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우 기자] 국내 태양광 셀 시장에서 중국산 점유율이 96%를 넘어선 가운데, 재생에너지 설비의 국내 제조 기반을 살리기 위해 국산품 사용을 직접 강제하기보다 세제와 정부조달, 정책금융 등 인센티브를 활용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 통상 규범과의 충돌을 피하면서 국내산 설비를 선택할 경제적 유인을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박정·안호영·김주영·박해철 민주당 의원과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 접경지역내일포럼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형 녹색전환(K-GX) 시대 에너지 산업 국가전략' 연속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이번 3차 토론회는 '재생에너지 설비 국가경쟁력 강화 전략'을 주제로 열렸으며, 이준서 한국법제연구원 박사와 이종민 한전기술지주 대표이사가 발제를 맡았습니다. 토론에는 임동수 한국플랜트서비스 상무, 한신혜 한화큐셀 파트장, 이정선 파주시 신재생에너지팀장, 김성훈 한국에너지공단 태양광기획처장이 참여했습니다.
국내 태양광 제조 기반은 빠르게 약화되고 있습니다. 국내산 모듈 시장 점유율은 2021년 66.0%에서 2025년 30.7%로 35.3%p 떨어졌고, 국내산 셀은 같은 기간 35.1%에서 3.9%로 급락했습니다. 반면 중국산 셀 점유율은 96.1%까지 높아졌고, 2024~2025년 국내 내수용 셀 생산 실적은 사실상 '0'에 그쳤습니다.
"국산화 의무보다 유인"…미국식 인센티브 모델 제안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이준서 한국법제연구원 박사는 캐나다와 인도, 미국, 중국, 튀르키예의 재생에너지 설비 국산화 정책을 비교해 한국에 적용 가능한 정책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국산 부품 사용을 사업 참여나 지원 조건으로 강제하는 '구매의무형'은 WTO 통상 규범과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적용받는 태양광·풍력 사업에 일정 비율 이상의 지역산 부품 사용을 요구했다가 일본과 유럽연합(EU)의 WTO 제소를 받았습니다. 인도 역시 정부와 장기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하는 태양광 사업자에게 자국산 셀과 모듈 사용을 의무화했다가 미국의 제소 대상이 됐습니다.
반면 미국은 국내에서 생산된 철강과 부품 등을 사용한 청정에너지 사업에 추가 세제 혜택을 주는 '인센티브형'을 택했습니다. 인도도 직접적인 구매 의무 대신 정부지원사업과 보조금·관세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이 박사는 한국도 국산화를 법률상 의무로 규정하기보다 '조건부 유인' 방식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적용 범위를 정부조달이나 정책금융으로 한정하고 세제나 평가 점수 같은 간접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며 "이행하지 않았을 때도 제재가 아니라 혜택에서 배제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인센티브형과 정부조달형, 이를 결합한 방식이 한국에 적합한 대안이라는 설명입니다.
한전기술지주 "재생에너지 생산지, 산업거점으로 키워야"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이종민 한전기술지주 대표이사는 재생에너지 정책을 발전설비 확대를 넘어 지역산업과 혁신기업 육성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 대표는 이를 '지산지소 2.0'으로 표현하며 "지금까지의 지산지소가 에너지원을 물리적으로 분산하는 구조였다면 앞으로는 분산된 에너지를 기반으로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지역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목표를 넘어 지역산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격상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중국과 가격 경쟁을 벌이기보다 혁신기술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전 등 공공부문이 혁신기술의 첫 실증과 초기 수요를 맡아 스타트업의 상용화까지 이어지는 성장 사다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혁신제품 인증 속도도 문제로 꼽았습니다. 이 대표는 "혁신 제품이 1년이 지나면 혁신 제품이 아니다"라며 인증 절차 단축 및 에너지산업의 긴 사업화 기간을 뒷받침할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셀·모듈 넘어 전력시스템 경쟁력 키워야"
토론에 나선 임동수 한국플랜트서비스 상무는 재생에너지 국산화 전략을 셀과 모듈 등 개별 설비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배터리·전력전자·전력기기·정보통신기술(ICT)과 전력변환장치(PCS)·에너지저장장치(ESS)·에너지관리시스템(EMS)·가상발전소(VPP)·인공지능(AI) 예측·제어기술을 묶은 '재생에너지 전력시스템 산업'을 육성하고, 실증·인증·수출금융까지 연계해 패키지로 수출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한신혜 한화큐셀 파트장은 올해 세제개편안에 포함된 국내생산세액공제의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태양광 제조업은 설비투자보다 재료비·전력비·인건비 등 생산비 부담이 큰 만큼 공제 한도를 완화하고, 적자 기업에는 생산실적과 연계한 현금성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정선 파주시 신재생에너지팀장은 영농형 태양광을 국산 재생에너지 설비의 새로운 수요시장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국산 모듈과 기자재를 사용한 사업의 장기계약 가격을 우대해 민간사업자가 국산 설비를 선택할 유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성훈 한국에너지공단 태양광기획처장은 국산 제품의 수요시장을 넓히기 위한 정부 지원 방향을 설명했습니다. 내년 계약 시장 제도 도입에 맞춰 산업 기여도 평가와 국산 제품 가격 우대를 강화하고, PPA 시장에서도 국산 설비 사용 시 망 이용료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인버터의 경제안보품목 지정과 공급망안정화기금을 통한 기업 투자 지원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정 의원은 중국산과의 가격 경쟁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기술개발과 산업 기반을 유지할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영농형 태양광 등 경쟁력 있는 분야를 특화해 설비·농기계를 패키지화하고 해외시장까지 연결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박 의원은 "토론에서 제시된 생산세액 공제와 특화 단지, 영농형 태양광 지원 방안 등을 향후 입법·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K-GX 시대 에너지 산업 국가전략' 국회 연속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지우 기자 j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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