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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중도상환 수수료 없앨 수 없나
2021-11-03 06:00:00 2021-11-03 06:00:00
NH농협은행이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가계대출 중도상환 수수료를 전액 면제하기로 했다. 여윳돈이 생겨도 중도상환 수수료 때문에 대출을 갚지 않는 고객들의 상환을 유도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정 기한 이전에는 대출금 가운데 단돈 100만원을 갚아도 어김없이 물리던 중도상환 수수료를 2개월 동안은 내지 않게 된다.
 
농협은행의 이번 조치는 가계대출 총량 관리의 방법 가운데 하나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의 지침에 따라 은행들은 올해 대출 증가율을 전년 대비 6%대에 맞춰야 한다. 그런데 농협은행은 이미 넘어선 상태다. 따라서 지금 상태로는 대출을 중단해야 함은 물론 기존 대출금도 되도록 상환받아야 할 처지이다. 그렇지만 억지로 대출금을 회수하기는 어려우니, 중도상환 수수료 면제를 들고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조기상환이 늘어나면 농협은행의 대출 여력이 되살아날 수도 있게 된다. 고객과 은행에 모두 유익한 조치이다.
 
중도상환 수수료는 말이 수수료이지 사실은 벌과금과 비슷한 것이다. 고객에게 일단 대출받았으면 중도에 갚을 생각 따위는 아예 하지 말라는 요구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금융소비자들이 군소리 없이 감수해 왔다.
 
그런데 최근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과정에서 이 문제가 제기됐다. 대출을 한푼이라도 줄여야 하는데 중도상환 수수료 때문에 상환을 망설이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5일 기업은행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윤종원 기업은행장을 상대로 한 질의에서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당분간이라도 중도상환 수수료를 면제 또는 인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도상환 수수료 때문에 돈을 갚고 싶어도 안 갚고 굳이 만기까지 간다는 지적이었다. 
 
윤종원 행장은 공감한다면서 일시적으로 중도상환 수수료를 면제 또는 인하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기업은행은 이어 오는 9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가계대출에 대한 중도상환 수수료를 50% 감면한다고 1일 밝혔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스스로 한 약속을 즉각 이행하기로 했으니, 훌륭한 자세라고 평가받을 만하다. 
 
한국주택금융공사도 보금자리론 이용자를 대상으로 조기상환 수수료 70%를 지원하는 이벤트를 연말까지 벌인다고 한다. 
 
유력한 금융사 가운데 한시적이나마 면제 의사를 밝힌 곳은 농협은행과 기업은행뿐이다. 농협은행의 경우 가계대출을 방만하게 운영하는 데 앞장섰다는 오명을 불식시키겠다는 속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가 어떻든 일단 잘한 결정이라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다른 은행들은 아직 꿀먹은 벙어리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전례없이 큰 호황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중도상환수수료' 같은 사소한 이익에 매달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실 은행들은 코로나19와 극단적 저금리 상황에서도 제법 많은 돈을 벌었다. 지난 3분기까지 KB금융지주의 순이익은 3조7722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1.1%나 증가했다. 하나지주도 27.4% 늘어난 2조6815억원을 달성했다. 우리(2조1980억원)는 92.8%나 늘었고, NH농협(1조8247억원)도 24.9% 부풀었다. 한국의 대형 금융사들이 작년에 역대 최고 이익을 올린 데 이어 올해 또다시 새로운 기록을 세울 가능성이 커졌다. 어쩌면 코로나19로 가장 큰 혜택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이처럼 은행들이 공전의 실적을 낸 것은 대출이 늘어난 데다 이자 이익까지 급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많은 국민, 특히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도 은행들은 누릴 것 다 누리고 챙길 것 다 챙긴 셈이다.
 
그렇다고 많은 이익 낸 것을 이러쿵저러쿵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많은 이익을 냈으니 중도상환 수수료 같은 것은 폐기할 여건이 갖춰졌다는 것이다.
 
대출금 중도상환 수수료는 사실 한국에는 생소한 제도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은행들은 전례없이 튼튼한 은행으로 거듭나게 됐다.
 
그러므로 이제는 중도상환 수수료를 계속 부과할 것인지 재검토할 때가 됐다. 한시적으로 시행하거나 이벤트로 할 일도 아니다. 완전 폐지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의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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