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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 조항' 여전…임차인 잡는 상가임대차법 개정안
임차인 계약갱신 요구 어려워 "월세 올릴 명분 주는 것"
2015-06-14 12:45:15 2015-06-14 14:52:30
#서울에서 지난 2012년 6월 점포 임대차 계약을 맺고 영업을 하던 A씨는 2년 뒤 건물주로부터 별다른 통지를 받지 않은 채 계약이 묵시적으로 갱신돼 최근까지 장사를 해 왔다. 이후 건물주가 바뀌고 묵시적 갱신에 의해 연장된 1년이 다 돼 가기 한 달 전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A씨는 이번에도 건물주의 통지가 없어 자동으로 계약이 갱신됐다고 여기고,개정안에 따라 영업 기간도 늘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계약 만료 하루 전 건물주가 돌연 재계약 거절 통지를 했다. 무방비로 영업에만 집중하던 A씨는 권리금을 회수할 새도 없이 점포를 비워줄 위기에 처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분쟁이 불거지고 있다. 여전히 임차인들에게 불리한 조항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13일부터 시행된 상가임대차보호법의 핵심은 건물주가 바뀌어도 보증금 액수와 상관없이 5년 계약 갱신 요구권 보장과 기존에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권리금을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약 23%에 달하는 환산보증금 4억원 초과 점포 임차인들이 수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계약 갱신 요구를 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이지 상가 임대차 계약 시 무조건 5년 동안 영업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따라서 임차인은 임대차 기간이 만료되기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 사이에 계약 갱신을 요구해야 하고,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절할 수 없다. 하지만 임차인이 별도로 계약 갱신 요구를 하지 않았다면 묵시적 갱신으로 볼 이유가 없기 때문에 임대인은 계약 만료 한 달 전, 심하게는 하루 전에도 점포를 비워 달라고 할 수 있다.
 
권리금 역시 계약 종료 3개월 전부터 만료 시점까지 기존 임차인이 새로운 임차인을 구해온 경우에만 지급받을 수 있는 것이어서 계약 종료 직전에 재계약 거절 통지를 받았다면 새로운 임차인을 구할 여유가 없어 사실상 권리금 회수는 불가능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상가 임대차 시장에서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은 건물주가 월세를 올릴 때나 재계약을 한다고 생각하지 건물주의 별 다른 통지가 없다면 월세 인상 없이 묵시적 갱신으로 영업을 이어가는 것이 관행"이라며 "상대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는 임차인이 계약 갱신 요구를 한다면 임대인은 월세를 올릴 명분이 생기고, 임대인의 눈치를 보느라 묵묵히 장사만 하는 임차인은 재계약은커녕 권리금까지 박탈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임차인이 현재 임대료를 연체한 상태가 아닌 과거에 연체한 사실만으로도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장받지 못한다. 이전에는 임차인이 3회분에 해당하는 임대료를 연체한 사실이 있을 때 임대인이 계약갱신 요구만을 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정안에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이 신설되며 기존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받는 행위를 임대인이 방해할 수 있는 명분으로 계약갱신 요구 거절 사유를 준용한 것이다.
 
권리금 분쟁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재개발·재건축 정비구역 세입자에 대한 보호 조항도 개정안에서는 빠졌다. 현행법은 임대인이 건물을 철거하거나 재건축하기 위해 건물이 점유를 회복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비구역 내 상가세입자는 정비사업 시행시 권리금 회수가 어렵기 때문에 사업시행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계약갱신 요구권을 최대한 보장받아야 한다. 하지만 사실상 정비구역지정부터 실제 이주가 필요한 관리처분인가 까지는 최소 5년 이상 소요되는데도 불구하고 임대인은 정비사업 시행에 따르는 영업보상 회피 등을 위해 관리처분 전에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정비사업 비중이 높은 서울의 경우 상가임대차상담센터에 접수된 민원을 분석한 결과 재계약과 계약갱신·해지 관련 상담이 전체의 35%를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서울시는 관련 보호 규정을 담은 개정안을 법무부와 국토교통부에 건의한 바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5년 이내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예외 사유를 관리처분인가로 명시하고, 관리처분인가가 안 된 정비구역에서 정비구역 지정 공람공고 이전부터 영업한 세입자는 5년이 초과되더라도 관리처분시까지 계약갱신 요구권을 확장하면 재개발 구역 내 상가 임차인이 투자금 및 권리금을 최대한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여전히 임차인들의 불안을 해소해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과 '전국상가세입자협회' 회원들의 지난 집회 현장. 사진/ 뉴시스
 
방서후 기자 zooc60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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