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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패션의 시대)②'재고'의 변신은 무죄
매년 40억원 규모 재고 소각
업사이클·기부로 새 의미 찾아
2016-12-22 08:00:00 2016-12-22 08:00:00
[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오래도록 입고 헤져서 쓰레기가 되는 옷이 있는가 하면 한 번도 입지 않았음에도 쓰레기가 되는 옷이 있다. 바로 '재고'로 분류되는 옷들이다.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나온 첫 해 백화점에서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던 옷들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때까지 세일 매대와 아웃렛을 차례로 전전하게 된다. 3년이 지나도록 선택받지 못한 옷은 결국 소각된다. 브랜드 이미지 관리를 위해 '땡처리' 할인을 하느니 태워버리는 쪽이 이득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렇게 불길 속으로 사라지는 옷은 연간 약 40억원 규모에 달한다. 
 
코오롱인더(120110)스트리 FnC부문이 2012년 선보인 브랜드 '래;코드'의 출발점은 이 같은 3년차 재고다. 소각될 운명이었던 재고를 활용해 새 옷을 만들어낸다. 
 
이미 만들어진 옷을 재활용하기 때문에 공장 라인을 통한 대량생산은 불가능하다. 대신 한 벌의 옷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이 만든다. 장인 정신을 가지고 높은 품질의 옷을 만들 수 있는 점은 장점이지만 한 시즌에 만들 수 있는 제품이 일반 브랜드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한 점은 단점이다. 디자인 작업도 까다롭다. 원단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된 의류를 해체해 새로운 옷으로 탄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제작 과정이 복잡한 만큼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다. 셔츠 한 벌의 가격은 10만~20만원 사이고 80만원을 훌쩍 넘기는 가죽 점퍼도 있다. 하지만 매출은 매년 30%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가치를 알아보는 것이다. 
 
한경애 코오롱FnC 래코드 총괄 상무는 "래코드는 패션의 사회적 참여에 가장 큰 의의를 두고 있다"며 "최근 소비자들의 윤리적 소비에 대한 니즈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가치있는 소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래코드는 의류를 넘어 액세서리 분야도 강화하고 있다. 버려지는 원단조각과 부자재 등을 활용해 가방,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을 만들어 선보이고 있다. 독일군이 사용하던 버터캔, 스위스군의 버너 등을 용기로 활용한 '밀리터리 캔들'도 독특한 소품이다. 래코드는 이 같은 제품을 통해 액세서리, 생활용품 분야에도 업사이클링의 가치를 확산시킨다는 계획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에서 3년차 재고를 통해 만든 옷. (사진제공=코오롱인더스트리)
 
삼성물산(000830) 패션부문의 CSR 매장인 '하티스트'는 '쇼핑이 곧 기부다'라는 콘셉트로 재고 물품 판매를 통한 기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삼성물산은 2014년 9월 패션사업 60주년을 기념해 서울 삼청동에 '하티스트'를 오픈했다. 하티스트라는 이름은 '마음(HEART)'과 '아티스트(ARTIST)'를 합쳐서 지었다. 어려운 이웃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신진 디자이너와 아티스트에게는 판매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하티스트에서 판매하는 재고물품은 삼성물산 산하 각 브랜드의 기증으로 마련된다. 최근 방문한 매장에서는 빈폴이나 엠비오, 로가디스, 빨질레르 등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팔고 있었다. 하티스트 매장 관계자는 "대부분이 2014년, 혹은 그 이전에 만들어진 제품"이라며 "정가 대비 90% 할인판매하며 판매 수익금은 전액 기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상품에는 하티스트 브랜드 라벨을 추가로 부착해 기부의 의미를 살렸다. 
 
다만 지금은 하티스트에서 삼성물산 여성복 재고를 구매할 수는 없다. 작년 5월 있었던 김포 물류창고 화재의 영향으로 재고 물량 확보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르면 오는 23일부터 빈폴레이디스의 재고상품이 들어오고, 내년부터는 정상적인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 
 
현재 하티스트에서 삼성물산의 상품 대신 여성복 층을 채우고 있는 것은 닐바이피, 마론에디션 등 신진 디자이너들의 제품이다. 남성복 층에서도 같은 코너를 운영하며 신진 디자이너의 판로 확보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업사이클링, 친환경 브랜드의 제품도 소개하고 있다. 
 
부정연 하티스트 과장은 "기업의 이윤을 기부·후원하는 기존의 일차원적인 CSR 활동을 넘어 패션 기업의 특장점을 살린 CSR플래그십스토어를 기획하기 위해 업사이클링 전문 디자이너 및 친환경주의 브랜드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며 "패션이 시각에 민감한 산업분야라는 점을 고려해 패션에서 소외된 시각장애 아동들의 예술교육 지원도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CSR 매장 하티스트의 모습. (사진제공=삼성물산)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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