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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아름다운 시민혁명' 이전엔 없었던!
2016-11-13 17:15:24 2016-11-13 17:15:24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노란 은행잎이 길가에 가득하다. 겨울의 문턱을 넘기 전 날씨는 포근하다. 가수 이승환은 이효리, 전인권 등과 함께 노래 ‘길가에 버려지다’를 국민께 헌사했다. 노래는 마치 세월호 리본처럼 흩날리는 낙엽 위에 스며들었다. 노래는 인류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100만개의 촛불을 흔들었다. 그리고 노래는 SNS 시민혁명을 주도한 100만 명의 가슴에도 내려앉았다.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염원하는 온국민의 마음을 응원했다.
 
우리는 지금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일들을 목격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헌법파괴와 국기유린 사태를 저지른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제로 퍼센트에 가깝다. 적어도 이 분야에 관한 한 그의 공약이기도 했던 ‘100% 대한민국’을 실현한 것처럼 보인다.
 
온국민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남녀노소가 없다. 부모 손을 잡고 나온 초등학생부터 중고생, 대학생을 넘어 직장인, 자영업자,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도 보인다. 시민들의 정치적 감각은 아주 극적으로 깨어난다. 대구 여고생의 연설과 세 딸을 키우는 어머니의 연설, 100만 집회의 말미에 사자후를 터뜨린 민변 변호사의 연설은 민심의 도저한 흐름이 자발적이고 주체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혁명이다. 이것이 SNS 시민혁명인 이유는 이 모든 것이 SNS를 통해 알려지고 또 SNS를 통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JTBC, TV조선 등 기존 방송들과 고발뉴스, 미디어몽구를 비롯한 1인 미디어들의 활약이 SNS 시민혁명의 도화선이 됐음은 물론이다. 너무 평화적이어서 기이하기까지 한 이 시민혁명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가지않은 길이 새롭게 열리고 있다.
 
‘길가에 버려진’ 것은 권력이다. 박 대통령이 송두리째 사유화하고 파괴한 권력이다. 민주공화국을 변종 쿠데타 수준으로 유린한 참혹한 권력이다.
 
한나 아렌트는 혁명가에 대해 “권력이 길가에 버려진 때가 언제인지를 알며, 그것을 주워들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지금 그것을 아는 것은 유일하게 국민이다. 안병진 교수는 마치 예언하듯 그의 책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에서 “정치에서 새로운 것은 항상 기적의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는 아렌트의 말을 인용했다. 국민들은 알아차렸다. 권력이 길가에 버려졌다는 것을. 이승환은 노래했다. ‘길가에 버려지다”.
 
이승환이 등장하자 광장은 100만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사상 최대의 콘서트였다. 시민혁명은 순식간에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이승환은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Fall to Fly’ ‘물어본다’ ‘덩크슛’ 등 자신의 히트곡을 불렀다. 그가 늘 부르던 사랑노래였지만 이날 만큼은 혁명의 진혼가였다. 그는 "요새 제가 노래할 때 최순실, 그리고 몸통이신 박근혜로부터 너무 많은 폭행을 당하는 느낌이다. 이런 날이 또 올지 모르겠지만 주문 외우고 싶다. 샤먼퀸을 위해서 주문을 외운다. 야발라바 하야하라 박근혜”라고 말했다. 열창에 열창을 이어갔다. 몸을 던지고 혼을 던졌다. 상처받은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사랑노래는 그의 간절한 태도에 압도됐다. 순간 그 노래는 더 이상 사랑노래에 머무르지 않았다. 시민혁명은 각각의 일상들이 하나로 모여들어 거대하고 아름다운 한 개의 촛불로 타오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승환은 광장에 참여한 시민들과 똑같은 정치적 감각의 극점에서 메시지를 던졌다. 사람들이 듣고싶어 했던 바로 그 메시지였다. 앞쪽에 있던 민주당 표창원 의원을 거론한 뒤 "전 시민들 편이지 정치인 편이 아니다. 야당 정치인 여러분, 지금이라도 재지 마시고 국민 위해 힘써 달라”고 했다. 계산하지 말라고 했다.
 
이날 광장엔 야당,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많은 국민들은 총선에서 제1당을 만들어준 민의를 무시하고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는 민주당에 크게 실망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헌법을 파괴했다면, 그 대통령 앞에서 민주당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그들은 시민들의 광장정치를 폄훼하고 집회의 순수성 훼손을 운운하며 자신들의 비겁을 은폐하려 했다. 국민들이 이 순간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상식과 정의를 위한 정치를 외면하고 온갖 계산기를 들이대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기에 바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이 명명백백하게 보여주듯이 기득권 엘리트집단의 모든 계산은 틀리게 돼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상황을 고정적인 것으로 보고 과거의 잘못 설계된 계산기로 계산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들의 분노는 기득권엘리트 집단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과 상상을 한참 뛰어넘은 것이다. 정치 컨설턴트 공희준 씨는 “국민은 빛의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데 야당 정치인들은 삼보일배로 따라오고 있다”고 일갈한다. 분쟁 전문 싱크탱크인 ‘국제위기그룹(ICG)’ 장 마리노 게에노는 정치는 개인들의 이해관계에 앞서 존재하는 사회적 계약을 포함한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했다. “만약 이 전제가 무시된 채로 눈앞에 보이는 이익이 협상의 대상이 된다면 정치는 그저 시장의 기능으로 축소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치적 공간은 즉시 소멸될 위협에 처할 것이다.”(안병진,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 재인용)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자신들의 유불리를 넘어 이제라도 11·12시민혁명이 제기한 ‘거룩한 정의’에 화답해야 한다. 민주공화국 헌법을 파괴한 대통령에 대한 강력한 퇴진투쟁과 탄핵발의라는 투트랙을 병행해야 한다. 쪼잔하고 비겁한 대선시계를 집어던지고 정의로운 길로 당장 나서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들의 퇴진 요구를 끝내 무시한다면, 여야 국회의원들은 즉각 탄핵절차에 착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 스스로도 ‘길가에 버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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