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
영남 신공항 결정이 이르면 6월24일에 있을 예정이다. 그러나 신공항 결정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시작'이다. 입지 선정에서 떨어진 쪽은 대구든 부산이든 그들이 공언한 대로 민란이나 폭동 수준의 거센 저항을 시작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그리고 그 맨 앞은 지역 주민들에 떠밀린 부산시장이나 대구시장이 서 있을 것 같다. 머리띠를 두르거나 삭발을 하는 국회의원의 모습도 눈앞에 선하다.
박근혜 정부는 이 결정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어느 쪽을 결정하든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 기반의 절반을 잃을 공산이 크다. 정치에서 치열한 것은 이익을 얻는 쪽이 아니라 손해를 보는 쪽이다. 결정에 따라서 대구지역이든, 부산지역이든 극심한 반발을 불러올 것이다. 이 정부의 속마음은 내년에 있을 다음 대통령 선거 이후까지 이 문제를 미루고 싶을 것 같다. 양 지역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 여전히 기대감과 환상을 갖고 있어 결정이 미뤄진다면 정부를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태를 여기까지 몰고 온 상대방 지역을 맹렬히 비난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정부는 이 짝사랑을 대선 정국까지 끌고 가서 여전히 한 덩어리의 영남 몰표를 기대하고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문제에서 발을 빼고 싶어 하지 않을까?
지금 정부는 이 뜨거운 감자를 다음 정부에 넘기고 싶어 할 것이다. 그때 집권한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지 결정하면 그 반대쪽에 서서 맹비난을 쏟아부으면서 그 지역을 지지세력으로 공고히 할 수 있다. 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영남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집권여당에게 가장 정치적 이익이 되는 선택이다.
지금은 마치 사생결단이 날 것처럼 대구와 부산 지역에서 여론몰이를 하고 있지만, 조금만 옆으로 비켜나서 한 차례 결정을 연기할 수 있다면 지금의 그 열정이 조금은 쑥스러워질 수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공공 정책은 사회적 공론이 생길 때까지 시간을 두고 토론하고 숙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입장도 이해하게 되고 그 자체가 지나친 열정을 식힐 수 있는 길이다. 신공항 결정은 아직 이 단계까지 정치적 합의가 성숙하지 않은 것 같다.
이럴 때는 더운 열정을 아스팔트에서 뿌릴 것이 아니라, 양쪽 대표들이 모여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논쟁을 하는 것이 성숙한 합의로 가는 지름길이다. 사실 전문가들의 비용편익 분석이라는 것이 크게 믿을 것이 못 된다. 국내 전문가들은 혹시나 이해관계자일 수 있어 프랑스 업체에게 타당성 평가에 관한 용역을 맡겼다고 한다. 세칭 이 과학적 비용편익 분석으로 양쪽 지역 주민들을 설득할 수 없다. 이 분석에는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너무 많아서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 대통령 공약 사업으로 시작된 정책들의 비용편익 분석은 단기적 시계와 장기적 시계에 따라 그 결과가 너무 달라진다. 예컨대 새만금 매립이나 경부고속철 정책에 대해 당시 전문가들은 누구나 말도 안 되는 사업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장기적 시각으로 보면 이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첨예한 사회적 갈등이 표출되는 정책은 소위 전문가들의 객관적 분석에 맡길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이해관계자들의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이익과 손해는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공항을 짓는데 주변이 산이냐, 바다이냐는 두 번째 문제이다. 합의만 이뤄진다면 지형에 맞춘 공항을 설계하면 그만이다. 대구나 부산이나 광활한 평야나 넓은 백사장에 공항을 세우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공항 입지에 따른 경제성 검토 역시 정치사회적인 변수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두 지역 모두 지금 당장 공항 건설에 사활적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기존 공항뿐만 아니라 도로, 철도 등 다른 대체 교통수단이 있다.
더 큰 비용편익은 섣부른 공항 입지 결정이 가져올 사회적 비용이다. 예정대로 6월 말에 특정 지역으로 결정되면 그 뒤는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사회적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현명하게 결정된다면 굳이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불필요한 비용이다. 영남 지역에서 지역 이해의 열정으로 끓어 오른 정책을 사회적 숙의가 성숙되기도 전에 섣불리 결정할 이유가 현재로써는 전혀 없다.
야권의 정치 지도자들도 지역적 이해관계에 따라 특정지역 유치를 옹호하고 있다. 그들이 이런 맥락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래도 지역구 유권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2006년 참여정부에서 시작된 정책이면 그에 대한 책임의식도 있을 것이다. 이제 이 문제는 부산지역을 넘어서 영남지역 전체의 이해관계로 진화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지역 개발 공약을 넘어서 전국적인 관심을 집중시키는 사안이 되었다. 다음 정부를 꿈꾸는 정치인들이라면 특정 지역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전국적 안목으로 정책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프랑스 혁명에서 7월은 '뜨거운 달(열월)'인 테르미도르라고 했다고 한다. 이번 여름은 영남에서 아스팔트의 따가운 열월이 될 것 같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기름을 지고 이 화염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냉각수를 뿌리는 일이 아닐까? 그것이 정치가 정치다워지는 길인 것 같다.
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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