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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마음의 투쟁' 거쳐 꽃피는 화해
재일교포 정의신 작·연출 연극 <나에게 불의 전차를>
2013-02-02 11:03:53 2013-02-02 11:05:51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은 연극계에서 독특한 지형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그는 '경계인'의 관점에서 연극을 만든다. 연극에는 자전적인 내용이 주로 담기는데 양국의 경계인으로서 겪은 차별이나 한일 양국의 화해 분위기 조성 등 경험 혹은 희망사항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연극 <나에게 불의 전차를>도 기존 정의신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작품은 1924년 경성 인근의 지방 도시에 거주하는 일본인과 조선인 간 사랑과 우정을 그린다. 일제 치하인 조선땅에서 조선을 사랑하는 일본인에 주목한 점이 이채롭다. 정의신의 작품답게 한줌(?)도 되지 않을 주변인들에 초점을 맞추고,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고통의 흔적을 작품 전반에서 드러낸다.
 
눈여겨 볼 대목은 정의신 작품에 으레 등장하는 '사랑'과 '용서'라는 메시지 외에 시대적 상황에 맞서는 '마음의 투쟁'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 제목과 극중 나오키의 대사에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예루살렘'의 구절을 인용한다. '불의 전차를 나에게 다오. 마음의 투쟁으로부터 나는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경계인에게 삶이란, 쉽사리 끝나지 않는 '마음의 투쟁'을 기꺼이 계속해서 겪어 나가는 것일는지 모르겠다.
 
 
 
 
 
 
 
 
 
 
 
 
 
 
 
 
 
 
 
 
 
 
작품에는 다양한 종류의 '버림 받은 사람'이 등장한다. 조선을 사랑해 일본 사회에서 사회주의자로 낙인 찍힌 나오키(쿠사나기 츠요시 분), 신분상 천민인 남사당패 꼭두쇠 이순우(차승원 분), 살기 위해 조선인임을 부정하고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기요히코(카가와 데루유키 분) 등이 대표적이다.
 
이중 나오키와 기요히코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상처 입은 사람들이다. 나오키의 경우 자기를 고발한 동료가 자신으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하자 끝내 자살하는 비극을 겪었고, 기요히코는 사랑하던 조선 여인 춘생이 총에 맞았을 때 '나는 일본인'이라고 말해 홀로 살아남은 아픈 기억이 있다.
 
이에 비해 꼭두쇠 이순우는 차별적인 상징성을 띈 존재다. 비록 사회로부터 천시받는 존재이나 스스로 저지른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스스로를 구원해내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순우는 남사당패의 꼭두쇠로서 법도에 의해 아끼는 후배를 내치는데, 방출된 후배는 이후 지붕에서 줄타기를 연습하다 떨어져 죽는 사고를 당한다. 이순우는 죽은 후배를 대신해 직접 위험천만한 줄타기에 나서면서 용서를 빌고, 자신과도 화해한다.
 
사랑과 우정, 마음의 투쟁을 거친 화해 등의 주제의식은 분명하지만, 작품이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점은 아쉽다. 이순우와 나오키의 국경을 뛰어넘는 우정 외에 주변인물 사이 로맨스 관계가 넘쳐나는 데다 중간중간 유머 코드가 다소 과하게 삽입돼 있기 때문이다. 남사당패의 경우, 농악, 버나돌리기, 살판, 줄타기, 탈춤, 인형극 등 다양한 재주를 선보이지만 사실 줄타기 외에는 극중 상징적인 의미가 없어 단순히 시각적인 스펙터클을 선사하는 데 그쳤다.
 
극이 겉돌지 않게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결국 배우가 담당했다. 차승원과 쿠사나기 츠요시가 무난한 연기를 펼쳤다면, 카가와 데루유키와 김응수, 히로스에 료코 등은 주어진 배역에 깊이 안정된 모습이었다. 특히 카가와 데루유키는 한국말과 일본말을 섞어서 연기하고, 시종일관 다리를 저는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하면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작·연출 정의신, 미술 츠치야 시게아키, 조명 마스다 다카요시, 음악 구메 다이사쿠, 출연 쿠사나기 츠요시, 차승원, 히로스에 료코, 카가와 데루유키, 다카다 쇼, 성하, 마부치 에리카, 아오키 무네타카, 안쥬 미라, 김응수, 이현응, 장덕주, 김형규, 김문식, 정태화, 호시노 소노미, 지순, 박승철, 시미즈 히사오, 미즈타니 사토루, 니시무라 소우, 가와모리타 마사토, 네모토 다이스케, 닛타 에미, 오오토나리 사야카, 시미즈 유카, 사물놀이패 리창섭, 강명수, 정신이, 리재호, 민준홍, 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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