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올 한 해 국내 증시가 맹위를 떨쳤지만, 서학개미가 환율을 올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사랑은 올해에도 여전했습니다. 구체적인 종목 몰라도 S&P500지수 사면 된다는 조언이 정답처럼 여겨졌는데요. 관심이 커서인지 S&P500지수를 추종하는 국내 상장지수펀드(ETF)의 종류도 크게 늘었습니다. 어떤 종목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성과도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서학개미 매수 5위 ‘SPY’
5일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SEIBRO)에 따르면, 올해 1월 초부터 지난 4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매수한 미국 주식 종목 순위엔 테슬라(종목기호 TSLA)와 테슬라 주가를 2배로 추종하는 TSLL, 또 인공지능(AI), 반도체 열풍을 반영하는 3배 레버리지 ETF 종목(SOXL), 엔비디아(NVDA)가 자리하고 있는데요. 이들과 함께 이름을 올린 종목이 SPDR S&P500 ETF(SPY)입니다. 개별종목에 대해 몰라도 미국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대표 종목입니다.
올해에도 미국 주식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는 계속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대미 관세 협상이 교역국들을 갈취하는 수준으로 진행된 것도 미국 투자를 부채질한 요인입니다. 올해엔 유독 국내 증시가 강했으나 미국의 상승세도 이어져 이들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올해 은퇴를 선언한 투자의 대가 워렌 버핏은 일반인들에게 개별종목 투자보다 미국 인덱스 투자를 권유했는데요. 그가 말한 대표 인덱스가 S&P500입니다. 다우와 나스닥 시장 구분없이 미국 증시의 주요 종목 500개로 구성된 지수입니다. 현재 미국 증시를 이끌어가는 대기업들은 물론 한국 투자자들이 놓친 우량기업들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그래서 막연하게 미국 주식 투자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기 좋은 투자처이기도 합니다.
미국 투자가 대중화되면서 자금이 몰리자 운용사들도 그에 맞춰 관련 신상품을 출시해 현재 국내 증시에 S&P500지수 이름을 달고 있는 ETF만 65개에 달합니다. 이 중 특정 섹터를 추종하는 종목들을 제외해도 종류가 다양합니다.
순수하게 S&P500지수에 투자하는 경우 종목을 선별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ETF 종목 정보에서 판매사, 운용사 등의 몫으로 가져가는 총보수와, 거래 편의성 확보를 위해 시가총액, 평상시 거래량 정도만 비교한 후 선택해도 괜찮습니다. 평소 사고파는 데 문제 없을 정도의 거래량만 꾸준하다면 보수 저렴한 종목이 제일입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환율 고공행진 부담, 언헤지 괜찮을까?
그런데 이것만으론 종목 고르기가 어려운 것은 다른 형태로 파생된 종목이 많아서입니다. 일단 ETF 자산가격을 환율 변동에 노출할 것인지 헤지할 것인지부터 정해야 합니다. 미국 자산에 투자하는 주된 이유로는 한국 주식보다 성과가 좋을 것이라는 기대감 외에도 한국 투자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 장점은 달러 자산을 보유하는 데서 발생합니다.
국내 정치·경제 사정이 급변해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자산가격이 하락하는 경우 원·달러 환율도 급등할 가능성이 큰데요. 이때 달러로 매수한 미국 주식에선 환율 상승으로 환차익이 발생해 국내 투자 손실을 상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환율에 노출된 ETF 종목을 고르는 것이 상식인데, 문제는 지금 원·달러 환율이 높다는 사실입니다. 달러당 1470원이 넘는 환율은 역사적으로 경제위기 등의 국면에서나 볼 수 있는 영역이라서 이 값에 달러자산을 매수하는 데는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환율에 대한 전망은 언젠가 하락할 것이라는 시각과, 1400원대를 뉴노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립니다.
다만, 투자자 개인의 의견이 어느 쪽에 쏠리든, 지금의 환율 등락이나 전망과 상관없이 장기적으로 원화 자산을 헤지하겠다는 목적에 충실한다면 환율 변동에 노출된 종목을 고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원·달러 환율만 고민해서 끝이 아닙니다. 미국의 S&P500지수를 엔화로 투자할 수 있게 만든 ETF도 있습니다. 환율이 100엔당 900원을 밑돌았던 2024년 당시 미국의 금리 인하와 엔화 가치 상승을 동시에 노렸던 투자자들 사이에 미국채 엔화 노출 ETF가 인기였습니다. 이들의 바람과 달리 미국채 금리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그나마 올랐던 원·엔 환율도 다시 하락세를 보여 이들의 기대와는 어긋난 상황인데요. 이제 미국 주식을 엔화 노출 형태로 투자하는 ETF가 등장한 겁니다.
신한자산운용의 SOL 미국S&P500엔화노출(H)은 지난해 12월에 상장했고, RISE 미국S&P500엔화노출(합성H)는 올해 1월 첫선을 보였습니다. 다만 앞서 주목받은 미국채 엔화 노출 상품들의 성과가 저조했기에 이들도 관심을 얻지 못해 시총, 거래량 모두 부진합니다. 하지만 원·엔 환율 반등을 예상한다면 이들 종목을 택하는 것이 수익을 배가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은 맞습니다.
상승장에 버퍼형 외면 ‘아쉬워’
인공지능(AI) 버블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미국 주식시장 또한 조정이 찾아올 거란 우려가 존재합니다. 미국에 투자하고 싶지만 하락 조정에 대한 우려가 머리를 맴도는 투자자라면 올해 새롭게 등장한 버퍼형 ETF가 적당합니다.
버퍼 ETF는 지수의 상승과 하락을 모두 일정 수준으로 제한해 성과에 반영합니다. 국내엔 삼성자산운용이 3월에 KODEX 미국S&P500버퍼3월액티브를, 6월엔 KODEX 미국S&P500버퍼6월액티브를 각각 출시했습니다. 이들 종목은 S&P500 10% Buffered Index Series(USD) TR를 비교 지수로 운용하는 액티브형 ETF로, 이름에 드러난 것처럼 ETF가 손실을 10%까지 흡수 완충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지수가 9% 하락해도 ETF 손실은 0이고, 15% 하락하면 -5%가 되는 방식입니다.
대신 S&P500지수가 아무리 올라도 이익도 미리 설정한 선까지로 제한됩니다. 삼성자산운용이 정한 수익 제한선(캡)은 16%입니다.
문제는 2종의 ETF가 상장한 후 주가가 올라 지금 매수할 경우 투자자가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다는 점입니다. 상장 때 정한 캡이 16%인데 이미 11%를 넘어 S&P500지수가 폭등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이 종목의 남은 기대수익(잔여 캡)은 4.89%에 불과합니다.(환율 변수 제외 시) KODEX 미국S&P500버퍼6월액티브의 수익 상한선은 17.60%인데 이 종목도 지금 잔여 캡은 8.14%에 그칩니다. 결국 두 버퍼 ETF 종목을 지금 매수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고 주가가 크게 하락한 후 또는 새 종목이 출시될 때 접근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다만 신상품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버퍼 ETF는 옵션 만기일을 기준해 1년 단위로 아웃컴 기간을 정하기 때문에 3월, 6월에 이어 9월, 12월에도 신상품이 나왔어야 했는데 건너뛰었습니다. 그사이 주가가 오르면서 버퍼 ETF가 지수 성과를 까먹는 결과로 이어져 투자자들이 돌아선 것입니다. 결국 운용사도 9월에 이어 12월 상품을 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내년 3월 KODEX 미국S&P500버퍼3월액티브의 롤오버 여부도 미정입니다. 국내 최초 버퍼 ETF의 생명은 남은 3개월 동안 증시의 향방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수가 조정을 보여야 그나마 연장할 동력을 얻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버퍼 ETF가 아니라도 S&P500지수와 미국채를 혼합한 ETF 종목으로 시장의 변동성을 일정 수준 상쇄할 수 있는데요. 새로운 형태의 ETF가 투자자들의 외면을 이유로 존속하지 못하는 환경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