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소비자 골탕 먹인 신용카드 무이자할부 중단 해프닝
2013-01-11 10:10:32 2013-01-11 10:19:21
새해 벽두부터 ‘신용카드’라는 문명사회의 획기적인 이기를 놓고 한바탕 시끄러웠다. ‘무이자 할부 중단’ 선언 때문이다.
 
카드사들이 상시 행사용 무이자 할부를 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별다른 사전 고지도 받지 못한 채 백화점, 대형할인점, 항공사 등 대형 가맹점에서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된 소비자들의 불만이 빗발쳤다.
 
카드사와 대형 가맹점은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이고, 금융당국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는 상태로 열흘을 끌었다. 그러다 결국 거센 여론의 비난을 이기지 못한 카드사들이 오늘 슬그머니 재개하기로 했다. 신한카드가 11일부터 다음달 17일까지 ‘특별’ 무이자 할부 이벤트를 하겠다고 발표하자 롯데카드, 현대카드 등도 뒤따르는 모양새다. 무이자 할부 중단을 한 달 정도 유예한 셈으로, 이 특별 이벤트가 끝나면 다시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일단 열흘천하 해프닝이 되었다.
 
무이자 할부 중단이 큰 파장을 일으켰던 까닭은 그만큼 무이자 혜택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지급결제동향'과 금융감독원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2011년 전체 신용카드 사용액 540조7940억원 중 신용판매액이 73%(393조8708억원), 할부는 13%(68조175억원)이다. 할부 사용액 중 70~80%가 무이자 할부로 추산됐다.
 
신용카드 할부 결재시 무이자 혜택이 주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보니 카드 이용자들이 이를 당연하게 여겨온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할부는 주어야 할 돈을 여러 번으로 나누어 천천히 준다는 것이고, 외상거래, 즉 빚을 지는 것이다. 빚을 지면 이자가 붙는 게 보통인데 지금까지 카드 이용자들은 상당히 많은 경우에 이 비용을 치르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그 이자는 누가 냈을까?
 
카드사들은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백화점 등 대형 가맹점을 상대로 무이자 할부 이벤트를 진행해왔다. 추가로 드는 돈 없이 조금씩 나눠서 갚을 수 있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카드 결제가 한결 마음 편해졌고, 대형 가맹점은 매출 상승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얻었다. 이처럼 카드사들이 무이자 할부를 통한 과당.출혈경쟁으로 지난해 부담한 비용은 1조2000억원에 달한다. 전체 마케팅 비용이 5조1000억원의 24%를 차지한다.
 
문제는 카드사들이 이런 막대한 비용을 메우기 위해 일반 중소형 가맹점에 높은 수수료를 물리거나, 카드론과 같은 고금리 대출사업을 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카드사의 할부이자율은 2개월 평균 2.0%, 3개월 평균 4.3%다. 1만원을 2개월로 할부결제 했다면 1만500원을, 3개월로는 1만4700원을 내야 하지만 무이자할부라면 카드이용자는 1만원만 부담하고 나머지 금액은 카드사에서 중소가맹점으로부터 더 받아낸 수수료나 서민 채무자로부터 더 받아낸 이자로 충당하는 식이다.
 
다른 사람이 내야 할 이자를 대신 지불해준 카드론 이용자나 중소 가맹점 입장에서는 억울해할 만하다. 이런 실상을 잘 모르고 무이자 할부를 이용해온 알뜰 소비자들은 졸지에 내 득 보자고 남 피해 주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간 카드사와 함께 이익을 나눠가졌던 기업들이 서로 소비자의 비난 피하기에 급급한 것도 불만스럽지만, 관조적인 태도로 일관한 금융당국도 좋은 소리를 듣기는 힘들다.
 
"신용카드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왜곡된 시장이 정상화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며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누렸던 혜택이 오히려 시장을 왜곡하는 잘못된 행태였다고 친절하게 한 수 가르쳐주는데, 달리 반박은 못 하겠으되 얄밉고 고약하단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잘못된 인식과 왜곡의 만연을 알면서도 왜 지금까지 방조하고 있었을까. 금융당국도 제 할일 제대로 다 했다고 평가 받기는 어려울 것 이다.
 
속담에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다. 뒷일은 어떻게 되든지 생각하지 않고 우선 당장 좋으면 그만인 것처럼 무턱대고 행동하는 세태를 꼬집은 말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신용카드는 그리 대중화된 지불수단이 아니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앞장서서 신용카드 보급에 나섰다. 카드사들은 발급 판촉경쟁에 열을 올렸고, 정부는 카드영수증 복권, 소득공제 혜택, 가맹점 가입의무화, 카드사용내역 법적 증빙 인정 등 신용카드 사용 활성화 정책을 쏟아내며 지원했다. 이로써 신용카드는 없어서는 안 될 편리하고 투명한 지불수단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신용카드에 기대어 형편에 맞지 않는 과소비를 하거나 무분별한 현금서비스 대출, 돌려 막기 등의 폐해가 퍼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선진국 소비자들은 현금을 뭉텅이로 들고 다니지 않는다"면서 신용카드 사용을 권장하던 금융당국이 이제는 "직불형 카드 이용 비중(2009년)이 선진국 독일은 93%, 영국 74%인데 반해 한국은 14%(2012년 1분기)" 밖에 되지 않는다며 직불형 카드 사용을 미는 추세다.
 
혹시 지금까지 신용카드를 통한 대출이나 지출에 무척 너그러운 판단기준을 갖고 있던 독자들이라면 이번 무이자할부 중단 해프닝에 즈음해 ‘빚’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자신의 소비패턴을 돌이켜보는 것도 좋겠다. 다만, 불황기에 알뜰이 몸에 밴 대다수 소비자들로서는 어쨌건 재개된 무이자 할부 서비스에 안도하면서도 연초부터 거대 기업들에게 골탕 먹은 씁쓸한 여운 또한 꽤 오래 갈 것 같다.
 
김종화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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