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19대국회서 길을 잃다)재계 입법창구 변질된 국회…'경제민주화' 대신 '규제완화'
민원만 69건…제개정 요구 법안 54건 중 18건 '재계 뜻대로'
입력 : 2016-01-27 07:00:00 수정 : 2016-01-27 07:00:00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등장한 19대 국회의 지난 4년은 '역행'이었다. 취재팀이 19대 국회 입법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2년 19대 국회가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재계는 54가지 법을 새로 만들거나 고쳐야 한다고 여의도를 압박했다. 28개 법의 재·개정안을 통과시켜서는 안된다고 으름장도 놨다. 재계의 정책 건의는 실제 입법으로 이어졌고, 야권과 시민사회가 요구한 법안들을 잠들게 했다.
 
4년간 민원만 69건, 18개 법 '뜻대로' 통과
 
2012년 4월 19대 총선이 치러졌을 때 우리 사회의 화두는 '경제민주화'였다.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이 국민적 반감을 샀고, 불평등으로 인한 양극화만 심화됐다. 이는 같은 해 치러진 대선으로도 이어졌다.
 
경제민주화 바람을 보는 재계 시선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총선 다음날인 2012년 4월12일 '19대 총선 결과에 대한 경영계 논평'을 통해 "(경제)불확실성은 선거과정에서 있었던 포퓰리즘적 복지공약 등 정치권 행태에 기인해 더욱 가중돼 왔다"면서 "경제가 장기적 성장과 발전을 유지하려면 선거과정에서 무분별하게 제기됐던 불합리한 공약들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엄포가 아니었다. 재계의 '민원'은 19대 국회 내내 줄을 이었다. 경제단체가 지난 4년간 경제 법안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면서 찬반을 밝힌 자료만 모두 69건이었다. 2012년 4월12일부터 지난 15일까지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정책자료를 전수 조사한 결과다. 상의가 31건으로 가장 많았고, 전경련 23건, 경총 11건 순이었다. 경제 5단체가 공동으로 발표한 자료도 4건이었다.
 
경제단체가 제·개정해 달라고 국회에 요구한 법은 54가지였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학교 주변에 호텔을 건립할 수 있도록 하는 관광진흥법, 외국인 합작투자 규제를 완화하는 외국인투자촉진법 등 규제완화에 초점이 맞춰진 13개 법이 재계 뜻대로 개정됐다.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상에서 중견기업을 제외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비롯한 5개 법안도 재계 요구가 일부 받아들여졌다.
 
16개 법 제·개정안은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중 재계가 법안 통과를 줄기차게 강조해온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일명 '원샷법'으로 불리는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제정안은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경제단체는 지난해 내내 경제계 공동 건의문과 업계 의견 조사 등을 통해 이들 법안의 처리를 압박했다. 최근에는 '민생 구하기 입법 촉구 1000만 서명운동'으로 여론전을 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서명운동에 가세했다. 여야는 오는 29일 원샷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19대 국회가 문을 닫는 시점에서 재계의 바람이 또 한 번 이뤄지는 셈이다.
 
재계가 요구한 20개 법에 대해서는 국회가 제·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수도권 공장 증설 허용이나 화학물질  규제 완화 등 여론에 민감한 내용으로, 입법 자체가 쉽지 않았다.
 
경제단체의 '규제개혁 건의'는 국회를 거치지 않는 방법으로 이뤄지기도 했다. 공공정보화 시장에 대기업 참여를 막은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이 법이 시행된 지 3년 만인 지난해 말 신기술이 적용된 분야에 대기업이 참여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노동입법' 반대에서 촉구로 돌변
 
재계는 특히 노동법에 가장 민감한 모습을 보였다. 국회를 통과해선 안 된다고 재계가 주장한 법은 28가지였다. 이 가운데 노동 분야 법이 16개로 가장 많았다. 재계의 목소리는 거셌다. 여야가 본회의에서 가결시킨 노동 분야 법은 3개에 불과했다. 상의는 19대 국회 초반인 2012년 11월1일 127페이지에 달하는 '국회 계류 노동법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 자료를 내고, 법안들을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그나마 국회를 통과한 법들도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의무화하고, 육아휴직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수준이었다. 갑을관계 논란 속에 '남양유업 방지법'으로도 불리던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가맹사업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 경제민주화 법안들도 일부 통과됐다.
 
재계가 지난 4년간 내놓은 입법 과제도 노동으로 시작해 노동으로 끝났다. 상의는 2012년 5월25일 '19대 국회 노동입법 방향에 대한 기업 의견 조사' 자료를 냈다. 기업 인사노무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가장 부담되는 노동 공약을 조사한 내용이었다. 19대 국회가 개원하기 직전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당시 민주통합당이 노동시간 단축과 비정규직 규제 강화 등을 공통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에 대한 우려이자 반발이었다. 
 
노동 입법에 반대하던 재계는 4년이 흐른 지금 노동 입법 '촉구'로 방향을 틀었다. 경제 5단체는 지난해 12월21일 긴급 기자회견문을 내고 새누리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이른바 '노동개혁' 법안들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새누리당은 지난해 9월16일 기간제 사용 기간을 늘리고, 파견업무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5개 법안을 발의했다. 경제 5단체는 "노동개혁 법안은 사용자에게 유리하도록 만든 법안이 아니다"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노동시장 개혁이 고용창출의 길"이라고 했다. 재계는 한결 같았다. 국회가 초심을 잃었을 뿐이다.
 
이순민 기자 soonza00@etomato.com
 
그래픽/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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