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미국 의회 의사당 전경.(사진=연합뉴스)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 논의는 이제 더 이상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설계 능력, 건조 경험, 운용 역량에 대한 질문은 이미 상당 부분 답을 얻었다. 진짜 관문은 정치와 외교, 그중에서도 미국 의회다. 핵추진잠수함의 성패는 워싱턴의 실험실이나 조선소가 아니라, 의회의 회의실에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외교·안보·원자력 정책 전반에서 의회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강한 국가다. 행정부가 정책적 합의를 이루더라도, 의회의 동의 없이는 실제 제도와 실행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특히 핵연료의 군사적 사용, 보다 정확히 말해 비확산 체제 하에서 군사적 목적의 사용을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문제는 행정부 재량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지난 6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발족한 '핵잠 도입 민간지원단' 회의에서 한 전문가는 이미 미 의회 일각에서 '한국의 핵추진잠수함에 핵연료 사용을 동의하기 어렵다'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미국 정치 구조를 이해한다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흐름이다.
설령 미 행정부가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확보가 한·미 양국의 안보 이익에 부합한다고 설명하더라도, 의회의 문턱은 별개의 문제다. 미국 의회의 핵 관련 정책은 오랜 기간 축적된 규범과 절차 위에 형성돼 있다. 한·미 간 행정부 차원의 합의만으로도, 나아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기술적 협의만으로도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의회의 명시적 동의 없이는 핵연료의 군사적 사용에 대한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더욱이 현재 워싱턴의 정치 상황은 한국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과 의회의 관계는 극도로 경직돼 있으며, 탄핵 논의까지 거론될 정도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크다. 이런 환경에서 행정부를 통한 '조용한 외교'만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기대는 지나치게 안이하다. 오히려 지금일수록 의회를 직접 상대하는 정면 돌파형 전략이 요구된다.
여기서 반드시 참고해야 할 사례가 있다. 일본은 1988년 미·일 원자력 협정(지침) 개정 과정에서 전례 없는 수준의 의원외교를 전개했다. 일본 정부는 행정부 채널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일본 국회의원들이 직접 미 의회를 방문해 안보적 필요성과 비확산 준수 논리를 설명했고, 재계·학계·외교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일본의 입장을 설득했다. 그 결과 일본은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라는 민감한 권한을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했다. 이는 기술이 아니라 정치와 외교가 만들어낸 성과였다.
한국 역시 지금 그와 유사한 기로에 서 있다. 핵추진잠수함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방어적 전력이며, 비확산 체제를 흔들기 위한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주한미군의 전략적 부담을 분담하고, 동북아 역내 안정성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누군가가 설명하고 설득하지 않는 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미국 의회는 자동으로 한국의 입장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언적 의지나 국내 논의의 반복이 아니다. 물론 여야 의원들이 국회에서 핵추진잠수함 확보를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을 두고 그 어느 때보다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우선순위는 국내 정치가 아니라, 여야를 초월한 한·미 의원외교의 즉각적인 가동이다. 상임위원회 차원의 교류를 넘어, 미 의회의 핵·비확산·군사 관련 위원회를 직접 겨냥한 체계적인 설명과 설득이 필요하다. 시간을 끌수록 기회는 줄어든다.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확보는 가장 실질적인 자주국방의 상징이 될 수 있으며, 현 정부의 최대 안보 성과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핵추진잠수함 건조 여건은 그 어느 때보다 성숙해 있지만, 이 기회가 오래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기술은 준비돼 있으나, 외교는 아직 출발선에 서 있다. 모처럼 열린 이 기회를 놓친다면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미 의회를 향한 전면적 의원외교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순간이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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