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21세기 의료 영상이 연 ‘시간의 창’
CT와 3D 프린팅으로 정밀 분석
고해상도로 연조직 윤곽도 선명
2026-02-09 10:27:21 2026-02-09 10:27:21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캘리포니아 과학센터(California Science Center)에서는 2월 7일부터 역대급이라고 평가받는 미라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 전시는 고대 이집트뿐 아니라 남아메리카, 유럽 등 여러 지역에서 보존된 사람과 동물의 미라 30여 점과 다양한 장례 유물을 과학적 분석 자료와 함께 소개합니다. 관람객들은 미라 실물뿐 아니라 CT 스캔 이미지, 척추·두개골·골반의 실물 크기 3D 출력물, 그리고 부장품 복제품을 나란히 보게 됩니다. 과학기술이 고고학 전시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확장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받는 부분은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 켁 의과대학(USC Keck School of Medicine) 영상의학과 연구진이 수행한 CT 촬영과 3차원 재구성 작업입니다. 연구진은 기원전 330년경에 살았던 이집트 사제 네스민(Nes-Min)과 기원전 190년경의 사제 네스호르(Nes-Hor)의 미라를 최신 CT 스캐너로 촬영해, 현대 의학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정밀한 방식으로 분석했습니다. 2200년 전의 인체가 21세기 의료 영상 장비를 통해 다시 ‘진단’된 것입니다.
 
관 속에 담긴 기원전 330년경의 네스민 미라. CT 촬영은 미라가 관 하부에 담긴 상태로 이루어져 부장품까지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사진=California Science Center)
 
3차원 재구성된 이집트 사제의 인체
 
CT 장비는 한 번 회전할 때마다 수백 장의 단면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이번 스캔에서는 한 바퀴에 320장의 단면이 생성됐고, 각 단면의 두께는 0.5mm 미만이었습니다. 이 슬라이스들은 디지털로 차곡차곡 쌓여 3D 디지털 모델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이어 의료용 3D 프린터를 이용해 미라의 척추, 두개골, 골반뼈는 물론 관 속에서 발견된 유물들까지 실물 크기로 복제되었습니다.
 
이 작업을 이끈 이는 USC 의료 시각화 혁신 센터의 서머 데커(Summer Decker) 박사입니다. 데커 박사는 인터뷰에서 “이 미라들은 과거에도 스캔된 적이 있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훨씬 더 상세하고 광범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며 “고해상도 이미지는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삶의 흔적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이번 데이터는 기존 보고를 수정하거나 재해석하게 만드는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네스민의 CT 영상에서는 오른쪽 흉곽을 따라 유합된 골절이 확인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낙상이나 외상을 겪었음을 시사하는 흔적입니다. 요추 부위는 붕괴에 가까운 마모 상태를 보여, 생전에 만성 요통을 앓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척추에서 발견된 작은 천공은 당시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외과적 시술, 즉 천공술과 유사한 흔적일 가능성도 제기되었습니다.
 
네스호르는 사망 당시 약 60세로 추정되며, 그의 고관절은 심하게 손상된 상태였습니다. 연구진은 그가 상당한 절뚝거림 속에서 노년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치아 문제의 흔적이 있었지만, 과거 보고와 달리 치명적 치아 농양의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진단이 오늘날 병원에서 흔히 접하는 질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허리 통증, 관절 손상, 치아 질환은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공통된 신체적 질병임을 보여줍니다.
 
고해상도 CT는 뼈뿐 아니라 안구, 눈꺼풀, 귀, 입술과 같은 연조직의 윤곽까지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전시를 총괄한 인류학자 다이앤 페를로프(Diane Perlov) 박사는 “미라의 표면 아래를 들여다보면, 이들은 더 이상 이국적인 유물이 아니라 삶의 고통을 겪었던 한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네스민의 몸에는 구슬이 촘촘히 박힌 그물 의복과 화려한 목걸이가 있었고, 관 안에서는 풍뎅이와 물고기 모양 유물, 붕대를 고정하는 금속 클립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유물들까지 3D로 복제해, 미라를 훼손하지 않고도 정밀 관찰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USC 켁 의과대학 연구진이 고대 이집트 미라 네스호르를 CT 스캐너로 촬영하는 모습.(사진=USC)
 
영상의학 기술, 인류 기억 복원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섭니다. 고해상도 영상은 질병의 장기적 역사를 보여주며,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이 시대와 무관하게 반복되어 왔음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고대에도 일정 수준의 외과적 시도가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CT의 단면은 시간을 가르는 칼날처럼 과거의 육체를 현재의 해상도로 드러냅니다. 그리고 3D 프린터는 그 단면을 다시 만질 수 있는 현실로 복원합니다. 본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발전한 의료 영상 기술이, 이제는 인류의 기억을 복원하는 도구로 확장되고 있는 셈입니다.
 
약 2200년 전에 살았던 네스민과 네스호르는 더 이상 신비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허리가 아팠고, 절뚝거렸고, 치통을 앓았던 우리와 같은 인간입니다. 21세기 의료 영상은 이 고대인들의 삶을 현재의 시선으로 되돌려 놓으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또 하나의 ‘시간의 창’을 열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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