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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의 바위그림)암각화를 품은 ‘섬들의 강’
(백야의 땅, 박성현의 바위그림 시간여행-⑨)
2024-01-22 06:00:00 2024-02-02 17:07:30
북극 아래에 위치한 페노스칸디아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핀란드, 러시아의 콜라반도와 카렐리아 지역을 가리킵니다. 세계 곳곳에서 선사 인류의 바위그림이 발견된 것처럼, 이곳에도 수천 년 전 신석기인들이 남긴 바위그림이 있습니다. 그들은 물가의 돌에 무엇을, 왜, 새겼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질문을 품은 채 떠난 여정, 러시아 카렐리야의 오네가호수와 비그강, 콜라반도의 카노제로호수에 새겨진 바위그림과 노르웨이 알타 암각화를 향해 가는 시간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동터오는 백야의 도시
 
인구가 적은 소도시다 보니 벨로모르스크 기차역은 자그마하다. 기차역의 한쪽은 철로 방향이고 반대쪽은 도로에 접해 있는데 이 작은 도로 건너편에서 버스가 다시 페트로자보츠크로 출발한다. 숙소에서 걸어오다 보니 철로를 건너 도로 쪽으로 가게 됐다. 전날 저녁 길을 안내해 주고 만약을 대비해 자신의 장화까지 가져다 준 스베따 씨는 철로를 건너도 되냐는 내 질문에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었다. “원래는 안 되지만 다들 건너지요.” 시외버스 선반에 두고 내린 장화를 찾기 위해 새벽 2시경 버스 출발 지점으로 가 기다리니 잠시 후 전날 저녁 나를 태우고 왔던 미니버스가 들어온다. 2시 30분에 다시 페트로자보츠크로 출발하는 버스다. 기사님을 만나 사정을 설명하고 버스 안에 들어가 보니 선반에 장화가 그대로 있다. 다행이다! 
 
벨로모르스크에서 다시 페트로자보츠크로 돌아가는 미니버스가 새벽 2시 30분 출발 직전 승객들을 태우고 있다. 사진=박성현
 
거듭 감사를 표하고 다시 철로를 건너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선로 위 한쪽에는 초승달이 걸려 있고 다른 한쪽엔 동트는 하늘이 보인다. 승객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기차역 쪽은 이미 훤해서 거의 낮같다. 숙소에서 나올 때 한밤중에 길을 걷는 게 위험하지 않을까 조금 걱정스럽기도 하고 어두울까봐 작은 랜턴도 챙겼었는데, 나올 때부터 훤했으니 이곳이 백야의 땅이란 걸 잠시 잊었던 셈이다. 벨로모르스크라는 이름 자체가 백해 즉 ‘벨로예(하얀) 모례(바다)’라는 뜻을 담고 있어 이곳은 ‘하얀 밤’과 ‘하얀 바다’의 도시라 할 수 있다. 
 
벨로모르스크 기차역 새벽 2시 40분경. 기차를 타러 나오는 승객들 뒤로 하늘이 훤하다. 사진=박성현
 
장화를 찾아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숙소로 되돌아가는 도중에 멀리 서 있는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집들 뒤로 더 멀리에 물이 보이는 듯하다. 혹시 백해인가? 발걸음이 저절로 그리로 향했다. 흙길을 따라가면 그 끝자락에 여러 집이 있어 마치 시골길 풍경을 보는 듯하다. 한 지붕 위에 올라 앉아 졸고 있던 개가 꽤 먼 거리임에도 인기척을 느꼈는지 눈을 떠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이다 집들 뒤로 보이는 물가까지 가려던 생각을 버렸다. 다른 개나 고양이도 있을 테니 고요한 그들의 새벽 또는 한밤중을 깨우지 않기로 했다. 이 도시를 떠나기 전 백해를 볼 기회가 있으리라. 
 
새벽 3시 기차역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도시의 시골 풍경. 집들 뒤로 물(백해)이 보이고 지붕 위에 개가 누워 있다. 사진=박성현
 
지명으로 읽는 역사와 지리적 환경
 
나중에 찾아보니 호스텔에서 백해까지 10분 정도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긴 했지만, 우선은 다시 짐을 꾸려 암각화가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도시 외곽에 있는 백해 암각화 지점까지 숙소에서 택시로 약 25분가량 걸렸다. 백해로 흘러들어가는 비그강 하류 지역이다. 내가 머물 숙소는 암각화 박물관의 파빌리온(전시관)과 야외 암각화 현장까지 걸어서 약 15분 거리에 있는 야영장인데 벨로모르스키군 비고스트로프 마을에 있다. 비고스트로프는 ‘비그’와 ‘섬’이 합쳐진 단어로 ‘비그강 섬’이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사실 벨로모르스크라는 도시명도 193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그 전까지는 소로카로 불렸었다. 작은 섬들이 많은 소로카강의 이름을 딴 것인데, 소로카강은 비그강의 지류다. 
 
야영지로 가는 도중 만나는 비고스트로프 마을 풍경. 오른쪽에 비그강이 보인다. 사진=박성현
 
그런데 벨로모르스크의 옛 이름인 소로카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수 세기 전 이 지역으로 이주해 온 최초의 러시아 정착민들은 원래의 지명을 듣자 그 뜻을 모른 채 비슷하게 발음할 수 있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인 ‘소로카’를 사용했는데, 러시아어로 소로카는 ‘까치’ 또는 숫자 ‘40’의 변화형이다. 따라서 지명 소로카의 유래를 이 지역의 새와 연관시키거나 비그강 하구에 있는 40개의 섬을 뜻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민속적 버전 외에 공식적인 설명에 의하면, 비그강의 한 지류가 카렐리야어와 핀란드어로 사아리요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사아리가 ‘섬’이고 요키가 ‘강’이니 ‘섬이 있는 강’이라는 뜻이다. 이 사아리요키가 러시아어에서 이해할 수 있는 조합인 소로키, 소로카로 점차 변형됐다는 것이다. 소로카라는 지명이 러시아의 연대기에는 15세기 초부터 나오지만, 이 마을은 이미 12세기부터 “백해와 합류하는 비그강 어귀의 소로키”로 알려져 왔다. 
 
비고스트로프 마을에서 보이는 비그강의 모습. 사진=박성현
 
한편, 이곳 정착지의 원래 카렐리야 이름은 수오무아로 ‘늪지대’를 의미한다. 핀란드어로 ‘늪지대’를 찾아보니 수오마라고 나온다. 카렐리야에는 이와 유사한 이름이 많았는데, 이는 아마도 백해의 남쪽 해안이 늪지대라는 점과 상관있을 것이다. 소로키나 수오무아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지역의 지명에는 카렐리야어와 핀어에서 온 어원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지명의 어원을 쫓아가다 보면 지리적 특징뿐만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던 당시 거주민들의 생활과 문화를 유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우리가 나중에 만나게 될 무르만스크주 콜라반도의 암각화 지역에도 카렐리야어와 사미족의 언어(양자는 핀-우그르어파의 하위그룹), 포모르 방언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야영지로 가는 도중 보이는 비고스트로프 마을의 집. 사진=박성현
 
벨로모르스크 지역은 역사적으로 ‘포모르’의 정착지 중 하나다. 포모르는 ‘바닷가에 사는 사람’을 뜻하는데 백해 연안과 바렌츠해 등지에서 바다사냥과 어업에 종사해 온 러시아어 사용 인구를 가리킨다. 12-15세기 노브고로드에서 백해 연안으로 이주해 온 러시아 정착민을 중심으로 그 이전부터 지역에 살고 있던 핀-우그르계 종족도 혼합돼 있으며, 고유한 생활방식과 문화를 가진 독자적인 민족지학적 집단으로 간주된다. 일례로, 1755년 모스크바 국립대학을 설립한 러시아 최초의 근대적 자연과학자 로모노소프도 바로 이 포모르 출신이다. 현 아르한겔스크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백해와 북극해 지역에서 조업을 하곤 했는데, 이후 자신의 해양 경험과 과학자로서의 연구를 종합해 러시아 최초로 북극해 항로 탐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원정대를 교육, 준비시켰다. 안타깝게도 그는 원정대가 출발하기 한 달 전에 사망해 탐험의 진행을 보지 못했지만, 원정대는 1765년과 1766년 두 차례 고위도 탐사를 시도했다. 비록 두 번 다 얼음에 막혀 실패로 끝났으나 현대의 쇄빙선으로도 건너기 어려운 북극해에 나선 세 척의 범선이 얼음과 폭풍우와 안개 속에서도 항상 함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로모노소프의 세밀한 준비 덕분이었다. 당시의 지식과 기술의 한계 속에서 그의 도전은 큰 의의를 지닌다 하겠다.
 
암각화 박물관과 비그강 야영지
 
나는 암각화 박물관 근처 야영장에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비그 또는 비고스트로프 관광단지로 불리는 이 숙소에는 야영지와 실내동이 있어 선택할 수 있다. 길에 있는 표지판을 보니 가까이에 작은 호텔도 있다. 내 옆의 텐트는 자동차로 온 가족이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야영장 바로 옆으로 배가 다니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소련 시절 건설된 백해-발트해 운하의 수문들 중 하나가 바로 근처에 있었다. 하지만 이 역사에 대한 얘기는 잠시 나중으로 미루자.
 
비그 또는 비고스트로프 관광단지에는 야영장(좌)과 실내 숙소동(우)이 함께 있다. 텐트 옆으로 전원이 설치된 말뚝이 보인다. 사진=박성현
 
오네가호수는 흙이 질고 부드러워 텐트를 고정할 못을 쉽게 꽂았는데, 여기는 토질이 달라서인지 메말라서인지 땅이 무척 딱딱하다. 못이 안 들어가 혼자 끙끙대고 있으니 숙소 직원들이 와서 도와준다. 벨로모르스크의 친절을 또다시 느끼게 된다. 게다가 기대하지 않았는데 텐트를 설치하는 자리마다 전원을 꽂을 수 있는 말뚝이 하나씩 서 있어 텐트 밖으로 전선을 빼내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다! 오네가호수 야영장에서는 관리동의 전원을 밤에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확실히 여기가 그곳보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환경이다. 하지만 이곳 야영장에서도 전화는 잘 터지지 않았다. 그리고 머무는 동안 수시로 비가 내려 안전을 위해 충전을 중단하곤 했다.
 
오른쪽 흰색 건물이 백해 암각화 박물관 산하 전시관인 '베소비 슬레드키' 파빌리온이고, 건물 뒤로 비그강 하구의 암각화 지대가 보인다. 사진=박성현
 
짐을 푼 후 나는 암각화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부터 미리 연락을 주고받던 박물관 담당자를 찾아간다고 착각한 상태였다. 드디어, 비그강을 끼고 도로 한쪽 편에 서 있는 흰색 건물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니 입구 직원 말이 연락을 받은 게 없다 한다. 분명 오늘 오후에 도착한다고 만날 약속도 해 두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알고 보니 메일을 주고받던 벨로모르스키군 향토박물관 ‘백해 암각화’는 벨로모르스크 시내에 있고(나를 기다리는 담당자는 그곳에 있었다!) 나는 그 박물관 산하 전시관인 ‘베소비 슬레드키’ 파빌리온에 와 있었던 것이다.
 
수십 개의 작은 섬들이 있는 비그강 하구. 현재는 물이 빠져 섬처럼 보이지 않는 곳이 많다. 사진=박성현
 
박성현 경상국립대 학술연구교수 perceptio@hanmail.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성남 엔터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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