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19대국회서 길을 잃다)경제민주화 입법, 시작은 창대했으나 결과는 뱀꼬리
2012년 4월 이후 시민단체 자료 81건 분석…36가지 법 중 29개 여전히 계류
입력 : 2016-01-27 07:00:00 수정 : 2016-01-27 07:25:54
지난 19대 국회 4년은 경제민주화가 선거용 구호에 불과했음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2012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연이어 열리며 선거 정국이 펼쳐졌다. 경제민주화는 여야의 공통 공약이었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경제민주화 법안은 번번이 본회의에 오르지 못했고, 야권과 시민사회가 반대한 법안은 대부분 입법으로 이어졌다.
 
여야 공약에도 초라한 성적표
시작은 창대했다. 2012년 4월 19대 국회가 문을 열자 정치권은 앞다퉈 경제민주화 법안을 쏟아냈다. 지금은 더불어민주당으로 간판을 바꿔 단 민주통합당은 같은 해 5월30일 임대료 상한을 두는 주택임대차보호법,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는 대·중소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등록금 상한액을 정하는 고등교육법, 최저임금법 개정안 등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새누리당도 이러한 흐름에 몸을 실었다. 새누리당은 총선이 끝나자마자 '공약 이행을 위한 실천본부'를 꾸렸다. 경제민주화와 일자리 창출, 복지 분야에 힘쓰겠다는 약속이었다.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19대 국회 개원 후 100일 이내에 관련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다. 골목상권을 지키는 유통산업발전법, 부당한 단가 인하에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리는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도 잇따라 내놓았다. 앞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총선을 앞둔 2012년 4월8일 '총선 공약의 이념적 가치의 변화' 자료에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18대 국회 때보다 진보적 방향으로 이동했다"며 "변화의 수준은 새누리당이 훨씬 크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끝은 미미했다. 훈풍으로만 여겨지던 경제민주화는 역풍을 맞았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시민단체가 지난 4년간 요구한 36가지 경제민주화 법 가운데 국회 문턱을 넘은 건 가맹사업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 4개뿐이었다. 불공정 하도급 거래를 막기 위한 건설산업기본법,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등 3개는 일부만 받아들여졌다. 나머지 29개 법들은 여전히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결국 '반짝 입법'에 그치고 만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단체 목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2012년 4월12일부터 지난 15일까지 참여연대와 경실련, 전국을살리기국민운동본부 등 시민단체가 배포한 경제민주화 관련 보도자료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만 추려도 81건에 이른다.
 
이들의 입법 촉구 과제는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경제민주화국민운동본부는 2012년 11월13일 골목상권 진출 규제, 법인세제 강화 등 12개 정책 과제를 발표했다. 2년 뒤인 지난해 11월11일 참여연대 등이 꼽은 민생 법안에는 이들 중 8개가 그대로 실렸다. 그나마 목록에서 빠진 비정규직 차별 규제 등 노동 분야에 대한 목소리도 여전하다. 그만큼 경제민주화 법들이 19대 국회에서 외면받았다는 의미다.
 
시민단체 반대 법안은 '승승장구'
경제민주화의 반대편에 선 법들은 승승장구했다.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이나 성명을 통해 악법이라고 밝힌 법은 24가지였다. 이 가운데 절반인 12개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폐기 처리된 법을 제외하고 아직 10개 법도 국회에 계류돼 있다. 특히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이른바 '노동 5법' 등 7가지는 정부·여당이 본회의 처리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시민단체가 반대한 법에선 정부가 가장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정부는 26가지 법에서 8차례나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나머지는 모두 새누리당 의원들로 채워졌다. '원샷법'으로도 불리는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제정안을 발의한 이현재 의원을 비롯해 이른바 '노동개혁' 법안을 당론으로 대표 발의한 김무성·이인제 의원이 2번씩 등장했다.
 
시민단체가 지난 4년간 발표한 자료를 보면 경제민주화의 처지도 읽을 수 있다. 시민단체 태도는 2014년을 기점으로 공세에서 수세로 바뀌었다. 박근혜 정부 2년차를 맞아 경제민주화 흐름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2013년까지 시민단체가 내놓은 자료는 '유통법 등 중소상인 보호법 처리 촉구'(2012년 10월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일감 몰아주기 방지 관련 공정거래법 개정 의견'(2013년 6월 경실련) 등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2014년에 접어들면서 '박근혜 정권이 통과를 압박하는 법안 반박'(참여연대), '정부 주장 민생법안은 특정계층 특혜'(경실련) 등으로 방향이 바뀐다.
 
이러한 흐름은 새누리당의 변화와도 궤를 같이한다. 19대 초반만 해도 '반재벌 국회'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때 쏟아진 법안들은 당명을 지우면 어느 당에서 낸 것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한 기간제법, 청년 고용을 의무화한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더민주(당시 민주통합당)가 당론으로 내놓은 이 법안들은 비슷한 시기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과 윤영석 의원도 함께 발의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여당의 경제민주화 입법 활동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의원 시절 발의해 2013년 말 통과한 공정거래법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난 선거 때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라는 큰 슬로건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많이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거의 다 지켜졌다. 부족한 점은 입법을 통해 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순민 기자 soonza00@etomato.com
 
그래픽/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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