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미 거버넌스 8시간 전

폭염은 참는 것이 아니라 막아야 할 재난이다

한여름 무더위는 이제 계절의 불편함을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이 됐다. 한낮 기온이 35도를 넘고 밤에도 30도 안팎의 열대야가 이어지는 날이 낯설지 않다. 폭염은 태풍이나 홍수처럼 눈에 띄는 흔적을 남기지는 않지만, 해마다 수많은 온열질환자와 사망자를 발생시키는 대표적인 기후재난이다. 특히 노년층은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만성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아 폭염에 더욱 취약하다. 이제 "겨울보다 여름이 더 무섭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라 현실이 됐다. 그렇다면 우리의 복지도 달라져야 한다. 난방뿐 아니라 냉방 역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사회안전망으로 바라봐야 한다.

며칠 전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된다는 예보를 들으며 90세가 넘으신 시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렸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에어컨이 고장 나 며칠째 선풍기만으로 더위를 견디고 계셨다. "왜 진작 말씀 안 하셨어요?"라고 묻자 어머님은 "선풍기로도 견딜 만하다"고 하셨고, 아버님은 "원래 에어컨은 잘 안 튼다"며 웃어 넘기셨다. 하지만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정말 괜찮아서가 아니라 전기요금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더위를 참는 것이 습관이 된 어르신들에게 에어컨은 있어도 마음껏 켜기 어려운 가전제품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모습은 우리 시부모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름은 해마다 길어지고, 전기요금 부담은 냉방을 망설이게 만든다. 폭염특보 문자가 휴대전화에 울릴 때마다 누군가는 실내에서 더위를 피하지만, 누군가는 전기요금을 걱정하며 선풍기 바람에 의지한다. 같은 폭염이라도 누구에게는 불편함이지만, 누구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되는 이유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에너지 복지는 겨울철 난방 지원에 무게를 두어 왔다. 물론 난방 지원은 앞으로도 중요하다. 그러나 기후위기로 계절이 바뀌고 있다면 복지의 기준도 함께 달라져야 한다. 냉방은 더 이상 생활의 편의를 위한 소비가 아니라 폭염으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필수재다. 여름철 냉방 지원 역시 난방 지원과 같은 비중으로 논의돼야 하는 이유다.

정부도 최근 몇 년 사이 에너지바우처를 확대하고 여름철 냉방 지원을 강화하는 등 제도를 꾸준히 손질해 왔다. 이전보다 실질적인 도움이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도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지원 대상의 문턱을 조금 더 낮출 필요가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일부 차상위계층에 머물러 있는 지원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중위소득층까지 살펴봐야 한다. 특히 은퇴한 노년층은 소득 기준은 넘더라도 의료비와 생활비를 제외하면 냉방비조차 부담스러운 경우가 적지 않다. 기준선을 조금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폭염 속에서 홀로 버티게 하는 것은 복지의 취지와도 거리가 멀다.

폭염이 장기간 이어질 때는 보다 과감한 대책도 검토할 만하다. 폭염특보가 발효된 기간만이라도 냉방 전기요금을 한시적으로 추가 감면하거나 냉방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에어컨을 보급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기요금이 두려워 전원을 켜지 못한다면 정책은 현실에서 절반만 작동하는 셈이다. 필요한 순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생명을 지키는 제도가 된다.

기후는 이미 변했고 우리의 일상도 그에 맞춰 달라지고 있다. 이제 복지도 과거의 계절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폭염 앞에서 먼저 전기요금을 계산해야 하는 사회라면 아직 우리의 에너지 복지는 완성되지 않았다. 더위를 참는 것이 미덕이던 시대는 지나갔다. 폭염은 자연현상이지만, 더위를 참게 만드는 것은 사회의 선택이다. 누구도 전기요금 때문에 생명을 담보로 더위를 견디는 일이 없는 사회, 그것이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만들어야 할 에너지 복지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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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도란도 P · 8시간 전

재난 인정입니다

성하기 G · 8시간 전

나이드신 분이나 어린이는 여름나기가 더 어렵죠

열린창문 G · 7시간 전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향후에 어떻게 적응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