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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지적장애인 급여·손배청구에 '민법상 소멸시효 적용' 합헌"
2021-01-07 15:50:17 2021-01-07 15:50:17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업주가 지적장애인의 급여를 고의로 주지 않고 학대한 경우, 이에 대한 부당이득반환 및 손해배상 청구 기간에 민법상 소멸시효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 전원재판부는 한과공장에서 10년 이상 일을 하고도 급여를 받지 못한 지적장애인 A씨 등이 "장애인 학대에 대한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민법상 소멸시효 조항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장애인들의 재산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기각 결정했다고 7일 밝혔다.
 
헌법재판소 청사 전경. 사진/헌재
 
A씨 등은 지적장애 2급 장애인으로 정모씨가 운영하는 한과 공장에서 14~15년간 주 6일, 1일 10시간씩 일했지만 급여를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러나 정씨는 2017년 8월 근로기준법 위반혐의 등으로 기소돼 불과 징역 2년을 확정받았다.
 
A씨 등은 2018년 1월 정씨를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 및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근로기준법상 미지급 급여에 대한 청구권의 소멸시효 기간은 3년으로, 10년간 소멸시효가 인정되는 민법상 부당이득 반환 및 손해배상 청구가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A씨 등의 청구권을 일부만 인정했다. 소를 제기한 2018년 1월부터 역산할 때 10년을 지난 부분은 민법상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본 것이다. 정씨의 항변도 같았다. A씨 등은 1심 계속 중 재판부에 민법상 소멸시효 규정이 자신들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면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지만 각하되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은 위법한 가해행위로 인한 손해 보전이나 응보와 별개의 취지에서 성립하고 행사되는 것"이라면서 "설령 민법상 소멸시효 조항이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학대'에 관한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소멸시효의 기산점과 시효기간을 그대로 적용하도록 규정돼 있더라도 이 조항이 입법자에게 부여된 형성재량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또 "소멸시효의 기산점과 그 기간을 얼마로 정할 것인지의 문제는 그 채권의 성질과 발생원인 등을 고려해 입법 재량으로 결정할 문제에 해당"한다며 "결국, 민법상 소멸시효 조항은 청구인들의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이선애 재판관이 보충의견을 냈다. 이 재판관은 "부당이득반환청구권과 관련한 민법상 소멸시효 조항이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결론에는 동의하지만 입법론으로 지적장애인에 대한 '장애인학대'에 관한 사건의 경우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을 현행법보다 장기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애인학대에 관한 사건 유형에서는 지적장애인들이 근로조건에 관해 제대로 협의를 하지 못하거나 의식주에 대한 의존관계 등으로 인해 부당하게 형성된 근로관계를 청산하는 것이 어렵다"면서 "현행법에 따를 경우 지적장애인이 노무를 제공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가해자의 이익은 커질 수 있는 반면, 피해장애인이 법적으로 전보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제소시로부터 역산해 10년에 해당하는 부분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불합리를 해소하기 위해 지적장애인에 대한 '장애인학대'에 관한 사건의 경우,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을 현행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보다 장기화하는 입법적 개선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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