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상호관세에 대한 미국 대법원의 위법 판결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체 수단인 ‘글로벌 관세’를 부과하고 이를 곧바로 인상하는 등 관세 정책 변화가 이어지면서 재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무효에도 자신의 관세 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데다 추가 관세 부과 가능성도 열려있어 미국발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이 재점화되고 있는 까닭입니다. 재계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변동성과 관련 영향 등을 예의주시하면서 대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각)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즉시 효력을 갖는 조치로 전 세계 관세 10%를 허용되고 법적으로 검증된 15% 수준으로 올리겠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앞으로 몇 달 안에 새롭고 법적으로 허용되는 관세를 결정하고 발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날 미 연방대법원이 세계 각국에 부과한 상호관세가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리자 트럼프 대통령이 대체 조치로 10%의 ‘글로벌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히고 행정명령에 서명한 지 하루 만에 내려진 조치입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상호관세가 사라졌지만 이를 대체할 글로벌 관세 부과와 새 관세 정책이 예고된 만큼 관세 리스크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만 더욱 커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관세 정책의 동력이 약해졌다는 것은 반길 만 하지만, 글로벌 관세 부과와 인상 등 불확실성과 변동성만 커졌다”면서 “향후 품목별 관세와 다양한 무역법에 근거한 관세 정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으로서는 까다로운 상황이 됐다”고 짚었습니다.
재계에서는 이번 판결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관련 변화와 영향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습니다. 상호관세를 대체할 10%의 글로벌 관세 부과 방침과 하루 만에 이를 15%로 인상하는 등 관세 정책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는 만큼 정확한 내용 파악이 급선무인 까닭입니다. 경제단체나 주요 기업들도 특별한 언급 없이 사태 파악에 집중하는 분위기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상호관세 무효화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표가 곧바로 이어지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매우 불확실한 상황이 됐다”며 “관세와 관련 정책 변화가 이제부터 시작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상당히 조심스러운 상황으로 향후 정책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서울 도심에 위치한 기업들의 모습 (사진=뉴시스)
글로벌 관세, 한국 기업 영향은?
이번에 위법 판결을 받은 것은 상호관세로 미국 무역법 301조 등에 기반한 품목별 관세는 동일하게 유지됩니다. 이를 대체해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한 15%의 글로벌 관세 역시 반도체, 자동차 등 한국 주력 수출 품목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의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많습니다. 다만, 미국 관세 정책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면서 향후 예고된 품목별 관세에까지 여파가 미치지는 않을까 우려도 커지면서 기업의 부담으로 작용하는 모습입니다.
반도체 업계는 한미 관세 협상에서 대만 등 경쟁국보다 불리한 조건을 적용 받지 않도록 하는 최혜국 대우를 인정 받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품목 관세를 아직 발표하지 않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관세 정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 품목별 관세 역시 어떤 시점에 어느 정도 수위로 꺼내 들지 모르는 상황으로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업계는 15%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받고 있어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50%의 품목별 관세가 부과된 철강업계 역시 이번 판결과 글로벌 관세 영향권에 벗어나 있습니다. 다만, 산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이 품목별 관세 부과의 근거가 되는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등을 활용해 기존 상호관세 등을 대체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까닭에 향후 여파를 면밀히 살펴보는 모습입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상호관세는 무효가 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품목관세를 더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등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상황 변화를 지켜보며 최적의 대응 방향을 준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미 투자 등 고민 깊어지는 재계
이처럼 미국발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이를 개별기업 차원에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은 재계의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정부의 외교·통상 대응에 물밑에서 힘을 보태면서 향후 여파에 따른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등 소극적인 대처밖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2500억달러(약 50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에 발맞춰 내놓은 재계의 1500억달러(약 209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도 그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미 관세 협상의 중요한 전제였던 상호관세는 무효가 됐지만, 정부가 대미 투자 관련 일정을 차질 없이 이행해 간다는 방침인 까닭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 2026’ 행사에서 관세와 대미 투자 등에 관한 취재진의 질문에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고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코리아가 원팀이 돼서 이런 문제들을 잘 소화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22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야적장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사진=뉴시스)
정부도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하고 관세·통상 현안에 대한 총력 대응 방침을 밝혔습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전날 오전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이번 판결로 대미 수출 불확실성이 다소 높아졌으나 한미 관세 합의를 통해 확보된 대미 수출 여건은 큰 틀에서 유지될 것”이라며 “정부는 이번 판결 내용과 미 행정부의 후속 조치, 그리고 주요국 동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국익에 가장 부합한 방향으로 총력 대응하고, 우리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 교수는 “기업과 정부가 원팀이 돼 미국과의 소통을 더욱 강화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또한 한국 혼자 해 나가기는 어려우니 글로벌 각국과 연대를 통해 경제 협력을 강화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업들도 상호관세가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온 만큼 그동안 걷어간 관세에 대해 환급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정부와 기업이 명확하게 역할을 나눠야 한다”며 “또한 기업들의 대미 투자를 이행하기 위한 여건 마련도 요청하는 등 조금 더 공정한 환경으로 협상을 유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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