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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온 마을이
2023-11-15 06:00:00 2023-11-15 06:00:00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 명의 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 공동체 전체의 도움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의미의 나이지리아 속담입니다. 얼마 전 이를 실감할 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아이를 잃어버릴 뻔했거든요. 지난달 추석 연휴를 맞이하여 온 가족이 나들이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오랜만에 조카들까지 합류하여 다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 카페로 이동하던 중 문득 동생이 없어졌다는 첫째의 외침에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로 둘째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죠. 그 길로 어른 넷이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진 아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며 거리를 헤매는 동안 온갖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어디에서 놓쳤을까. 어떻게 어른이 넷이나 있는데 아이를 잃어버릴 수가 있나. 추측컨대 어른이 넷이나 있었기에 오히려 방심해서 생긴 일 같았습니다. 열 명 가까운 인원이라 둘 셋씩 떨어져서 걷게 되었는데, 그렇다 보니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다른 어른이 챙기고 있겠거니 생각한 것이죠. 
 
울먹거리며 뛰어다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혹시 아이를 잃어버렸냐고, 저쪽에서 아이가 경찰과 함께 있는 걸 보았다고요. 서둘러 사람들이 일러준 방향으로 가보니 정말로 아이가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울고 있던 아이를 근처에 있던 경찰이 때마침 발견하고 보호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10분도 안 되는 잠깐 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 느낌이었습니다. 
 
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부모를 잃어버리고 혼자 엘리베이터에 탄 아이의 사연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던 어른들이 모두 아이에게 무관심했다며 논란이 된 건입니다. 어떻게 보호자도 없이 아이 혼자 울고 있는데 어른으로서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있느냐고 따져 묻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에게 책임을 물어야지 왜 애꿎은 남 탓을 하느냐며 반감을 보이는 사람들도 존재했습니다. 치열한 논쟁을 살펴보는데 양측 다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으니까요.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피해를 끼치지 않는 대신, 타인 역시 나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기대지 않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랬던 생각은 아이를 낳으면서 180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막상 아이를 길러보니 앞서 언급한 사연처럼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과 변수가 너무도 많았던 것입니다. 물론 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일이고 혹여라도 사고로 이어졌을 경우 보호자인 제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겠지만요. 문제는 이런 일들이 육아 과정에서 빈번하게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컵을 건네다 놓쳐서 떨어뜨리는 것처럼, 길을 걷다 넘어지는 것처럼, 물건을 깜빡 잃어버리는 것처럼, 너무 피곤한 나머지 늦잠을 자는 것처럼요.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실수나 잘못을, 부모들 또한 육아 과정에서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없던 시절 저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다고요. 이 말에는 타인 역시 나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었지요.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실수와 잘못을 빈번하게 저지르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면서, 삶에는 때로 불가항력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을, 완벽하게 독립적인 삶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비단 육아뿐일까요. 실은 한 아이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도 온 마을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며, 이 세상에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한승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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