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태현 기자] "정부가 국민들의 해외주식을 강제로 매각하려 한다는 말이 퍼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못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2026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해외주식 강제매각 추진' 논란을 직접 언급하면서 강하게 일축했습니다. 퇴직연금 기금화 논의 과정에 대한 기자의 질의에 답변하던 중, 이 대통령이 먼저 이 논란을 화두로 꺼내며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다는 걸 명확히 한 겁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월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6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렇다면 정부가 해외주식을 강제로 매각할 수 있다는 주장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논란은 정부 정책이나 법 개정 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증권사들이 관행적으로 사용해 온 '해외주식 거래 유의사항' 문구와 이 대통령의 이름을 도용해서 뿌려진 이른바 '지라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벌어진 가짜뉴스 해프닝이었습니다.
'법령 및 규정' 등 이유로 강제 매각?…오해로 시작된 논란
논란의 발단은 지난해 12월26일 미래에셋증권과 카카오페이증권 등이 게시한 '해외주식 거래 유의사항' 공지였습니다. 해당 공지엔 "천재지변, 전쟁, '법령 및 규정' 등의 이유로 보유 주식이 강제 매각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법령 및 규정'이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일부 투자자들은 이를 한국 정부의 법령, 특히 '외국환거래법' 제6조(비상조치권)와 연결해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환율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해당 조항을 근거로 개인의 해외주식 등 자산을 강제로 매각할 수 있다는 추측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됐던 겁니다.
이러한 해석은 경제 전문가들의 발언과 뒤섞이며 음모론으로 변질됐습니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2월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환율 대응책으로 정부의 '시장 개입'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은 "외국환거래법상 환율 안정을 위해 정부가 비상조치권(세이프가드)을 행사할 수 있다. 정부가 약해 보이면 안 된다. 시장 개입 의지 등 시장에 강력한 시그널을 줘야한다"라고 했습니다.
해당 발언이 해외주식 강제 매각의 실현 가능성으로 해석·비화됐습니다. 직접적 관련이 없음에도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환율 방어를 명분으로 개인의 달러 자산을 건드릴 수 있다"는 음모론의 근거로 소비됐을 정도입니다.
지난해 11월 이 대통령의 이름을 도용한 '가짜 담화문'도 음모론을 부추기는 데 한몫을 했습니다. 해당 지라시엔 정부가 외환 보유액을 확보하기 위해 개인의 해외주식 등 자산 환수를 권고하며, 불응할 경우 제재를 가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허위였습니다. 가짜 뉴스가 또 다른 가짜 뉴스의 근거가 된 셈입니다.
미래에셋증권 홈페이지 캡처. (사진=뉴스토마토)
그러나 <뉴스토마토> 취재 결과, 증권사가 공지했던 '강제 매각' 조항은 국내법이 아닌 '해외 현지 법령'을 의미하는 걸로 드러났습니다.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외국인 투자 지분 한도나 심사 제도에 따라 당국이 지분 처분을 명령할 수 있는 규정이 실제 존재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증권사의 공지는 국내 정부의 조치가 아니라, 해외 투자 때 발생할 수 있는 현지 리스크를 고객에게 고지하려는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각 증권사는 '법령 및 규정'이라는 말 앞에 '해외'라는 단어를 누락한 탓에 마치 한국 정부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가 발생한 겁니다.
실제로 한국 정부가 비상조치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자본시장연구원(KCMI)이 2022년 10월24일 발간한 '외국환거래법의 개편 필요성 및 방향에 대한 고찰'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비상조치권(세이프가드)은 법적으로 존재하지만 국가 신용등급 폭락 등 치명적인 부작용 때문에 지금까지 실제 발동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결국 논란이 커지자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1월20일 사과 공지를 올렸습니다. 미래에셋 측은 "최근 당사의 해외주식 거래 유의사항 안내 문구로 인해 발생된 오해로 고객님들께 혼란을 드린 점 깊은 사과의 말씀 드린다"며 "'보유주식 강제매각'이라는 표현은 과거부터 당사의 해외주식 거래 설명서에 기재되어 있던 문구일 뿐이며 최근 추가되거나 개정된 사실은 전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고 했습니다.
이번 논란은 정부의 정책 검토와는 무관하게 모호한 표현과 왜곡된 해석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전형적인 가짜 뉴스 확산 사례'로 평가됩니다.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설 만큼 파장이 컸지만, 정작 그 시작은 증권사의 관행적인 문구와 이를 '고의로 또는 잘못' 해석함으로써 벌어진 오해였습니다. 결국 '해외주식 강제 매각' 논란은 실체 없는 공포였으며,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사회적 불안을 어떻게 증폭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로 남게 됐습니다.
김태현 기자 taehyun1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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