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지옥 같은 현실 덤덤히, 김사월의 ‘음악 세례’
2년 만에 3집 ‘헤븐’…“방에 박혀 만든 내향적 앨범”
“먼지 한 톨 만큼의 기억에라도 남는 뮤지션 될 것”
입력 : 2020-10-23 00:00:00 수정 : 2020-10-23 00: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어떤 이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노란 불빛을 보면 쫓아가는 버릇이 있어요/그곳은 포근하고 달콤한 것들로 꾸며져 있겠죠 
 
앨범을 돌리던 손가락이 곡 나방에서 멈칫한 건 필연이었다.
 
화사한 빛을 짙은 어둠 저편에서 바라본 기억이 있다. 빛이 꿈의 세계라면, 그 테두리 밖에 있다 결국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가 되는 건 늘 그것을 갈망하는 자신이었다. 타자화(他者化). 몇 번이나 손을 뻗어 봐도 결국은 제자리였다. 빛은 언제나 손가락 한치 앞에 있을 뿐이었다.
 
이 무의식에 망연하던 빛에 관한 기억은 갈 곳 잃은 영혼처럼 헤집고 부유더니, 머릿속을 온통 노란색으로 칠해 버리고 말았다.
 
김사월 3집 '헤븐'. 사진/유어썸머
 
19일 곡의 주인에게 물었다. 노란 불빛에 어떤 기억이 있냐고.
 
화상 화면에 비춰진 방. 어둠 속 김사월이 웃으며 답했다. “노란 불빛을 향해 뛰어들다 결국 타죽고 마는 불나방. 행복과 불행의 한 끗 차이.”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의 3헤븐은 제목부터 수록곡들과 기묘한 이율배반을 이룬다. 그러니까, 오히려 행복의 반대 지점을 그려냄으로써 헤븐의 상실성을 극대화하는 효과. 화자는 지옥 같은 현실의 여러 상황을 담담히 풀어가는,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을 ()의 세계를 가상의 헤븐처럼 거닌다.
 
음반상의 헤븐은 말하자면 이런 거예요. ‘, 이 세상 끝나버렸으면 좋겠다하는 투정이나 넋두리 같은 것. 버티고 버티다 끝내 입 밖으로 내뱉으면 살짝은 해소되는 그런 느낌이요.”
 
김사월. 사진/유어썸머
 
앨범 타이틀과 동명의 곡이 이번 음반 전체를 엮는 주제가다. 분당 박자수 130이 조금 넘는 리듬에 겹쳐내는 김사월의 무심하되 아릿한 목소리는 이 세상의 온갖 저주와 무례조차 기어코 무릎을 꿇을 만큼 성스럽다. 자신과 타인, 세상을 두른 고민들이 음악의 세례를 통해 용서가 됐단다.
 
용서?’ 화면 속 그가 컴퓨터에 담아뒀던 메모를 뒤적거렸다.
 
극단적인 감정을 오가는 삶은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고, 이를 타자와 공감하고 연민할 수 있다면 우린 그 고통 속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용서는 자유의 의미예요.”
 
김사월. 사진/유어썸머
 
평소 그의 음악을 스쳐가는 가을날의 미풍 같다고 생각했다실체가 잡힐 듯그러나 윤곽도 무게도 없이 투명하게 흘러버리는.
 
밝음과 어두움 사이를 오가는 목소리어쿠스틱이나 클래식 기타줄의 단출한 튕김 만으로 생성하는 너른 잔향들과 때론 이를 전복시키는 사이키델릭 톤의 전자기타 사운드.
 
신보는 전작들보다 조금 더 과감한 장르적 선 넘기와 입체적인 음향 설계가 돋보인다김해원이 공동프로듀서로 참여하던 전작 1, 2집과 달리 이번엔 김사월이 직접 편곡과 프로듀싱음향 디자인 전반을 맡았다.
 
헤븐의 색채를 기반으로 다른 수록곡들은 각자가 비슷하되 다른 형태로 뻗어간다. 클래식 기타의 몽환적인 연주로 시작되다 보컬 딜레이를 걸어버리는 실험(‘확률’)이나 90년대 얼터너티브를 연상시키는 록적 사운드(‘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상처 주는 키를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어(사상키)’)는 담백한 포크를 넘어 김사월 코드의 외연을 한층 확장시킨다.
 
총과 칼, 폭발 같은 다소 극한적인 노랫말들은 이 확장된 음악 안에서 한껏 자유감을 누리며 떠돈다. 빛을 향해 사라지는 불나방을 자신에 대입하기도(‘나방’) 생과 사를 존재라는 이름 하에 동일하다는 결론을 내리기도(‘사상키’) 한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마음 속 격동을 정리한 앨범. 그는 방에 박혀 만든 다분히 내향적인 태도의 음반이라 요약했다.
 
김사월(가운데). 사진/유어썸머
 
올해 내내 음반 작업을 했다는 김사월은 코로나19의 여파를 근래 들어 체감하고 있다. 오프라인 공연의 종말시대가 되며 음반 소비 주기도 빨라졌기 때문. 이제 갓 한 달이 지난 신보가 체감 상 1년이나 된 것처럼 느껴진다고.
 
오프라인 공연은 앨범과 이어지는 음악가들의 스토리라 생각을 해요. 이제 뭘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으니 저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되고 있는 상황이예요. 하지만 앨범 작업만큼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보면 졸업앨범느낌일 것 같아요.”

김사월은 2014년 듀오 김사월X김해원비밀로 데뷔했다. 이후 지난 5년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신인’, ‘최우수 포크 음반5차례나 수상자로 호명됐다. ‘어떤 음악가로 기억됐으면 하냐는 물음에 그는 먼지 한 톨 만큼의 기억이라도 남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다.
 
2년 만에 낸 정규 앨범, 어떤 여행지처럼 기억되면 좋을까.
 
혼자 떠난 어딘가, 그곳에 예약한 자기만의 숙소 같은 곳. 오롯이 내면에 집중하게 되거든요.” 자신 만의 공간에서, 김사월이 답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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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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