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공장 완공을 내년 4월에서 1월로 당겼다."
"파라자일렌(PX) 공장을 지으면서 SK인천석유화학의 사택에 거주하는 직원들이 다 빠져 나갔다."
"일부 지역 통장은 주민거주 확인서를 공장 증설 동의서로 바꿔치기한 뒤 SK쪽에 전달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지금 엄마들이 그 통장을 찾아내느라 혈안이다."
10일 오후 인천 서구 원창동에 위치한 SK인천석유화학 PX공장 증설 현장. 공장 맞은 편 왕복 8차선 도로에서 막 점심 식사를 끝낸 건설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기기 위해 신호등 앞에 대기해 있었다.
맞은 편에는 근로자 작업 중 휴대폰 사용금지, 국가보안시설 임의 촬영금지, 장비 운전 중 휴대폰 사용금지를 알리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현수막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길 건너 아파트에서 현수막이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이날 원창동과 석남동 일대에서 만난 주민들 사이에선 SK인천석유화학 공장 증설에 대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SK인천석유화학이 주민들의 눈을 피해 밤에도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PX 공장 증설 이후 인근 부동산 거래가 뚝 끊어졌다 등 갖은 소문들이 무성했다.
저마다 알고 있는 정보의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SK인천석유화학의 PX 공장 증설에 대한 평가는 한결 같았다. PX의 유독성에 대한 우려와 함께 공장 증설에 앞서 지역사회에 충분한 설명이 없었던 회사에 대한 강한 불신이 깊게 뿌리를 내린 듯 했다.
지역 주민들이 제기하는 가장 큰 불만은 SK인천석유화학의 사전 설명 미비다. SK인천석유화학이 PX 공장 증설의 첫삽을 뜬 것은 지난해 연말. 주민들의 반대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반년 뒤인 올 6월 무렵부터다.
잠잠하던 지역 사회에서 공장 증설 문제가 순식간에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것은 SK인천석유화학 공장에서 굴뚝이 하나둘씩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서다. 주민들 스스로 굴뚝의 정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PX가 유독 화학물질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 환경오염을 우려한 주민들이 반대시위를 벌인 끝에 PX 공장 건설이 철회됐다는 소식까지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주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됐다.
공장 인근 신현초등학교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현모씨는(46세·여) "SK인천석유화학에서 공장 증설 전 미리 주민들을 대상으로 충분한 설명을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한마디 말도 없이 공사를 진행해 불만이 크다"면서 "화가 나는 건, 굴뚝이 올라가면서 뒤늦게야 어떤 공장을 짓고 있는지 알게 된 것"이라고 불만을 토해냈다.
공장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오모씨(52세·여)는 "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제서야 심각성을 인식하고 SK인천석유화학이 진화에 나서고 있다"면서 "여론이 악화된 마당에 지금 와서 설명회를 연다고 한들 주민들이 귀를 기울일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눈에 보이는 시설물을 이렇게 많이 설치할 계획이었다면, 적어도 착공 전 주민들을 모아놓고 설명회를 진행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인천시 서구 원창동 SK인천석유화학 PX 증설 공사 현장(사진=양지윤 기자)
SK인천석유화학 측의 사전 설명 미흡은 급기야 인허가 과정의 적절성에 대한 의혹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지역 사회 일각에서는 지난 1990년 받은 환경영향평가를 근거로 SK인천석유화학이 공장 증설에 나선 것을 지적하며, 인천 서구청이 20년 전 낡은 기준으로 공장 증설 허가를 내준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서구청이 PX 공장에 대해 시설 증가 면적이 30% 이내에 해당되지 않아 환경영향평가 및 재협의 과정없이 '변경협의' 라는 절차로 승인한 것이 적법하다고 결론 내렸지만, 기존 공장 면적에 BTX생산설비 뿐만 아니라 일반 정유 시설 등 기타 시설까지 포함, 이번 증설 규모를 기존 시설의 30%미만으로 축소·은폐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천 서구청과 SK인천석유화학 측은 "인허가 과정은 적법했다"면서 주민들의 의혹 제기를 일축했다. 1990년에 공장 전체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받고, 그 뒤 증설 등 사업계획이 바뀔 때마다 해당 사업에 한정해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변경협의가 꾸준이 이뤄져 왔다는 설명이다. 기존 시설 면적의 30% 이상 증설되거나 업종이 아예 바뀌는 경우 환경영향평가 재협의 대상이 된다.
논란의 중심이 된 PX 공장은 기존 면적의 12%만 증설되고 업종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재협의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공장 인근 주민들이 가장 큰 불만을 제기했던 사전 주민 설명회 미비의 경우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
인천 서구청 관계자는 SK인천석유화학이 면적을 늘리는 편법을 동원했다는 일각의 의혹제기에 대해 "사업장 전체 면적을 기준으로 하고, SK인천석유화학은 그간 공장 부지 면적에 변동이 없었다"면서 "PX 공장은 재협의와 주민 의견 수렴 등을 구청에서 법적으로 강제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SK인천석유화학은 법 테두리 내에서 증설이 추진되고 있어 문제될 게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회사 관계자는 "법적으로 문제되는 부분이 있었다면 아예 증설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PX 공장 부지는 산업단지는 아니지만, 사업변경이 있을 때마다 그에 버금가는 기준으로 환경청에서 환경영향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민 공청회 역시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개최하지 않은 것"이라면서 "다만 지역 사회와 대화는 지속적으로 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천 서구지역에서는 양측이 앞세우는 실증법보다 정서법이 더 크게 지배하고 있는 듯 보였다. 석남동에 위치한 신석초등학교의 경우 SK인천석유화학과의 거리가 불과 188m다. 인근에는 이 학교를 포함, 총 8개의 초·중고교가 위치해 있다.
공장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오모씨(52세·여)는 "신석초등학교는 SK인천석유화학에서 도로를 건너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다"면서 "우리 같은 어른들이야 그렇다 쳐도 한창 자라날 아이들이 유독 물질에 노출될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안전 논란은 이미 기정사실이 돼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50대 남성은 "PX 공장 굴뚝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주변 지역의 부동산 거래가 뜸해졌다는 소리가 들린다"면서 "다른 지역임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도 집 매매가 어려운 분위기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자녀 건강에 대한 우려와 집값 하락 등을 고민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법적 하자가 없다"는 SK인천석유화학의 원칙론이 들어설 자리는 없는 듯 보였다.
해당지역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실은 "주민들의 요구사항은 공사를 중단하고, 환경영향평가를 재실시 하자는 입장이 주를 이루고 있고, 일각에서는 이보다 더 강경한 사업인가 취소까지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인천 서구청과 SK인천석유화학은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지역주민과 SK인천석유화학이 접점을 좁힐 방안이 지금으로선 없는 상황"이라고 난감함을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SK인천석유화학이 사업 계획과 그 일정에만 집중하다 정작 주민들을 신경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법적 문제가 없다는 점만 믿고, 공사에 나선 것은 무리였다"고 말했다. 최근 밀양 송전탑 건설이나 화력발전소 건설 등을 두고 사회적 갈등이 빈번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사회와 충분한 사전 교감이 이뤄졌더라면 주민 반발이 최소화 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SK인천석유화학 측도 주민들의 반발이 점점 거세지자 지역주민과의 소통 기회를 넓히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 1일 SK인천석유화학 대표이사를 겸직해 온 박봉균 SK에너지 사장 후임으로 이재환 SK에너지 울산CLX부문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한 것도 바로 당면 현안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 사장은 매일 오전 7시~8시 사이 원창동 본사로 출근, 9시 무렵 퇴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인천석유화학 관계자는 "이 사장의 취임은 SK인천석유화학에만 집중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한 데 의미가 있다"면서 "지역주민과의 소통 기회 많아질 것 기대된다"고 말했다.
소통 부재에 대한 실망감으로 등을 돌린 지역 사회에 이재환 신임 사장이 어떤 돌파구를 마련할지 업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인천시 서구 원창동 SK인천석유화학 본사(사진=양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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