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웃는 고래' 상괭이
2026-07-28 09:41:19 2026-07-28 14:58:33
이글거리는 한여름 무더위를 단숨에 식혀줄 시원한 바다 풍경을 찾아 부산 태종대 앞바다로 향했습니다. 푸른 파도가 절벽에 부딪혀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그곳에서, 아주 특별하고 가슴 벅찬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괭이갈매기 무리가 바다 표면을 향해 요란하게 소리치며 수면 위로 곤두박질치는 곳, 바로 그 아래였습니다. 은빛 숭어 떼가 검은 띠를 이루며 해류를 따라 이동할 때, 그 뒤를 맹렬하게 쫓는 매끄러운 검회색 등짝들이 보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어미의 숨바꼭질 같은 몸짓을 그대로 따라 하며 필사적으로 자맥질을 하는 어린 새끼가 그 곁에 딱 붙어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바다의 토종 고래, '상괭이'(East Asian finless porpoise) 모자였습니다.

상괭이가 숨구멍을 수면에 노출하고 유영하며 숨을 쉬고 있다.
 
상괭이는 고래목 쇠돌고래과에 속하는 해양 포유류입니다. 몸길이가 1.5~1.9m 정도로 아주 작은 고래입니다. 세계적으로는 크게 대만 해협을 중심으로 서식하는 '인도-태평양 상괭이'와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연안에 주로 사는 '동아시아 상괭이' 두 종류로 나뉩니다. 우리 연안에서 발견되는 상괭이가 바로 이 동아시아 상괭이입니다. 이 녀석들은 다른 돌고래들처럼 멋진 등지느러미가 없습니다. 대신 등을 따라 아주 낮은 능선만 뻗어 있어, 물 위로 살짝 떠 오를 때는 마치 매끄럽고 둥근 바위가 솟구치는 것처럼 보이지요. 얼굴을 정면에서 보면 입꼬리가 위로 쏙 올라가 있어서 언제나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을 '웃는 고래'라고 부르며 사랑해 왔습니다.
 
사실 상괭이라는 이름 외에도 이 녀석들은 아주 오랜 역사를 품은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이 고래를 '물 안에 사는 돼지'라는 뜻으로 '물아치' 또는 '물돼지'라고 불렀습니다. 조선 시대 정약전 선생이 흑산도 유배 시절에 쓴 어류학서 《자산어보》를 보면 상괭이를 '상광어(尙光魚)'라는 이름으로 기록하며 "빛깔은 검고 모양은 가축 돼지를 닮았다"고 아주 상세히 묘사해 놓았습니다. 옛날부터 우리 서해와 남해안 어민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바다의 동반자였던 셈입니다.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필자는 남서해안에서 배를 타고 나가면, 상괭이 무리가 배 꽁무니를 졸졸 따라오는 장면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왜 요즘은 통 눈에 띄지 않는 걸까요? 안타깝게도 지금 상괭이는 전 세계적으로 개체수가 급감해 국제멸종위기종(CITES 부속서I)으로 지정된 귀한 몸이 되었습니다. 해양수산부 역시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지요.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 바다에 수만 마리가 살던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최근 조사에서는 개체수가 수천 마리 수준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슬픈 통계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고래 사체의 대부분은 상괭이입니다.
 
상괭이 어미가 새끼를 데리고 부산 태종대 앞바다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상괭이의 개체수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주범은 인간의 어업 활동입니다.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안강망 같은 '폐그물'에 걸려 숨지는 '혼획' 피해입니다. 고래는 허파로 숨을 쉬는 포유류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 산소를 마셔야 합니다. 하지만 물고기를 잡으려고 쳐놓은 그물에 걸리거나 버려진 폐그물에 지느러미가 엉키면, 물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질식해 물숨을 쉬다 익사하고 맙니다. 여기에 더해 고속으로 달리는 어선이나 선박의 날카로운 스크류에 부딪혀 심한 상처를 입고 목숨을 잃는 일도 허다합니다.
 
여기에 상괭이 특유의 서식 습성 때문에 벌어지는 비극도 있습니다. 상괭이는 수심이 얕은 연안의 갯벌이나 모랫바닥 근처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서해안이나 남해안의 광활한 갯벌은 상괭이들에게 풍요로운 사냥터이지요. 문제는 밀물 때 물고기를 쫓아 깊숙한 갯벌 안쪽까지 들어왔다가,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립되는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서·남해안은 조수간만의 차가 워낙 크고 물이 채 가시기 전에 수심이 급격히 낮아지기 때문에, 미처 방향을 잡지 못한 상괭이들이 그대로 갯벌 한가운데 갇혀 햇볕에 말라가거나 호흡 곤란으로 생을 마감하곤 합니다.
 
바다 위에서 상괭이를 찾고 싶다면 하늘을 봐야 합니다. "괭이갈매기가 바다 위에 유독 많이 모여 앉아 있거나 낮게 비행하는 곳에 상괭이가 있다"는 어민들의 오랜 지혜는 과학적인 사실입니다. 상괭이가 물밑에서 숭어나 전어 같은 물고기 떼를 수면 쪽으로 몰아붙이며 사냥을 시작하면, 놀란 물고기들이 물 위로 튀어 오르고, 이때를 놓칠세라 괭이갈매기들이 하늘에서 낙하하며 한바탕 잔치를 벌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갈매기와 바다의 상괭이가 거대한 공조 사냥을 펼치는 역동적인 현장인 것이지요.
 
부산 태종대 앞바다에서 어미가 가르쳐주는 사냥법을 배우며, 그 거친 바다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어린 새끼 상괭이의 몸짓이 너무나 대견하고도 위태로워 보입니다. 이들이 그물에 걸리지 않고, 선박의 스크류를 피해 우리 바다에서 오래도록 안전하게 헤엄칠 수 있어야 합니다. 상괭이의 아름다운 '미소'가 우리 세대에서 끝내 사라지지 않도록, 이제는 우리가 이 웃는 고래 상괭이에게 따뜻한 관심을 지녀야 할 때입니다. 초록빛 시원한 파도 속에서 힘차게 도약하던 그 모자의 숨소리가 오래도록 우리 바다에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글·사진=김연수 생태칼럼니스트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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