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대통령에 이어 청와대 정책실장, 금융감독원장까지 은행권의 '이자장사'에 대해 비난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가운데 예대금리차(대출금리와 예금금리 차이)는 역대 최대 수준으로 확대됐습니다. 정부가 은행들의 이자이익 편취 행태를 지적하고 있지만, 정작 정부의 각종 규제와 가격 개입이 이 같은 구조를 유지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예대금리차 1년새 2배 확대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이 지난 3월 신규 취급한 가계대출의 예대금리차(정책서민금융 제외)는 평균 1.51%p입니다. 관련 통계 공시가 시작된 2022년 7월 이후 가장 큰 격차입니다. 예대금리차는 지난해 말 1.26%p까지 축소됐다가 다시 확대되고 있는데요. 1년 전 평균 예대금리차가 0.71%p였던 점을 감안하면 두 배 넘게 벌어진 셈입니다.
은행별로 보면 신한은행이 1.64%p로 가장 높은 예대금리차를 기록했습니다. 이어 NH농협은행 1.55%p, 우리은행 1.50%p, 하나은행 1.46%p, KB국민은행 1.41%p 순이었습니다. 예대금리차가 벌어지는 이유는 은행들이 정부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 규제를 명분으로 대출금리를 높이는 반면 예금금리는 낮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은행연합회가 지난달 29일 공시한 3월 신규 취급분 기준 5대 은행의 일반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5.028%로 집계됐습니다. 전월 평균 4.926% 대비 한 달 만에 0.102%p 올랐습니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가 사실상 은행들의 예대마진 확대 구조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대출 증가율 목표를 낮춰놓은 상황에서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규모를 늘리기보다 우량 차주 중심으로 높은 금리를 유지하는 편이 수익성 관리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최근 금융채 금리가 다시 오르면서 대출금리 상단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금융채 5년물(AAA) 금리는 지난 3월27일 4.119%에서 지난달 중순 3.809%까지 떨어졌지만 이달 15일 기준 다시 4.225%까지 상승했습니다.
이에 따라 주요 시중은행의 고정형(5년)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은 다시 연 7%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금융당국이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지난해보다 낮은 1.5% 수준으로 제시하고 주담대 별도 관리 목표까지 신설한 만큼 은행들이 당분간 대출금리를 적극적으로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금금리는 시장금리와 별개로 자금 조달 필요성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라 일률적으로 끌어올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다만 예대금리차가 사상 최대 수준까지 확대된 만큼 정책서민금융과 우대금리 상품 등을 통한 차주 부담 완화 노력은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재명정부가 은행권을 향해 "손쉬운 이자장사에 매몰되지 말라"며 공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금융당국의 고강도 가계대출 규제와 금리 정책 개입 속에서 은행들의 예대마진은 역대 최대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앞 대출 안내문. (사진=뉴시스)
대출 총량 규제로 금리 조정 여지 없어
정부는 최근 들어 은행권을 향한 압박 수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상생금융 차원을 넘어 생산적 자금 공급과 포용금융 역할까지 주문하는 분위기입니다.
문제는 정부가 은행권을 압박하는 동시에 예대금리차 확대를 유도하는 정책 환경도 함께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강화하면서 은행들은 대출 문턱을 높이기 위해 가산금리를 올리거나 우대금리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반면 예금금리는 낮은 수준에 묶어두고 있습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현재 흐름이 지난 정부와 '판박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대통령이 은행의 공공적 역할과 과도한 이자이익 문제를 공개 질타한 뒤 금융당국 수장이 예대금리차 축소 압박에 나서는 흐름이 반복됐는데 결국 가계대출 총량 규제와 금리 개입이 은행권의 우량 차주 중심 영업과 예대마진 확대를 부추겼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3일 SNS를 통해 현행 금융 시스템을 정면 비판했습니다. 김 실장은 "왜 가장 여유 있는 사람은 가장 낮은 금리를 누리고 가장 절박한 사람은 가장 비싼 돈을 써야 하는가"라며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고신용자라는 온실 속에만 갇혀 있지 않도록 대출 구성을 흔들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김 실장의 발언에 힘을 실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정책실장께서 '금융기관은 준공공기관이다'라고 아주 잘 지적하셨는데 그건 욕먹을 일이 아니다"라며 "국가 발권력을 이용해 한국은행에서 자금 지원받아 대출해 주면서 이자받아 수익을 올리는데 반 이상은 공적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대통령과 정책실정 발언을 이어받았습니다. 이 원장은 지난 15일 열린 '2026년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금융사는 손쉬운 이자장사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 성장을 위해 생산적 분야에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은행의 예대마진 확대 구조는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대출금리를 낮추면 수요가 몰려 대출 총량 관리가 어려워지고 당국으로부터 페널티를 받을 수 있다"며 "최근에는 주담대에 대한 자본 규제도 강화되다 보니 예대마진을 인위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여지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최근 들어 은행권을 향한 압박 수위를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단순한 상생금융 차원을 넘어 생산적 자금 공급과 포용금융 역할까지 주문하는 것이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15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2026년도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