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우리나라는 일본에 위안부나 강제징용에 대한 사과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베트남에서 저지른 잘못을 숨긴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한국은 일본과 달라야 합니다.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은 인정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베트남에 생존한 피해자들만이 아닙니다. 지난달 20일 <뉴스토마토>와 만난 베트남 참전군인 류진성씨 역시 정부의 전향적인 사실 인정과 사과를 촉구했습니다.
지난달 20일 서울 양천구에서 만난 참전군인 류진성씨. 그는 한국 정부가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을 학살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뉴스토마토)
류씨는 1967년 군에 입대했고, 그해 10월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소속으로 베트남전에 파병됐습니다. 이후 15개월간 '첨병'으로 작전에 투입됐습니다. 첨병은 중대 단위 작전에서 맨 앞에 서서 지뢰와 매복을 감지하며 부대를 이끄는 가장 위험한 보직입니다.
그는 전쟁의 참상이 떠오르는 듯 인터뷰 내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류씨는 당시에 관해 "다리는 진흙탕에 풍덩풍덩 빠지지, 30㎏짜리 짐은 무겁지, 총알은 날아오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면서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었으면 일부러 손을 들고 대열에서 나가는 이들도 있었다. 총을 맞으면 병원에 갈 수 있으니까 '나 좀 맞춰달라'라면서"라고 회상했습니다.
류씨 역시 세 차례나 큰 부상을 입었고, 마지막 부상으로 결국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지금도 그의 몸엔 수류탄 파편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함께 베트남전에 파병됐던 동생은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다 2년 전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랬던 류씨가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베트남전의 학살을 세상에 알리며 '증언'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뜻밖의 우연한 계기 때문이었습니다. 2017년 청와대 분수대 앞, 상이군경회의 비리를 비판하며 1인 시위를 벌이던 그는 베트남 국기를 들고 시위하던 이들과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퐁니 마을 학살 사건'의 목격 증언자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퐁니 마을 학살 사건은 1968년 2월12일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의 퐁니 마을에서 한국 해병대 청룡부대 소속 군인들이 비무장 민간인 70여명을 학살한 일입니다.
고민 끝에 류씨는 2018년 시민평화법정(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에 관해 시민단체들이 개최한 모의 법정)에서 익명으로 퐁니 마을에서 벌어진 학살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그 이후 증언을 멈추지 않습니다. 2021년 11월 퐁니 마을 학살 사건의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티탄씨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도 류씨는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그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해 법정에서 증언한 '유일한 한국군 참전용사'입니다. 그로부터 1년3개월 뒤인 2023년 2월, 서울중앙지법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를 대한민국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류진성씨가 1968년 베트남에서 찍은 사진. (사진=류진성)
류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베트남전 당시의 한국군에 의한 학살을 일종의 '잔혹한 전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베트콩들에게 한국군의 무서움을 보여주고자 일부러 잔혹하게 행동하게 됐다는 말입니다.
그는 "청룡부대는 적은 숫자로 작전에 나간다. 그러다 보니 한국 해병대는 독종이라는 걸 보여줘야 했다. 그래야 베트콩들이 함부로 덤비지 않는다고 여겼다"며 "이동하는 중에 어떤 마을에서 총알이 날아온다? 그러면 그 마을에 가서 다 없애버리는 거다. 돼지고, 닭이고 살아있는 건 다 없애버렸다. 그런 맥락에서 민간인들도 다 죽여버렸던 것"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류씨는 "전쟁 중에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라면서도 "그렇기에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절대 전쟁을 부추겨서도 안 된다"고 몇 번이나 힘주어 강조했습니다.
물론 역사의 어둠을 들추는 증언을 이어가는 과정은 외롭고 험난했습니다. 다른 참전군인 동료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2021년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직전엔 과거 소속 부대 소대장이 전화를 걸어 30분간 만류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류씨는 끝내 법정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증언을 이어가면서 그는 참전군인회의 '적'이 됐습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상이군인회 회장도 낙선하고 맙니다.
하지만 류씨는 담담하면서도 단호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며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그 용기, 그것이야말로 진짜 해병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항소심에서도 인정된 국가 배상책임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 걸 두고는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베트남전 학살 피해자들이 먼저 한국 정부에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다가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입니다. 류씨는 "한국 정부도 베트남전에서의 민간인 피해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라며 "한국은 국가의 격에 맞게, 일본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며, 먼저 민간인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베트남전에 관한 진실을 공식 인정할 때까지 결코 눈을 감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류씨는 "이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죽어버리면 이쪽저쪽 양쪽에서 다 욕을 먹는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날 때까지는 죽어서도 안 된다"며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나면 정부도 끝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