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정부는 'AI 3대 강국 도약'을 국가 성장전략의 핵심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AI 고속도로 구축을 추진하는 동시에, 부동산에 쏠린 금융을 첨단산업과 혁신기업으로 돌리는 '생산적 금융'도 강조하는 중이다. AI 데이터센터 투자를 앞당기기 위해 인허가 간소화와 전력계통영향평가 특례 등을 담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산업 진흥에 관한 특별법'도 공포됐다.
글로벌 AI 경쟁은 이제 모델과 알고리즘 경쟁을 넘어 연산 자원과 전력, 통신망을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의 인프라 경쟁으로 옮겨 가고 있다. AI 투자의 성과를 아직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이 경쟁에서 빠질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선 것은 분명하다. 과거 반도체 투자처럼 장기간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는 점도 닮았다. 데이터센터 확충에 반도체와 철강, 석유화학 등 기존 산업의 전력 수요까지 겹치면서 안정적인 전력 확보가 산업 경쟁력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특정 발전원 하나로 감당하기는 어렵다. 이에 재생에너지 직접전력구매계약(PPA) 확대와 에너지저장장치(ESS) 확충, LNG 발전과 기존 원전의 계속 운전을 병행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소형모듈원자로(SMR)도 중장기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다. 정부가 수립 중인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전원 구성과 전력망 확충이 핵심 과제로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선택도 공짜는 아니다. 재생에너지는 전력망 보강과 저장장치·수요관리 등 계통 유연성 확보가 필요하고, LNG는 탄소 배출과 국제 연료 가격 변동의 부담을 안고 있다. 원전과 SMR 역시 안전성 검증과 방사성폐기물 관리, 지역 수용성이라는 과제를 풀어야 한다.
발전원을 확보하더라도 이를 수요지까지 전달할 전력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국회에는 대규모 전력 사용자가 전기요금을 미리 납부하면 할인 혜택을 주고, 한전은 해당 선납금을 전력망 확충에 활용하도록 하는 전기사업법·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전력망 수혜 기업이 투자비 일부를 앞당겨 부담한다는 취지는 검토할 만하다. 다만 선납 여력이 있는 일부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되지 않도록 할인과 비용 분담의 기준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데이터센터 입지를 둘러싼 비용과 편익의 배분도 문제다. 기업은 싸고 안정적인 전력을 원한다. 반면 주민에게 데이터센터는 소음과 열, 용수 사용, 특고압선과 변전소를 동반하는 기피 시설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우려를 단순한 지역 이기주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관련 법에 지역사회와의 협력과 상생을 위한 근거는 마련됐지만, 주민이 감수하는 부담을 줄이고 지역에 실질적인 편익을 돌려주는 방안을 사업 설계에 어떻게 담을지는 남은 과제다.
정책금융의 투자 판단에도 이러한 비용과 위험의 배분 구조가 반영돼야 한다. 특히 국민성장펀드의 인프라 투융자에서는 전력망과 용수시설 등 기반시설 비용과 사업 위험이 공공과 기업 사이에 적절히 배분됐는지를 따져야 한다.
데이터센터를 빨리 짓는 것만으로 AI 경쟁력을 확보할 수는 없다. 발전원과 전력망을 확보하는 동시에, 투자 속도를 뒷받침할 재원과 책임의 구조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AI 투자가 실질적인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려면 건설 속도뿐 아니라 그 비용을 산업계와 공공, 지역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분담하는 구조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지우 정책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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