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트릴로지’(3부작)가 지금은 대세를 넘어 일반화가 된 영화계다. 굳이 상업 영화 시장에서 트릴로지 시작을 따지자면 이 작품이 자리할 듯하다. SF장르의 혁명?걸작?교과서 등 존재하는 찬사로는 도저히 그 가치를 설명하기 힘든 작품. ‘매트릭스’ 시리즈다. 1편이 무려 1999년 개봉했다. 그리고 2003년 2편과 3편이 연이어 공개됐다. 가상 현실을 끌어와 인간과 기계의 대결, 자아와 본질 등 동서양 정신 세계를 교차시키는 시도와 일종의 반 유물론과 메시아적 존재론 등 난해하고 철학적 사유를 모조리 끌어왔다. 쉽게 말하면 ‘어려운 말만 전부 끌어와 제대로 있는 척을 한 영화’였는 데, 그 ‘척’이 상당히 깊은 지식을 사유한 결과물로 드러났다. 한 마디로 ‘매트릭스’ 시리즈는 장르 영화 흐름의 변화가 가능했던 가장 확실한 모멘텀이었다.
문제는 무려 2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3부작의 ‘시퀄’이 등장한 것이다. 사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프리퀄’이 될 수도 있다. 의미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존재 자체가 중요하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트릴로지에서 마무리가 됐다. 앞으로(프리퀄) 나갈 동력도, 뒤로(시퀄) 나갈 이유도 없었다. 3편 ‘매트릭스: 레볼루션’에서 완벽하게 모든 질문의 해답을 제시하며 마침표를 찍었다. 3편의 결론에서 매트릭스 세계 절대자(오라클)와 설계자(아키텍트)의 가장 마지막 대화는 이 거대한 얘기의 시작과 끝을 온전히 담아냈다. 워쇼스키 자매는 그렇게 스스로 이 거대한 세계관을 닫았다.
영화 '매트릭스: 레볼루션' 스틸.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하지만 2021년 12월 개봉한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부제 ‘리저렉션’처럼 ‘부활’했다. 문제는 ‘어떻게’와 ‘무엇으로’다. 온전히 마무리를 한 얘기를 다시 부활시킨 동력이 분명해야 한다. 결과만 먼저 언급하면 시리즈 골수 마니아들조차 이해시키긴 힘들 듯하다. 가뜩이나 진입 장벽도 높은 이 시리즈의 부활은 더욱 더 모호해졌다. 설정도 파격적이었던 앞선 3부작과 달리 동어 반복을 넘어 억지스럽다. 무엇보다 모두의 의식 속에 깊게 박힌 ‘매트릭스’ 시리즈 자체의 시그니처를 넘어설 상징이 극단적으로 부족했다.
영화 '매트릭스: 레볼루션' 스틸.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3편 ‘레볼루션’에서 ‘매트릭스’ 세계관은 완벽하게 마무리된 상태였다. 기계와 인간의 전쟁은 막을 내렸다. 기한 없는 휴전, 즉 평화가 이뤄졌다. 네오는 자신을 희생해 이 모든 것을 이뤄냈다. 그리고 4편이다. 부제 ‘리저렉션’처럼 모든 것을 리셋해야 한다. 연출을 맡은 라나 워쇼스키는 이 어려운 일을 단 한 방에 해결해 버리는 설정을 끌어 온다. 앞선 1편부터 3편까지가 모조리 현실이 아니었단 대전제를 끌어와 버린다. 우리 모두가 본 네오의 길고 긴 여정, 인간과 기계의 생사를 건 전쟁이 사실은 토마스 앤더슨이란 게임 개발자가 만들어 낸 게임이었단 얘기에서 모든 게 출발한다. ‘매트릭스’는 앤더슨이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둔 게임일 뿐이었다. 네오와 트리니티 등 ‘매트릭스’ 주요 캐릭터는 피규어로 제작돼 판매되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 레볼루션' 스틸.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하지만 앤더슨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렇다. 여전히 현실과 가상 세계에 대한 혼란을 겪는다. 심리상담을 하고 약을 처방 받으며 벗어나려 노력 중이다. 그런 앤더슨의 눈 앞에 트리니티가 나타난다. 정확하게는 티파니란 여성이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다른 남자의 아내다. 앤더슨은 티파니를 남모르게 좋아한다. 그 마음이 게임 속 네오가 트리니티를 좋아한 마음인지, 현실 속 자신이 티파니를 좋아하는 것인지. 앤더슨 스스로도 잘 모르겠고, 관객들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영화 '매트릭스: 레볼루션' 스틸.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여전히 앞선 3부작에서 언급하고 강조했던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현실인지’에 대한 질문을 수 없이 던진다. 진짜가 중요하지도 않다. 현실이 무엇인지도 중요한 건 아니다. 그걸 진짜라고 믿고 지금이 현실이라고 믿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영화에서도 수 없이 이런 설정과 연출 그리고 표현이 반복된다. 실제 ‘매트릭스’ 시리즈를 제작한 워너브러더스가 극중 앤더슨을 불러 ‘매트릭스’ 게임 흥행을 이어갈 새로운 네 번째 매트릭스 게임 개발을 요구하는 장면. 1편 ‘매트릭스’가 개봉한 1999년, 그 해 최고 게임상을 받은 게임이 앤더슨이 개발한 ‘매트릭스’란 점. 참고로 3부작 ‘매트릭스’ 속 주인공이 각성하기 이전 가상 세계(매트릭스)에서 살던 시절 이름도 ‘앤더슨’이란 설정. 게임회사 직원들이 ‘매트릭스’ 게임을 두고 ‘어렵다’ ‘’철학적이다’ 등등 의견을 쏟아내는 장면 등. 실제 ‘메트릭스’ 3부작 개봉 당시부터 대중과 언론이 지적한 부분과 이번 새로운 ‘매트릭스’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와 비평이 영화 전체에 실제로 삽입돼 있다.
영화 '매트릭스: 레볼루션' 스틸.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비유적일 수도 있지만, ‘빨간 약을 먹을 것인가, 파란 약을 먹을 것인가’란 ‘매트릭스’ 속 선택의 순간을 제시 받는 느낌이다. 물론 오롯이 선택은 당신 몫이다. 워쇼스키 감독은 이 영화에 당신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무리일 수도 있고, 도전일 수도 있다. 수 없이 반복하지만 ‘매트릭스’는 앞선 3부작에서 완벽하게 마무리가 됐다. 이걸 다시 끄집어 내려면 납득할 만한 이유와 힘이 필요하다. 전체 시리즈 설정 자체를 뒤집어 버리는 방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영화와 현실 경계선인 스크린 자체를 무너트리는 시도까지 한다. 마블의 안티 히어로 ‘데드풀’ 시리즈에서 여러 번 시도된 바 있는 이른바 ‘제4의 벽’ 허물기다. 앤더슨이 느끼는 공포와 혼란은 이제 관객 스스로가 느끼는 당혹감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걸 매끄럽게 그리고 시리즈 자체 아우라를 느낄 수 있게 온전히 감정으로 유입시키지 못했단 점이다.
영화 '매트릭스: 레볼루션' 스틸.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가장 큰 문제는 앤더슨이 네오로 다시 각성하는 과정까지가 너무 길다. 영화 러닝타임 절반 가량이 지난 이후다. ‘매트릭스’ 특유의 철학적 대사도 수 없이 쏟아진다. 현실의 앤더슨이 무슨 이유로 네오로 다시 각성을 해야 하는지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앞선 트릴로지 3부작이 태어남과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그려낸 것이라면 ‘리저렉션’은 인간 삶 속 보편적이지만 가장 일반화된 감정 하나에 집중한다. 그 감정 하나를 이 얘기 전체의 동력으로 삼기엔 빈공간이 너무 크다. ‘매트릭스’ 시리즈 속 또 다른 주인공이나 다름 없는 ‘모피어스’와 ‘스미스 요원’의 부제도 너무 커 보인다. 그들을 대신한 신예의 존재감은 오히려 너무 큰 무리수로만 다가온다.
영화 '매트릭스: 레볼루션' 스틸.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20년 시간을 뛰어 넘고, 상상 그 이상의 판타지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상업 영화 사상 전무후무한 걸작 시리즈였다. 무엇보다 이 세계관을 뛰어 넘을 영화적 설정이 다시 한 번 등장할지에 관심이 컸다. 그 대답으로 등장한 게 ‘매트릭스: 리저렉션’이다.
영화 '매트릭스: 레볼루션' 스틸.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하지만 지금 세상은 메타버스가 일반화됐다. 가상과 현실 경계가 이미 무너진 상태다. A.I.가 이미 인간을 대체하는 중이다. ‘매트릭스’ 세계관은 이제 더 이상 신기하지도 신선하지도 않다. 오히려 게으른 영화적 창작의 산물이 됐다. 그리고 이 영화, 터무니 없이 길다. 참고 관람하기엔 상상력의 빈곤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원작 시리즈를 오롯이 숙지하지 못했다면 이 영화는 ‘극단적으로 난해한’ 로맨스가 될 뿐이다. 22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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