 지역도 대한민국의 고통을 안고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말로 중원 출마 이유를 설명했다)

 

- ‘노동권 회복과 재벌개혁, 청년을 위한 정치를 국회 밖에서 하겠다’는 말도 했다.

 

재선에 도전하면서, 다른 길을 가지 않고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쩌면 원외정치를 해야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원내·외를 가리지 않고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꿔내는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나는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는 습관이 있다.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그리고 만일 ‘이건 아니다’는 신호가 오면 멈춘다. 아직 그 신호가 안온 것 같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20대부터 가지고 있었고 한번은 사회운동을 통해, 한번은 연구자로서 했다. 세 번째는 정치인데 아직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계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 길이 희망이 있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나는 희망을 만드는 방법을 정치를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이다.

 

- ‘약자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강자에겐 한없이 단호한 진짜 정치를, 사람들을 춤추게 하는 정치를 할 방법이 원외에서라도 있을 겁니다’는 글도 올렸다. 구체적인 방법을 찾았나.

 

모르겠다. 사실 원내에서도 지난 4년 간 90% 정도는 길을 찾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50점짜리 정치인이라고 했던 이유는 당과 정치시스템, 제도를 바꾸고 국민과 소통하며 마음을 얻는 일을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필리버스터는 기적같은 일이었다. 국민들·지지자들과 '은수미라는 사람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을 했구나'라는 점에 대해 처음으로 소통이 된 것이다. 원내에서도 이런데 하물며 원외에서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다만 준비하는 것이다. 어떤 길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에서 “노동개혁법 중에서 파견법을 자꾸 빼자고 그러는데 파견법이야말로 일석사조쯤 된다”고 말했고,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정부의 구조조정에 대한 실업대책으로 ‘노동 4법’ 통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문제 전문가 입장에서 평가하자면.

 

말장난을 하고 있다. 사람 목숨을 앞에 두고 말장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구조조정의 이면은 대량해고다. 가장 책임이 없는 사람들부터 해고하는 것이다. 권리가 있는 곳에 책임이 있는데 그들에게 무슨 죄나 책임이 있었나. 이들을 6개월이나 1년 씩 고용하고 반복적으로 해고하는 파견법을 대책이라고 말한다. 파견법이 정말 일석사조인가. 말장난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대통령이라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며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고통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무한책임을 지겠다는 자세가 있다면 대책은 나온다. 고통을 없앨 수는 없지만 고통을 줄일 수는 있다. 그런데 이번 구조조정 과정도 그렇고 세월호 참사 때도 그렇고,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대통령이 수만명의 고통 앞에서 말장난 하는 것은 죄악이다. 무한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정부·여당과 야당까지 나서야 한다. 대량해고에 직면한 사람들도 이번 총선에서 투표했을 것이다. 투표한 국민에게 그들의 한표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답을 해야한다.

 

- 원외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여의도 정치를 바라보는 눈은 살아있을 듯 하다. 20대 국회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기회가 주어졌으니 자기가 사는 것 이전에 국민을 살리는 것을 먼저 했으면 좋겠다. 국민이 준 기회를 국회답게, 헌법을 수호하는 곳답게 썼으면 좋겠다. 사실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 19대 국회에서 나도 그걸 못했다. 20대 국회는 '돈의 시간'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을 위한 국회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힘든 일이기 때문에 매우 긴장하고 매우 분투해야 한다.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 정치인 은수미가 꿈꾸는 미래는 무엇인가.

 

아주 조금이라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불법과 불평등, 불공정 때문에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것이 줄어들 것이라는 신호를 만들어낼 수 있으면 사람들이 희망을 품지 않겠나. 지금은 힘들지만, 다음 라운드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 않겠나.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적어도 사람들에게 ‘세상에 도전할만 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는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누군가가 도전하고 날아오를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힘을 내겠다. 

 

은수미 의원은 파견법에 관한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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