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19대국회서 길을 잃다)재계, 상법에 떨고 원샷법 '미소'
"재벌 심장 향한 공약, 반신반의"…정부·여당, 재계 '민원 창구'로
입력 : 2016-01-27 07:00:00 수정 : 2016-01-27 07:00:00
지난해 6월16일 상법 개정안 입법 공청회가 열린 국회의원회관에선 진풍경이 벌어졌다. 세미나실은 여느 때와 달리 참석자들로 붐볐다. 대기업마다 2~3명씩 나와 자리를 메웠다. 공청회를 주관한 더불어민주당 우윤근 의원 쪽에서도 놀란 눈치였다. 우 의원실 관계자는 "공청회장에 빈 자리가 많을까봐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개별 기업이나 경제단체 등 평소엔 얼굴도 보기 힘든 사람들로부터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여러 차례 되풀이됐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 때면 경제단체 관계자뿐 아니라 기업 대관 담당자들이 회의실 앞에 줄을 섰다.
 
상법 개정안이 재계의 주목을 받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5월21일 우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집중투표제의 단계적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다중대표소송 도입 등 하나 같이 재계가 꺼려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감사위원을 다른 이사와 분리해서 선임하면 대주주 운신의 폭이 줄어든다. 대주주와 사이가 먼 사람도 감사 업무를 맡을 수 있어서다. 현행법을 따르면 이사 중에서도 감사위원을 선출할 수 있다. 경영권의 입김이 그대로 들어가는 구조다. 우 의원실 관계자는 "개정안은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갖추기 위해 선임 단계부터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한다"며 "기업 입장에서 꺼리는 사람이 내부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에 싫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은 애초에 박근혜 대통령 공약이었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 '세상을 바꾸는 약속, 책임 있는 변화'를 보면 경제민주화 부분에 집중투표제·다중대표소송 도입,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 등 상법 개정안의 내용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새누리당도 19대 총선 공약집에서 기업 집단에 대한 '사회적 견제 장치 강화'를 내세웠다. 법무부는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지난 2013년 7월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우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법무부는 법안 심사를 신청하지도, 발의하지도 않았다. 더민주 관계자는 "기업 지배구조 문제는 마치 재벌의 심장을 건드리는 것과 같다. 곳간 열쇠를 누가 쥐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라며 "가장 힘센 집단을 건드리는 셈이어서 공약이 나왔을 때부터 반신반의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공약이 뒤바뀐 시점은 2013년 8월28일이었다. 상법 개정을 둘러싼 재계 반발이 고조되던 때였다. 박 대통령은 이날 10대 재벌 총수와 만나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입법이 되면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이때부터 거꾸로 경제민주화 법안에 찬물이 끼얹어지기 시작했다. 정부·여당은 재계의 '민원'을 들어주는 입법 활동으로 돌아선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해 4월17일 '사업재편지원특별법 제정 건의문'을 정부와 국회에 제출했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사업을 재편하면 상법·공정거래법상 특혜를 주고,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까지 함께 제공하자는 것이다. 일명 '원샷법'으로 불린 제안은 3개월 뒤 새누리당 이현재 의원이 발의한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제정안으로 거듭났다.
 
재계 요구에 정부·여당은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야당의 반발로 법안 처리가 더뎌지자 박 대통령은 '국회 심판론'까지 꺼내들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야당이) 대기업 특혜법이라고 억지 주장하면서 발목을 잡는다"며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야권 관계자는 "원샷법은 인수합병을 할 때 주총을 거치지 않도록 해 기업 지배구조와 연결된다. 국내 굴지의 재벌이 청와대로 압력을 넣는다는 얘기도 들린다"며 "지난해부터 이미 기획재정부 차관 선에서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불러 법안 제정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원샷법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지난 13일 취임한 주형환 산업부장관은 바로 직전까지 기재부 차관을 지냈다. 
 
이순민 기자 soonza00@etomato.com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8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역 광장에서 경제단체 주관으로 열린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천만 서명운동' 행사장을 찾아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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