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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던진 부메랑 '성완종 리스트'
"MB맨 아니다" 강한 부정 속 '친박계' 그림자
"경선때부터 朴 도왔는데.." 배신감 작용한 듯
2015-04-10 16:00:00 2015-04-11 12:19:05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폭로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검찰은 물론 정계까지 빨아들이고 있다. 성 전 회장은 자살 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기춘, 허태열 두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돈을 건넸다고 폭로했다. 숨진 그의 상의 주머니에서는 유력 전·현직 정치인 8명의 이름이 적혀 있는 메모지가 발견됐다.
 
특히 이 중 6명은 성 전 회장이 돈을 건넸다는 암시와 함께 이름과 금액이 기록되어 있다. '유정복 새누리당 의원 3억,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1억, 허 전 실장 7억, 유정복 인천시장 3억(새누리당), 홍준표 경남도지사 1억(새누리당), 김 전 실장 10만달러(2006년 9월26일). 이 외에 이름 없이 '부산시장 2억'이라는 내용도 들어있다. 금액은 없지만 이병기 현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완구 국무총리도 이름이 적혀있다.
 
이들의 대략적인 공통점은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들이라는 점이다. 허태열, 김기춘, 이병기 등 전현직 비서실장 3명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물론 이들 셋은 모두 성 전 회장과의 관계 내지는 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철저히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실장은 이날 공식 입장을 밝히고 성 전 회장의 사망 소식에 명복을 빌면서도 "금품수수 주장은 일말의 근거도 없는 황당무계한 허위"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성완종씨의 일방적이고 악의적인 주장"이라고도 했다. 허 전 시장도 보도자료를 내고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결백할 정도로 엄격해 그런 금품거래는 상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완구 국무총리도 성 전 회장은 19대 국회에서 1년 동안 국회의원을 한 것 외에는 별다른 인연이 없다"고 선을 확실히 그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외 자원개발 비리 및 횡령 의혹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News1
 
이 실장의 해명은 조금 달랐다. 그는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검찰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는 요청을 거절당해 섭섭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또 성 전 회장과 최근 통화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떳떳하면 조사 받으라'고 혼을 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의 말을 미뤄보면 성 전 회장은 이번 수사를 받으면서 최근까지 청와대를 비롯한 친박계 인사들에게 도움을 청한 것으로 보인다.
 
성 전 회장은 수사 초기부터 관련 혐의를 부인하는 만큼 'MB맨'으로 지목된 것에 대해 극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는 회장직을 맡고 있던 지난 3월20일 경남기업 홍보팀을 통해 밝힌 공식 입장에서 "일부 언론에서 성완종 회장을 ‘MB맨’으로 언급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 "경제적으로는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회사의 의견과 관계없이 워크아웃의 발표로 인해 회사자산을 매각하여 수조원의 채무를 상환했는데, 이로 인해 회사는 결정적인 위기를 맞았다"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사이에 선을 그었다. 아울러 "2007년 이명박 정부 인수위 자문위원으로 추천받았으나 중도 사퇴하여 인수위에서 활동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숨지기 전날인 지난 8일 성 전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밝힌 입장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적극 지지했으며, 경선에서 패한 뒤에도 박 대통령의 지시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권을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허태열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소개로 박 대통령을 만났다고 밝혔다.
 
일련의 해명을 종합해보면 성 전 회장은 'MB와의 줄긋기'에서 '친박계' 인사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해갔다. 당사자들이 부인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이 경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 전 실장을 통해 10만 달러를, 허 전 실장을 통해 7억원을 건네면서 박 대통령을 지원 한 것에 성 전 회장은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사망 전 나눈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도 그는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2007년 박근혜 대선캠프때 많이 도왔다. 현금으로 7억원을 주고, 그렇게 경선을 치렀다. 그렇게 쭉 한 일이 있다"고 밝혔다. 공소시효까지 언급한 것을 보면 성 전 회장의 주장에 신빙성이 더 실리고 있다.
 
그는 김 전 실장에 대해서도 "그 양반(김 전 실장)이 세상에서 제일 개끗한 사람으로 되어 있는데 2006년 9월 VIP(박 대통령) 모시고 독일, 벨기에 갈 때. 그 양반이 야인으로 놀고 있을 때 10만 불을 지원했다"며 "결과적으로 서로 신뢰관계에서 오는 일이잖느냐, 서로서로 돕자고 하는 거잖느냐. 십시일반으로"라고 말해 비교적 구체적인 팩트를 제시했다.
 
그러나 최근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부정부패 비리척결'에서 경남기업이 1순위로 수사 대상에 오르고 성 전 회장 역시 '친박계'가 아닌 'MB맨'으로 몰리면서 깊은 위기감과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재계와 정계,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사정 작업을 자원외교 비리에 집중되면서 박근혜 정부의 'MB맨' 쳐내기로 보고 있다. 수사 초기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 등 친이계, 이른바 'MB맨'들은 공개적으로 불편한 속내를 비치며 단체행동까지 검토한 것도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결국 'MB맨' 보다는 '친박계' 인사로 인정받고 싶었던 성 전 회장은 자신이 건립에 공을 들였던 '박근혜 정부'에서 나랏돈 수백억원을 횡령한 파렴치한으로 낙인이 찍히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러나 그의 상의 주머니에서 나온 어른 손바닥 반 만한 메모장은 예리한 부메랑이 되어서 친박계 인사들은 물론 청와대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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