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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실리카겔, 빛과 비디오의 '다다익선'
영미권 록 연출 같은 단독 공연 '파워 앙드레 99'
홍콩·대만·일본 건너며 "해외 공연, 새로운 꿈 생겨"
2023-12-01 17:38:02 2023-12-01 17:48:55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조명과 비디오로 쌓아올린 정중앙 탑은 흡사 백남준의 '다다익선', 금방이라도 우주로 쏠듯한 양 날개 LED와 위로부터 직사하는 하얀 빛의 물결들…. 지하실에 유폐된 기계소년(Machine Boy)의 꿈은 비상할 수 있을까.
 
"지난 4월 'Machine Boy' 공연(동명의 EP음반 발매 공연)의 중앙 구조물을 발전시켜 이걸 'Machine Boy' 혹은 'POWER ANDRE 99'의 은신처(Shelter)나 알 같은 역할로 만들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앙 구조물에서 빛이 나고, 양옆에 세워진 누드 LED가 중앙 구조물을 보조해 주거나 튀어나오기도 하는 연출을 통해서 말입니다."
 
최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단독 공연 'POWER ANDRE 99(파워 앙드레 99)'를 끝내고 만난 록 밴드 실리카겔 멤버들, 김한주(키보드·보컬), 김춘추(기타·보컬), 최웅희(베이스), 김건재(드럼)가 말했습니다.
 
최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단독 공연 'POWER ANDRE 99(파워 앙드레 99)'을 연 실리카겔. 사진=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이번 단독 공연과 동명의 음반을 12월 중 곧 발표합니다. 'POWER ANDRE 99'의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함구했지만 "그 알을 까고 나올지, 아니면 균열을 일으킬지, 앞으로 어떻게 등장할지 사람들이 추측하면서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든 공연"이라는 설명으로 갈음했습니다. 흡사 헤세의 작품 '데미안' 속 "알은 곧 세계"라는 자아의 투쟁 같은 기록일까. 
 
"'POWER ANDRE 99'는 'Machine Boy'의 정체를 밝히고자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이번 공연의 연출과 셋리스트는 앨범의 트랙 순서와 동일하게 구성했는데요. 멤버들과 계속해서 이야기해 왔던 건 이번 앨범이 POWER ANDRE 99를 설명하기도 하고, 에피소드를 표현하는 곡들인 거 같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번 정규앨범이 POWER ANDRE 99의 마인드맵이나 위키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연출과 공연으로써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준비했습니다."
 
기어코 실리카겔은 고유의 거대 세계관을 만들어낼까. 2CD로 나눠담길 17곡은 이렇게 사전부터 장관입니다. 
 
최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단독 공연 'POWER ANDRE 99(파워 앙드레 99)'을 연 실리카겔. 사진=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실리카겔은 현재 한국 대중음악신에서 비상한 재능으로 주목받는 팀입니다. 제19회 '2022 한국대중음악상'과 제20회 '2023 한국대중음악상'에서 2년 연속 모던록 노래상을 수상하고, 최근 세계에서까지 주목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올해 홍콩 최대 뮤직 페스티벌 '클라켄플랍'과 '2023 인천펜타포트락페스티벌', '2023 부산국제록페스티벌' 등 규모 큰 무대에 서며 국내 대표 밴드로 자리매김 중입니다.
 
"지금까지 했던 단공(단독공연) 중 가장 규모가 컸다"는 이번 공연을 보면서, 연출 자체가 영미권 록 밴드에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멤버들에 따르면 "조명과 VJ를 맡은 홍찬혁 감독과 그의 크루들이 음악을 이해하고 연출을 잘 살려냈다"고 합니다.
 
키네시스(Kinesys) 모터 기술을 활용한 조명 장비는 최근 넬 등 록 밴드의 규모있는 공연에서 자주 활용됩니다. 이번 공연에서도 중간중간 장비가 움직이며, 공연의 전반적인 흐름을 분할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음악을 조금 더 특별하게 들려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써, 조명에 대한 변주와 실험, 미장센이 돋보였던 무대였습니다. 멤버들은 "누드 LED 판 이외에 국내에 도입된 지 얼마 안 된 제품도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저희 공연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며 "장치들이 'POWER ANDRE 99'의 메커니컬한 부분을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거 같았다"고 했습니다.
 
공연은 새 앨범에 수록될 곡들도 라이브로 미리 들려주는 자리기도 했습니다. 더블 타이틀 곡 ‘Ryudejakeiru’와 ‘APEX’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는데 멤버들은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있는 곡들로 선정해봤다"고 했습니다.
 
"‘Ryudejakeiru’는 싱글로 발매했던 곡들처럼 함께하기 좋은 곡이라는 특징이 있고, ‘APEX’는 실리카겔이 밴드라는 형태를 이용해서 만들어 내는 연주적인 에너지를 보여줄 좋은 형태의 곡입니다. 더블 타이틀이 공연을 보신 분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발매될 음반을 듣는 사람들에게도 실리카겔의 넓은 가능성을 느낄 수 있는 곡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K라는 카테고리에 묶이기 보다 그저 록이라는 장르로, 국내에도 새 물결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홍콩에 이어 최근 일본과 대만까지 거친 기계소년(Machine Boy)의 꿈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홍콩에서의 공연 이후에 한국에서 단독공연 <Machine Boy>, <POWER ANDRE 99>이 있었고, 특히 일본에서의 공연도 한차례 있었습니다. 그 공연이 실리카겔의 해외에서의 입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해외에서의 활동을 지속하다 보면 더 큰 시장에서 실리카겔이 준비한 것들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듭니다. 최근 해외 공연을 하면서 새로운 꿈이 생긴 느낌이었습니다. 더 다양한 나라의 무대에 오르고 싶네요."
 
최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단독 공연 'POWER ANDRE 99(파워 앙드레 99)'을 연 실리카겔. 사진=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최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단독 공연 'POWER ANDRE 99(파워 앙드레 99)'을 연 실리카겔. 사진=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에필로그: 실리카겔의 인생 공연: 
그것이 지금의 공연을 만드는 데 자양분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한주: 2012년 지산 밸리락페스티벌에서 본 라디오헤드의 무대가 인생에서 본 최고의 공연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단독공연에서의 연출 아이디어 등 지금도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건재: 저는 최고의 공연이라기보다는 최고의 장면처럼 파편적으로 모으는 편입니다. 공연은 연출과 연주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섞여 복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보니 최고라는 기준을 세우게 애매한 거 같네요. 그럼에도 드러머로써 생각해 본다면 요즘같이 완벽하게 가공되어 나오는 것들보다는 DVD로 발매된 옛날의 라이브 공연들이 생각나네요.
 
춘추: 연주하고 무대에 올라가는 게 좀 더 익숙한 사람이다 보니 공연 연출보다는 유명한 재즈 뮤지션 Weather Report, Miles Davis 밴드같이 무대에 올라간 뮤지션이 연주하는 모습, 그들 간의 앙상블이 집중되는 공연이 좋다고 느껴집니다. 이러한 부분이 실리카겔 공연에서 멤버들이 연주하며 앙상블을 보여주는 것에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웅희: 최근 본 영화 <스윙걸스>의 마지막 장면이 있습니다. 준비한 공연을 못 할뻔한 상황이었는데 우연의 우연이 겹쳐 준비한 의상도 못 입고 튜닝도 못 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다른 유명 뮤지션이 수많은 관중 앞에서 공연하는 것보다 더 큰 에너지를 받았어요. 이게 진짜 내가 하고 싶고, 우리가 보여줘야 하는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의 한 장면이긴 하지만 이 장면을 꼽고 싶네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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