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더 기울어진 운동장…"자동차 하청업체 보호 위해 특단조치 필요"
14년 이후 하도급 관련 신고 중 고발 0.27%…서보건 변호사 "현 제도, 하도급법 위반하란 시그널 격"
2018-09-11 16:57:46 2018-09-11 17:46:03
[뉴스토마토 강명연 기자] 자동차산업 내 하도급 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술탈취를 넘어 차량 전체의 구조를 만드는 금형에 대한 탈취까지 서슴지 않고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현재의 하도급 관련 법으로는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피해 협력업체 경영진이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 전에 공정거래위원회나 중소벤처기업부 소관 법률에 따라 보호받은 사례가 하나도 없다." 현대자동차의 2차 협력업체였던 태광공업이 1차 협력사인 서연이화로부터 금형탈취를 당한 사건의 변호를 맡고 있는 서보건 변호사(법률사무소 태서)는 현재의 법제도로는 중소 하청업체를 결코 보호할 수 없다며 탄식했다. 구체적으로는 하도급법, 공정거래법, 상생법 등 기존 제도에 대해 "원청과 1차 협력업체가 2차 협력업체와 우월적 거래관계를 맺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해 계약자유의 원칙을 제한하고자 하는 점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법 제도 도입 취지인 이른바 '갑질 규제'는 현재로서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민법의 3대 원칙 가운데 하나인 계약자유의 원칙은 사인 간 자유계약을 보장하며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온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재산 소유 불평등 심화가 경제적 약자에 불리하게 작용함에 따라 이를 일정하게 제한하는 것이 사회 정의를 실현한다는 인식에 이르렀고, 노동법을 비롯한 사회법이 발달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관련 제도 도입 이후 현재까지 조정협의를 통해 납품단가 조정이 완료되거나 보복행위 금지 위반으로 적발된 사례는 없다.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실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지난 7월까지 하도급거래 관련 신고건수 7298건 가운데 경고 이상의 제재를 받은 경우는 547건, 고발은 20건에 불과하다. 원청이 하도급 관련 불공정행위로 약한 수준의 제재인 경고 이상의 조치를 받을 확률이 7.49%, 가장 강력한 조치인 고발을 당할 확률은 0.27%로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공정경제민생본부 발족식 및 대기업 하도급 갑질피해 증언대회'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정위가 가장 강력한 제재인 고발 조치를 내리더라도 검찰 기소와 법원의 유죄판결이라는 허들이 존재한다는 게 서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검찰 고발 20건 가운데 유죄판결로 결론난 경우도 미미한 데다 이보다 경미한 과징금이나 시정명령이 나와도 원청은 대형 로펌을 동원해 법원의 취소판결을 받아내기 일쑤"라며 "피신고업체 입장에서 현 제도가 하도급법 위반행위를 감행하는 게 합리적인 경영판단이라는 시그널을 준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진서테크, 지아이에스, 태진정밀공업 등 2013년 이후 1차 협력사의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시달리다 납품 중단에 이른 2차 협력업체 경영진 대부분 유죄 판결을 받고 실형을 살았다. 공정위는 물론 사법부 역시 1차 협력사를 거쳐 결국 완성차업체와 전속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2차 협력사 지위를 독점사업자로 판단해 불공정한 계약 성립을 인정하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 7월 태광공업의 1심 판결에서 법원이 하도급거래의 구조적인 영향으로 대등한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1, 2차 협력사가 각각 독점적 수요·공급 관계를 맺고 있는 쌍방독점에서는 협상력 차이에 따라 시장에서 독점가격 또는 수요독점가격이 결정되는데, 원청이 하청의 기술설명을 요구하는 등 일방적인 전속계약에서는 수요독점이 될 수밖에 없다"며 "납품단가 인하를 견디다 못해 인수합병을 받아들인다 해도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채 협력사를 형법으로 규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협력사가 처한 구조적 문제점 개선 없이 납품단가 조정 협의제도 적용범위 확대를 비롯해 미미한 제도수정으로는 협력사 피해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 7월부터 공급원가 변동에 따른 납품단가 조정 요구가 가능해졌지만 기울어진 거래관계가 조정되지 않는 이상 협력사들이 조정을 신청할 유인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4월 중소기업중앙회가 대기업과 하도급거래를 맞고 있는 중소제조업체 504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67.3%가 납품단가 조정 협의권을 사용할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조정 협의권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신원 노출에 따른 거래상 불이익 우려'(43.7%), '조정의 구속력 결여'(7.4%), '제조원가 정보공개에 대한 부담'(11.5%) 등 제도적 미비를 근거로 들었다.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공정거래법 전면개정 당정협의에 참석한 홍영표 원내대표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동수 정무위원, 고용진 정책위 상임부의장, 민병두 정무위원장, 홍영표 원내대표, 김태년 정책위의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홍익표 정책위 수석부의장, 김영진 전략기획위원장, 김정우 당대표비서실장. 사진/뉴시스
 
기술탈취를 넘어 금형탈취를 당하고 있는 협력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계약기간을 보장하고 거래관계 종료에 따른 보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청이 하청업체에 금형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것을 동산 임대차로 판단해 상가임대차보호법제와 유사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임차인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가운데 계약갱신권을 종신 보장하는 일본의 차지차가법(借地借家法)에 준할 필요가 있다는 게 서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전속 거래관계를 맺고 있는 2차 하청업체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금형은 상인 영업의 핵심인 상가와 유사하게 볼 수 있다"며 "상가임대차에서 임대인이 임차인과의 우월적 지위를 갖는 것처럼 대기업과 영세 중소기업 역시 유사한 거래구조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에 준하는 보호규정을 신설할 수 있다"며 "금형 반납이나 금형 이전 역시 '목 좋은 상가'를 넘기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권리금 규정 등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명연 기자 unsai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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