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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관, 찻잔 속의 태풍 된 이유
2012-08-26 10:54:28 2012-08-26 10:55:51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김두관 후보가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지역순회 경선 첫발부터 삐걱거렸다.
 
김 후보는 25일 제주 경선에서 14.7%의 득표율로 대세론의 문재인 후보(59.8%)는 물론 손학규 후보(20.7%)에게조차 크게 밀렸다. 일찌감치 김재윤 의원(서귀포)이 캠프에 합류하며 제주의 조직력을 다져온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처참한 결과다.
 
반면 "예상된 패배"라는 목소리도 있다. 캠프 내에서조차 몇몇 핵심 참모들을 중심으로 자조 섞인 한숨이 배어나왔다. 한 참모는 "최고의 상품인데 포장을 잘못했다"면서 "전략의 실패"라고 자인했다.
 
실제 김 후보는 대선 출마선언 이전 가장 주목받던 블루칩이었다. PK의 견고한 지역기반은 그저 얻은 게 아니었다. 두드리고, 넘어지고, 일어서서 일궈낸 '기적'이었다. 가시밭길을 외면치 않고 묵묵히 걸어오면서 그에겐 어느새 '리틀 노무현'이란 애칭이 따라붙었다.
 
또 감동을 넘어 국민과 동화될 인생 역정의 스토리를 가진 유일한 인물이었다. 전문대 출신에, 마을이장이었던 그는 군수를 시작으로 행정자치부 장관, 대통령 정무특보, 집권당 최고위원에 이어 야권 최초의 경남도백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대선후보가 되었다. 김두관의 힘이었다.
 
유력 대선주자이면서도 그의 가족은 그저 평범한 이웃이었다. 큰 누나는 생선장수, 큰 형은 광부 출신, 둘째 형은 회사경비원, 셋째 형은 건설노동자 출신, 장모는 여전히 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권력과는 거리가 먼 한낱(?) 서민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의 친인척 및 측근 비리를 지켜본 국민들로서는 김 후보의 가족상에 희망을 가질만하다.
 
여기에다 풍부한 정치경험과 강한 권력의지는 경쟁자인 문재인 후보와 비교되며 그에 대한 신뢰를 높이게 했다. 친노이면서도 친노가 아니었기에 호남으로부터의 정서적 거부감 또한 덜했다. 이른바 이너서클이 없다는 점도 그에 대한 구심력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무엇보다 이 같은 그의 강점들은 본선에서 맞붙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의 일전에서 하나하나 대립각을 형성하기에 최적의 조합으로 평가받았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에서는 김 후보를 가장 벅찬 상대로 꼽으며 경계를 풀지 못했다. "PK를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왕족 대 서민으로 구도까지 짜이면 필패"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확장성에 있어 누구보다 주목받던 그가 채 빛을 보지 못하고 주저앉고 있다. 일차적 패인은 다듬어지지 않은 전략과 전술에 있었다. 이(해찬)-박(지원) 담합에 대한 비판은 적절했으나 왜 김한길인지에 대한 답은 내놓지 못했다. 해프닝으로 끝난 정동영에 대한 구애도 마찬가지였다.
 
문 후보에 대한 공세는 어쩔 수 없다 해도 방법과 수위에 있어 김두관답지 못했다는 평가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책임까지 요구한 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양측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었다. 사람들이 등을 돌리게 된 원인이었다"고 평가했다.
 
지역 관계자도 같은 말을 했다. 그는 "대통령 서거 이후 첫 선거였던 10.28 양산 재선거 과정에서 송기인 신부 등 수많은 지역 원로들이 문 후보 집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했다. 출마를 결단하라는 거였다. 문 후보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면서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의 송인배 전 비서관을 후보로 내리찍었다. 선대위원장에 이름을 올리면서도 유세 지원 한번 없었다. 그때 양산 바닥을 누비던 건 김두관이었다."
 
이어지는 그의 말. "양산 재선거는 일개 선거가 아니었다. 대통령의 죽음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전환점이었다. 결국 문 후보의 포기로 졌다. 이어지는 6.2 부산시장 선거, 그리고 4.27 김해을 보선. 결국엔 성지라 부르는 봉하까지 내줬다. 이 모든 선거에서 문 후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걸 물었어야 했다. 민심의 요구를 거부하고 두려움에 몸을 엎드리는 것이 '노무현 정신'인지 따져 물었어야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 대통령의 죽음에 책임을 지라고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당내에서 친노 다음으로 세력을 확보한 민평연(민주평화국민연대)의 평가도 같았다. GT(故 김근태)계인 민평연의 한 초선의원은 "처음엔 분위기가 김 후보 쪽이었다. 인재근 의원도 김 후보를 (지지후보로)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예비경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 마디로 대선후보 감이 아니었다."
 
결국 민평연은 지지후보를 정하지 않은 채 소속의원 독자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표결 결과는 1위 손학규, 2위 문재인 후보였다. 김 후보는 3위로 밀려났다. 거침없던 세 확장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21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봉하마을 방문 과정에서도 대선후보다운 그릇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김 후보는 이날 트위터에 "잘하는 일"이라며 "진심어린 반성과 화해의 몸짓이길 기대한다"고 유연한 평가를 보였지만, 캠프 전현희 대변인은 "진정성 없는 정치쇼"라며 네 후보 진영 중 가장 혹평을 내놨다.
 
반면 문 후보 진영은 "의미 있는 일로 평가"함과 동시에 "환영" 입장을 내놨다. "정중하게 맞으려 한다"는 노무현재단 입장과 어우러지면서 "역시 어른답다"는 당 안팎의 평가가 이어졌다. 비교가 대조를 낳으면서 김두관 진영이 자멸하는 순간이었다.
 
정책에 있어서도 김 후보는 '통합' 대신 '선명성'을 택하면서 확장성을 스스로 꺾어버렸다. 특히 '반값 통신비'는 캠프 내에서조차 이견이 엇갈리면서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회심의 카드라 할 수 있는 모병제에 대해 "너무 앞서갔다"며 "섣부르다"고 지적했다. 기존의 포용적 이미지는 제 몸에 맞지 않는 투사적 이미지로 변질돼 버렸다.
 
캠프 관계자는 "경남도정을 이끌던 통합과 뚝심, 포용과 배려가 조급함에 쓸려 내려가 버렸다"고 말했다. 야권 제 정당은 물론 시민사회 진영까지 어우러져 출범한 민주도정협의회는 공동정부의 모델이었다. 또 도의회 100% 출석을 비롯해 국비 마련을 위해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닌 것 등은 보수진영에서조차 극찬의 대상이었다.
 
'어르신 틀니 보급사업' 예산확보 과정에서 노년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새누리당 일색의 의회를 설득하고 굴복시킨 것은 민심의 힘과 김두관의 뚝심이 조화된 일대 사건이기도 했다.
 
문재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인 이석현 의원은 제주 경선 직후 트위터를 통해 "문재인 압승의 의미" 중 하나로 "경쟁과 화합은 둘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얼핏 봐도 비(非)문재인의 선두 격인 김 후보에 대한 지적으로 읽힌다. 
 
김 후보를 오랫동안 지켜본 민주당의 전직 의원은 "결국 김두관이 김두관다움을 잃어버리면서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다. 캠프 참모진들의 내부갈등과 아마추어리즘도 한몫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후보가 제 모습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어서서 가야 하는데 이미 너무 많은 길을 와 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정책은 이성으로, 정치는 감성으로 해야 하는데 마치 거꾸로 해 버린 듯한 느낌이란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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