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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물가 아이디어' 내라는 정부, 무능하고 비겁하다
2011-08-04 13:46:34 2011-08-04 16:28:41
[뉴스토마토 손정협기자] 치솟는 물가에 곤혹스러워 하던 정부가 급기야 국민들에게 손을 벌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기획재정부 등 물가관계 부처가 추진 중인 이른바 '물가잡기 아이디어 공모'가 그것이다.
 
정부는 웹사이트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일반 시민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수집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달 26일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박재완 재정부 장관이 “범국민적 공모를 통해 물가를 낮추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한 데 따른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시행해 왔던 물가정책들이 벽에 부딪혔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정부는 치솟는 물가를 잡겠다고 연초부터 석유TF나 통신비TF를 급조해 기업들을 압박했다. 빵 만드는 기업에 빵값을 올리지 말라는 공문을 보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하지만 물가는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 들어서도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물가정책에 실패한 것으로, 정부의 무능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경제 최대 걸림돌인 물가문제를 국민들에게 물어서 풀어보겠다는 발상은, 정부가 여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가는 국민 아이디어로 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시장 자본주의 체제 이후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고민해온 인플레이션은 정부와 물가당국(중앙은행)이 선제적이고도 적절한 정책적 조합을 통해 풀어가야 할 문제다. '건물 디자인 공모하듯' 대중에게 아이디어를 모아 해결할 것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라면 물가만큼이나 심각한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나 환율 정책도 국민들에게 아이디어를 모집해서 풀어가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 
 
아이디어 공모의 실효성도 문제다. 일반 국민이 내는 아이디어를 정부 관료들이 정책에 얼마나 반영할지 미지수다. 정부가 물가를 고민한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고 끝날 '일회성 쇼'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박재완 재정 장관의 이번 아이디어 공모는 물가정책 실패의 책임을 정부가 회피하려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마치 '정부는 최선을 다했으니 어쩔 수 없고 국민들이 한 번 해보라'는 식이다.  국민들이 낸 아이디어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을 때, 정책부재의 책임을 국민들에게 미루는 것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최근 국내 물가급등의 원인은 이미 다 나와 있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적한 바 있고 정부도 일부 시인한 것처럼, 기상이변이나 국제유가 급등과 같은 외부요인도 있지만 신용거품으로 인한 유동성 증가와 경기과열, 원화강세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 등이 그것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이에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을 뿐이다.   
 
원인이 다 나왔으니 그 원인을 적절하게 줄여가거나 제거하면 되는데, 국민들에게서 무슨 새로운 아이디어를 달라는 것일까?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정부와 국민의 소통부재가 그것이다.
 
무리한 고환율 정책과 저금리 집착에 대한 지적이 무수히 제기됐지만 정부는 번번히 귀를 막아왔다. 식료품값 급등으로 국민들의 분노가 높아지고 있는 와중에서도, 정부는 "물가 상승은 외부적인 요인도 크다"며 외국에서도 식품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는 느긋한 보도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정부가 귀는 틀어막은 채 입만 열어놓는 '일방 소통'을 계속하는 한, 어떤 절절한 호소도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뉴스토마토 손정협 기자 sjh9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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