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학전을 살리자-①)박학기 "'학전'의 마지막, 그리고 김민기의 마지막"
학전 설립초기부터 김민기와 한국 공연문화 다듬은 박학기
"우린 모두 '김민기=학전'에 빚진 사람들"
"K팝 뿌리를 찾다보면 근원은 김민기일 것"
2023-12-04 14:00:00 2023-12-04 21:46:48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절친 광석이(김광석)부터 막내였던 승환이까지도(이승환), 우리에겐 늘 '꿈의 무대' 같은 곳이었거든요. 민기 형(김민기)과 학전은 늘 싱어송라이터들의 '발원지' 같은 곳이었어요."
 
지난 3일 <뉴스토마토>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포크 뮤지션 박학기는 "학전은 한국 공연 문화의 뿌리였다"며 "이를 싹틔우고 지속되리라는 희망을 마지막까지 지켜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특히 "학전과 '같은 뜻 다른 단어'인 민기 형에게 우리(후배 음악가들을 포함한 언더그라운드 문화인들) 모두 빚을 졌음을 인식했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아쉬움이 강하게 배인 '소망'이었습니다. 
 
지난 33년 간 한국 대중문화계의 산실 역할을 해온 '학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배울 '학'(學)에 밭 '전'(田), 문화 예술계의 '못자리'라는 이 비유적 공간에서 모처럼 쑥쑥 자라난 무수한 예술계 인재들 사이에선 지금 자성과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김민기의 암 투병 소식까지 더해졌습니다. 
 
포크 뮤지션 박학기. 사진=뉴시스
 
"우린 모두 '김민기=학전'에 빚진 사람들"
 
박학기(61)는 학전 설립 초기부터 김민기(72)와 함께 학전의 역사를 다듬어왔습니다. 가수 고 김광석(1964~1996) 역시 학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김광석은 2006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 곳에서 총 1000회의 공연을 열었습니다. 학전 마당에 세워진 김광석 노래비에는 현재도 사람들이 꽃을 가져다 놓고 있습니다. 박학기는 고향 친구이자 음악 동료인 김광석 생전 무대 코러스 등에 도움을 보탰습니다. 사후에는 김광석추모사업회 회장인 김민기와 함께 '김광석 추모콘서트' 등을 이끌어왔습니다.
 
"학전은 문을 열 때부터 '음악가들의 출발지' 같은 곳이었거든요. 조동진 형과 김민기 형이 가장 큰 어른이셨고, 광석이 형과 저도 공연을 많이 했었어요. 광석이형이 돌아가신 후에는 제가 민기 형 옆에서 가장 일을 많이 했죠. 모시는 마음으로요."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학전은 운영난에 시달렸습니다. 김민기는 그간 자신의 음원·저작권 수익을 쏟아부으며 학전을 꾸려오다, 건강 문제까지 겹쳐 오는 3월15일을 끝으로 폐관 결정을 내렸습니다. 김민기는 위암이 간암 4기로까지 전이된 상황으로, 현재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진행 중입니다. 박학기는 "신약을 쓰고 있는데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수도 있지만, 아니면 아주 안 좋은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면서 "지켜봐야겠지만 정신력이 강한 분이시니까 잘 버텨내실 것으로 본다"고 희망했습니다. 
 
"그 형의 생각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어요. 지금 상황에서는 그저 조용히 기다리며 모든 피곤함을 없게 해줘야 할 것 같아요. 진작부터 학전에 대한 관심을 가졌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지금 이렇게까지 하는 게 우리 필요에 의해 본인을 이용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어게인 학전콘서트' 기자간담회가 열렸던 지난 2019년 오후 서울 동숭동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출연 가수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자전거 탄 풍경 강인봉, 권진원, 박학기, 전인권, YB윤도현, 허준, 강산에, YB 김진원, 푸른곰팡이 조동희, 유재하 동문회 스윗소로우 김영우. 사진=뉴시스
 
"K팝의 뿌리 찾다보면 결국 근원은 김민기"
 
박학기는 김민기를 "내 노래 이상의 것을 항상 생각했던 분"이라고 말합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경영방식은 아니었죠. 그럼에도 지나고 보면 논리적인 판단이었고요.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늘 '내가 해야할 일은 해야 한다'는 뜻이 있는 분이십니다. 음악에서도 형이 만들어놓은 '두께'라는 것은 감히 따라 할 수 없어요."
 
'아침 이슬'과 더불어 1970년대를 대표하는 곡 '상록수'에 대해 박학기는 "실제 민기 형이 어둡던 시절 쫓겨다니고, 공장과 농사일을 병행하면서도 결혼식조차 못 올리고 살던 그 당시 젊은이들을 위해 만든 축가지만 당시 엄혹한 시대를 비추던 희망의 노래 아니었나"라며 "말로 투쟁한 게 아니라, 글 속에서 노래 속에서 투쟁해온 김민기 음악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음악이 한국 대중음악사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는 김민기한테 빚을 졌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저작권협회부회장도 맡고 있는 박학기는 내년 2월 28일부터 3월 14일까지 학전에서 개최되는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를 주도합니다. 여행스케치, 시인과촌장, 크라잉넛, 유재하동문회, 하림, 이정선, 노찾사, 한상원밴드, 최백호, 한영애, 윤도현, 알리, 동물원, 장필순, 권진원, 유리상자, 이한철, 이은미, 자전거 탄 풍경(자탄풍) 등이 출연료 없이 릴레이 콘서트를 이어갑니다. 
 
"현재 세계로 뻗어나가는 K팝의 뿌리를 찾다보면 그 근원에는 김민기가 있을 겁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정작 그 노래에, 김민기가 만들어온 터전에, 빚을 갚은 사람이 누가 있냐 생각해보면 속상한 거죠. 역사고 기록이고 문화인데, 김민기 나무 아래 그늘에서 자라온 우리가 한국 공연 문화의 뿌리를 계속 싹틔우고 지속시켜가자는 희망으로 이번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2018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가수 김민기가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학전은 한국 공연 문화의 뿌리
 
학전은 1991년 3월 15일 대학로에 개관한 한국 대중문화계의 상징 같은 곳입니다. 대중에게 '김민기=아침이슬'이라면 문화계는 '학전=김민기'라는 등식이 성립합니다. 김민기가 문을 열고 가요, 연극, 뮤지컬 등의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무대에 올려왔습니다.
 
1세대 아이돌 그룹이 가요계를 휩쓸던 1990년대 통기타를 든 가수들은 이곳에 몰려들었습니다. 학전은 이들을 무대에 세우며 라이브 기획 콘서트의 문화 토양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들국화, 유재하, 김수철, 강산에, 동물원, 유리상자, 여행스케치, 강산에, 장필순, 박학기, 권진원 등이 이곳에서 관객들과 만났습니다. 지난 2021년 SBS에서 방영된 '전설의 무대-아카이브K'에서도 학전은 재조명된 바 있습니다. 학전 이후 라이브 콘서트 전문 공연장이 생겨났고, 그 흐름이 홍대 인디 밴드까지 퍼진 흐름을 살폈습니다.
 
이후 학전은 뮤지컬, 연극 등으로 갈래를 뻗어왔습니다. 1994년 초연된 '지하철 1호선'은 한국 뮤지컬 역사에 획을 그은 작품입니다. 독일 그립스극장의 원작을 김민기가 20세기 말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새로 그린 작품입니다. 설경구·김윤석·황정민·장현성·조승우 등 '학전 독수리 5형제'로 통하는 배우들도 이 곳을 거쳐갔습니다. YB의 윤도현은 1995년 '개똥이'로 뮤지컬 출연을 처음으로 이곳에서 했습니다.
 
2004년부터는 아이들 정서에 보탬이 되겠다는 취지로 어린이극에도 신경 써왔습니다. 2004년 ‘우리는 친구다’를 시작으로 '고추장 떡볶이', '슈퍼맨처럼~!' 등의 작품을 올려왔습니다. 재정난에 시달리면서도 김민기는 그간 자신의 음원·저작권 수익을 쏟아부으며 학전을 꾸려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학전 어게인'을 비롯해 '지하철 1호선(이날부터 12월31일까지)', '제2회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1월 6일)', '고추장 떡볶이'(내년 1~2월) 등을 예정대로 이어가겠다는 게 폐관 전까지 스탭들과 김민기의 의중입니다.
 
김광석 흉상이 설치돼 있는 학전블루 소극장 앞마당. 사진=학전
 
<박학기에게 묻다>
 
-내게 학전의 김민기는 이런 존재였다
박학기: 우리가 흉내낼 수 없는 영역의 사람이라 늘 생각했어요. 우리가 아무리 멋있게 살고 싶고 지적 허영심도 갖고 있고 하지만, 그 형이 판단하는 행보와 이야기는 그냥 툭 던지는 말들이 거의 성경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어린이극 '지하철 1호선'이 잘됐고, 아이들을 위한, 그러나 어른들도 좋아할 수 있는 '고추장 떡볶이' 같은 좋은 작품들도 많이 나왔죠. 지방 폐교나 문화혜택 못받는 곳에 늘 가서 일을 하시기도 했고요. 닮고 싶지만 닮을수는 없는 형이에요.
 
-음악가로서 김민기의 존재는 어떤가
박학기: '작은 연못'에 대한 소개글을 본 적이 있어요. '노래를 통해 현실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데 동의해요. 영미권은 레전드에 대한 존중이 있잖아요. 저도 형이 밥 딜런 같은 존중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해요. 생각해보면 형의 모든 곡이 금지곡이 되고 정말 힘들게 살았잖아요. 암담한 시절 희망의 노래는 '상록수'였고, 말로 투쟁한 게 아닌 형은 음악으로 얘기하는 분이었어요.
 
늘 그 자리에서. 지금 세계적으로 뻗어가는 K팝 신드롬 속에서도 우린 그 뿌리가 됐던 레전드에 대해 왜 소홀할까 하는 생각을 해요. 김민기에 대해선 젊은 음악인이나 방송 작가들도 잘 몰라요. 이런 문화적 상황이 저희는 안타깝죠. 이번 '학전 어게인'에서 진심 어린 움직임이 있다면 정부, 방송, 음악업계가 관심을 돌릴 것이라 생각해요.
 
-학전 폐관에 부쳐: 또 다른 희망 씨앗되길
박학기: 향후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학전을 인수한다면, 그건 김민기 개인의 소유인데 책임져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직원들 급여와 퇴직금 문제도 걸려 있을 것이고요. 현재 형은 자신의 조그만 집 정리까지도 해서 빚을 정리할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공연('학전 어게인')을 성공적으로 만들 거예요. 180석밖에 안되거든요. 다른 큰 곳에서 하자는 얘기도 있지만 의미가 없다고 봐요. 우리 문화 터전이 돼 온 곳이자, 작은 공연장의 소중함을 느끼는 게 중요하니까. 모든 가수들이 출연료를 안받기로 했습니다. 조명과 음향 등 비용이 들테지만, 기업에서 지원을 받을 예정입니다. 또 문체부에서도 예산을 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멋있게 공연을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 생각에는 현실적인 형님의 부담도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게 걱정스럽습니다. 일단 우리가 진심으로 형에 관한 것을 알리고 노력하자는 생각입니다. 학전 어게인이 또 다른 희망의 씨앗이 되길 바랍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