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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미나리’ 한예리 “아카데미 무대에서 노래 할 수 있을까요?”
“감독님 특별한 주문? 절대 어머니와 비슷한 외모-행동 하지 말아 달라”
미국 내 ‘미나리’ 신드롬…“자녀 세대-부모 세대 소통의 창구 ‘역할’ 같다”
2021-03-03 00:00:01 2021-03-03 00: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얼떨떨하고 묘한 느낌일 것이다. 그리고 굉장히 이상했을 것이다. 실제로 배우 한예리가 그렇게 말했다. 미국 내에서 바라보는 영화 미나리에 대한 관심은 분명히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역사다. 그들의 삶이다. 그리고 그들의 과거이며, 현재이고 또 미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조차 이 영화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다소 의아하단다. 다분히 로컬적인 얘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얘기가 바로 미나리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 속에는 모두가 느끼고 또 체득할 수 있는 보편타당적인 가족이 담겨 있다. ‘미나리를 쓰고 연출한 힌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도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민자인 정 감독의 실제 얘기가 상당부분 투영된 미나리를 그래서 사실적이다. 반대로 감정적이지 않고 드라마적이지도 않다. 극화와 다큐멘터리 중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다. 한예리는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한국인 가족의 아내이자 엄마 모니카로 살아왔다. 그의 눈에 비친 미나리의 모든 것은 이랬다.
 
배우 한예리. 사진/판씨네마(주)
 
정이삭은 미국 내에선 주목 되고 있던 신인 영화 감독이다. 칸 국제영화제에서도 그의 연출력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하지만 당연히 국내에선 낯설다 못해 누구도 알지 못하는 벽안의 동양인 감독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국내에서만 활동해 온 한예리에게 시나리오를 건냈다. 두 사람 사이의 드넓은 태평양이 존재한다. 두 사람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미나리시나리오를 주고 받았다.
 
제가 처음 받은 시나리오는 초기 버전이라 사실 번역도 완벽하지 못했고 완벽하게 이해할 수도 없었어요. 하지만 천천히 읽으면서 뭔가 가슴에 뜨겁게 오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감독님을 빨리 뵙고 싶었어요. ‘이 사람과는 뭐라고 해보고 싶다는 느낌이랄까. 실제 만나 뵙고는 서로의 부모님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죠. ‘모니카는 한국적 정서를 가진 한국인이기에 제가 표현하는 데 무리가 없을 거라고 용기를 주셨어요.”
 
한예리가 연기한 모니카는 정이삭 감독의 실제 어머니가 모델이다. 우스갯소리로 정 감독의 어머니와 한예리가 워낙 닮아서 캐스팅이 된 것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정 감독은 자신의 어머니를 연기한 한예리에게 특별하게 어떤 무언가를 주문하진 않았을까. 한예리가 기억하는 정 감독의 특별한주문은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 특별함은 특별할 게전혀 없는 특별함이었다. 참고로 한예리는 정 감독 어머니 사진을 보고 나와 전혀 안 닮고, 너무 예쁘셨다며 웃었다.
 
배우 한예리. 사진/판씨네마(주)
 
감독님이 특별하게 주문하신 게 있어요. 그런데 그게 어머니와 비슷한 행동이나 외모를 절대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어요. 그냥 제가 생각한 모니카그리고 감독님이 생각한 모니카의 거리만 좁히는 과정만 있었어요. 그나마 주문하신 건 제이콥(스티븐 연)과 모니카가가 다투는 장면이 있는데, 과거 감독님 부모님이 다투던 기억 그리고 저희 부모님이 다투던 기억을 공유하는 정도였죠.”
 
미나리는 사실 두 가지 큰 틀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가장 미국적인 얘기를 담고 있다. ‘이민자들의 나라로 불리는 미국에 안착을 원하던 1980년대 한국인 가정의 얘기를 그린다. 때문에 다분히 한국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지극히 미국적인 색채를 담고 있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차이를 오가며 연기해야 하는 배우 입장에서의 관점은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뭐랄까요. 되게 생각지도 못한 감정이 저를 한 번 휘감은 적이 있어요. 영화 후반부 주차장에서 남편 제이콥과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말 싸움을 하는 장면인데, 그 전에 먼저 식료품 점에서 아이들 그리고 남편과 함께 새로운 계약을 따내고 나온 장면을 찍었는데. 나와서 주차장에서 아이들과 남편을 보는 데 자꾸 눈물이 나려는 거에요. 배우 한예리가 눈물을 흘릴 수도 있지만 모니카는 그 장면에서 울면 안 되는데. 아마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긴 힘들겠지만, 그런 장면들이 꽤 있어요. 그게 한국과 미국의 감정적 차이 혹은 말로 표현이 안 되는 어떤 지점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 '미나리' 스틸. 사진/판씨네마(주)
 
지극히 미국적인 영화이고, 오롯이 그들의 삶이 만들어 내는 현실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 조금만 고개를 틀어서 보면 완벽하게 미국 로컬 스토리란 얘기다. 하지만 전 세계가 지금 미나리에 열광 중이다. 미국 내 영화상 시상식에선 무려 70개가 넘는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한예리 역시 이런 분위기와 신드롬에 다소 황당할 정도라고 표현했다. 우선 미국 내 관심의 분위기에 대해선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했다.
 
전 개인적으로 미나리가 이민자들만의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반적인 배경만 다를 뿐 모든 문화권의 모두가 겪어본 갈등이 담겨 있잖아요. 미국 내 반응이 뜨거운 이유는 아마도 이민자들이 겪는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일 거에요. 밖에 나가면 영어를 쓰지만 집에 오면 각자의 모국어를 쓰고. 그러다 보니 자녀 세대와 부모 세대 소통의 단절이 오고. 자녀 세대는 미국인도 무엇도 아닌 느낌을 받고. 그런데 미나리가 부모 세대의 고충과 힘듦을 고스란히 고백해 주잖아요. 부모 세대도 쉽지 않았다고. 그 지점에서 소통의 창구가 마련된 것은 아닐까 싶어요.”
 
주변에선 한예리에게 할리우드 진출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내기도 한단다. 실제로 많은 언론이 미나리기사를 쓰면서 주연 배우 한예리의 할리우드 진출을 타이틀로 뽑았다. 한예리는 박장대소를 하면서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고 다시 웃었다.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영화가 맞으니 할리우드 진출이라면 진출이 맞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할리우드는 전혀 아니었다고.
 
배우 한예리. 사진/판씨네마(주)
 
하하하. 제작비 20억 내외의 영화에요. 국내로 치면 초 저 예산 영화인 거죠. 시스템도 한국과 비슷했고, 촬영 지역 인근에 집을 하나 빌려서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함께 살았어요. 만약 호텔에서 생활했다면 영화에 대한 많은 생각을 공유할 기회도 없었고 친해질 기회도 적었을 거 같아요. 매일 촬영이 끝나면 집에 모여서 함께 밥해 먹었어요(웃음). 요즘 따라 그 분들과 다시 모여서 밥 해 먹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현재 미나리는 골든글로브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다음 달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 중이다. 작년 기생충에 이어 다시 한 번 돌풍을 일으킬 화제작이 바로 미나리. 특히 한예리는 미나리OST 'Rain Song’(레인 송)을 직접 불렀고 이 노래가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서 노래하는 한예리를 볼 수도 있을 듯싶다.
 
배우 한예리. 사진/판씨네마(주)
 
“(웃음)정말 그렇게 될까요 하하하. 감독님이 마지막에 제가 노래를 불러 줬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하셨어요. 뭐 저도 영화에 도움되는 일이라면 뭐라도 하겠단 자세로 임하고 있었으니 냉큼 달려 들었죠. 음악감독님이 노래 멜로디를 들려 주셨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감독님과 음악감독님 두 분이 자장가처럼 불러 달라고 하셔서 편하게 불렀어요.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단 소식에 감독님 두 분이 이게 뭔 일이냐며 깜짝 놀라셨대요. 올해 아카데미 무대에서 노래 한 번 꼭 불러 봤으면 좋겠네요(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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