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대법원은 최근 무면허 운전 사고 피해자에게 보험사가 지급한 보험금을 피보험자에게 사고부담금으로 1억원까지 구상하도록 한 약관은 유효하다고 판단했습니다.
A씨는 2021년 2월 보험사와 자동차 종합보험계약을 체결했습니다. A씨는 2022년 1월 무면허로 차량을 운전하다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한 초등학교 앞 도로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이 A씨의 차량으로 다가가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는데, 잠에서 깨 당황해하던 A씨는 곧바로 차량 앞에 서있던 경찰관의 왼쪽 다리를 차량의 앞 범퍼로 들이받았습니다. 이 사고로 경찰관은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어 보험사는 보험금으로 2280여만원을 지급했고 약관을 근거로 지급한 보험금 전액의 구상을 청구했습니다.
그러자 A씨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며 보험사의 청구를 기각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A씨는 △무면허운전 중 사고에 대해 1억원을 배상하도록 한 보험계약의 약관이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법)에 의해 무효인 점 △피해자에게 지급한 1200만원의 형사합의금이 사고부담금에서 공제돼야 하는 점 △1심판결 선고 후 보험사에 317여만원을 지급해 채무를 전부 변제한 점을 주장했습니다.
1심은 A씨가 보험사에게 사고부담금으로 300만원만 지급하면 된다고 봤습니다. 2심도 1심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 사고가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자동차손배법) 제29조 제1항 및 보험계약 약관 제11조 제1항의 무면허운전 중 사고에 해당하므로 보험사가 A씨에게 사고부담금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고 그 액수는 피해자의 손해액과 사고부담금의 한도액 중 적은 금액이 된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2심은 보험계약 약관의 관계 법령 개정 경과와 내용에 주목했습니다. 자동차손배법이 2021년 7월27일 개정되기 전에는 제29조 제1항에서 무면허운전으로 다른 사람이 사망 또는 부상하거나 다른 사람의 재물이 멸실·훼손돼 보험회사 등이 피해자에게 보험금 등을 지급한 경우 보험회사 등은 법률상 손해배상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금액’을 구상할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당시 자동차손배법 시행규칙(시행규칙) 제10조는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금액’이란 보험회사 등이 피해자에게 실제로 지급한 보험금 또는 공제금의 총액을 말한다고 하면서, 무면허운전의 경우 그 한도를 사망 또는 부상의 경우 사고 1건당 300만원, 재물의 멸실·훼손의 경우 사고 1건당 100만원으로 규정했습니다.
2021년 7월27일 개정된 자동차손배법 제29조 제1항은 무면허운전 중 사고로 피해자에게 보험금 등을 지급한 경우 보험회사 등은 ‘해당 보험금 등에 상당하는 금액’을 법률상 손해배상책임이 있는 자에게 구상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2022년 7월28일부터 시행됐습니다. 이에 따라 사고부담금의 한도를 정한 시행규칙 제10조도 2022년 7월28일부터 삭제됐습니다.
이런 개정 경과와 내용에 비춰볼 때 2022년 7월28일 이전에 발생한 이 사건 사고에 관해 피보험자인 A씨가 부담해야 할 무면허운전에 따른 사고부담금은 부상의 경우 사고 1건당 300만원을 초과할 수 없고, 관계 법령에 반하므로 그대로 적용할 수 없거나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해 공정성을 잃은 조항으로서 무효라고 본 겁니다. 이외에 A씨가 피해자에게 지급한 형사합의금 공제 주장이나, 1심 판결 선고 후 보험사에 317여만원을 지급했다는 변제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시행규칙이 정한 사고부담금 한도액 300만원은 의무보험에만 적용된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금융감독원이 2020년 당시 시행규칙에 따라 의무보험에 대한 사고부담금 한도를 대인배상Ⅰ에 대해 300만원으로 정한 것 외에 임의보험인 대인배상Ⅱ에 대한 사고부담금 한도 1억원을 신설한 점을 주목했습니다. 이후 2022년 시행규칙 개정으로 음주운전으로 인한 경우 구상한도가 1000만원으로 상향됐고, 2022년 자동차손배법 개정 및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보험회사의 구상 한도가 삭제돼 보험금 전액을 구상할 수 있게 됐다는 점도 주목했습니다.
이와 같은 무면허운전이나 음주운전 등으로 발생한 사고에 대한 사고부담금 상향은 중대 법규를 위반해 사고를 유발한 사람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른 것이므로 2020년 4월29일 개정된 표준약관을 그대로 반영한 이 사건 약관이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하거나 이례적이지는 않다고 본 겁니다.
대부분 보험회사가 금융감독원장이 정하는 표준약관을 준용하므로 A씨가 다른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을 체결했더라도 임의보험에 관한 사고부담금의 적용을 받았을 것이고, 의무보험에만 가입하더라도 의무보험 보장 범위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피해자에게 직접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하므로 임의보험에 관한 사고부담금 액수가 고액이라는 사정만으로 이 사건 약관이 사회통념에 비춰 무효라고 볼 수는 없다고도 봤습니다.
보험계약은 보통 보험사가 여러 보험계약자와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미리 마련한 계약의 내용인 약관을 토대로 이뤄집니다. 이러한 약관은 사업자가 그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한 내용의 약관을 작성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약관법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해 공정성을 잃은 약관을 무효로 규정합니다.
약관의 내용이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 △고객이 계약의 거래형태 등 관련된 모든 사정에 비추어 예상하기 어려운 조항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계약에 따르는 본질적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에 해당하면 그 조항은 공정성을 잃은 것으로 추정해 무효가 되는 겁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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