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1박2일 간 방북 후 6일 귀환한 대북 특별사절대표단이 내놓은 ‘특사 방북결과 언론발표문’에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북측의 비핵화 문제 협의 표명 등 굵직한 내용들이 담겼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가운데, 북한이 실천으로 옮길 수 있도록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지적이다. 역대 남북 간 회담을 돌이켜보면 고비마다 정세안정에 큰 역할을 했던 게 사실이나, 강제성이 담보되지 않은 합의로 부침을 거듭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 후 한동안 적대적 대결을 지속한 남북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체결을 기점으로 고비마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결과물들을 만들어왔다. 그 과정은 매우 점진적이었다.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방북과 박성철 제2부수상의 방남을 거치며 마련된 7·4 남북공동성명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 없이 통일을 자주적으로 해결 ▲통일은 무력행사가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 ▲남북 사이에 다방면적인 제반교류 실시 등의 내용이 담겼다. 돌발적인 군사사고를 방지하고 남북 사이에 제기되는 문제들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 서울과 평양 사이에 상설 직통전화를 놓기로 한 것도 이때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의 책 ‘새로 읽는 남북관계사 - 70년의 대화’에 따르면 공동성명 다음 날 문화공보부가 “종래 북괴로 부르던 것을 북한으로 호칭하고 김일성에 대한 중상 비방을 삼가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같은 대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 대결상황은 이어졌다. 공동성명 합의문에서 서명 주체를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 이후락·김영주’로 적은 것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은 사실을 보여준다.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후속조치로 남북조절위원회가 발족되고 회의가 개최됐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한동안 냉전의 대립관계를 이어간 남북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다시 대화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1985년 5월 열린 제8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에서는 분단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했다. 8차 적십자 회담은 1973년 7월 7차 회담이 개최된 후 12년 만이었다. 그해 9월20~23일에는 이산가족 고향방문과 예술 공연단의 서울·평양 동시 교환방문이 이뤄졌다. 이후 경제·체육 분야로도 남북회담이 확대됐으나, 냉전체제를 기반으로 한 적대적 대결구도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소련 등 동구권이 붕괴하며 냉전체제 해체가 가속화 한 1990년대 들어서 남북대화는 활발히 추진됐다. 남북은 각각의 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고위급회담을 개최해 전반적인 남북관계 발전문제를 협의했으며 그 결과 1991년 12월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협의서’(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총 4장·25조에 걸쳐 광범위하게 남북관계 발전방향을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에는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존중 ▲상대방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아니함 ▲국제무대에서 대결과 경쟁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 ▲민족경제의 통일적·균형적인 발전과 민족 전체의 복리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자원의 공동개발, 물자교류, 합작투자 실시 ▲과학·기술, 문화·예술, 보건, 체육 등에서 교류협력 실시와 같은 정치·경제·사회분야를 아우르는 내용이 담겼다.
이듬해인 1992년 발표된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은 핵전쟁 위험을 제고하고 평화통일 환경을 조성한다는 목적에서 마련됐다. 남북이 핵무기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등을 하지 않고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서만 사용할 것과 핵재처리·우라늄농축시설 등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것이 골자다. 다만 이 선언문은 1994년 1차 북핵위기 등을 거치는 동안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1997년에는 북한의 식량난을 돕기 위해 다섯 차례에 걸친 남북 적십자 간 접촉을 통해 ‘남북적십자간 구호물자 전달절차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분야별 남북대화도 활발히 진행됐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체결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은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 ▲8·15에 즈음해 흩어진 가족·친척 방문단을 교환하고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 등 5개 항으로 구성됐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체결한 2007년 체결한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선언)에서는 6·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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