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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육사는 사립학교가 아니다
2023-11-01 06:00:00 2023-11-01 06:00:00
육군사관학교에 세운 홍범도 장군과 이회영 선생, 지청천 김좌진 이범석 장군 흉상 철거 및 이전 방침이 논란을 빚는 가운데 육군 지휘부 인사가 특이한 말을 했다.
 
박정환 육군참모총장과 권영호 육사 교장 등은 10월23일 육군본부에 대한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홍범도 장군 등 독립영웅 흉상 설치가 (육사의) 대적관을 흐리게 했다고 보느냐”고 묻자, 박 총장은 “일정 부분 흐리게 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안 의원이 “육군 총장이 헌법 정신과 독립영웅을 부정하며, 일제에 항거한 역사를 지우는 것이 옳은가”라고 추궁하자, 박 총장은 “육사의 설립 취지와 목적은 광복운동, 항일운동 학교가 아니다”라고 맞섰다.
 
 필자는 생각해 본다. 사관학교 설립 취지와 목적이 무엇일까?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헌신하고, 주권을 빼앗긴다면 주권을 되찾고자 싸우는 사명 말고 다른 취지와 목적은 없다고 필자는 믿는다.
 
첫째, 법령을 살펴보자. 우리 헌법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명시하고 있다. 국군조직법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국군의 조직과 편성의 대강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삼았다. 사관학교 설치법은 “육해공군 정규 장교가 될 사람을 교육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둔다고만 했다. 대한민국 정부 기구는 헌법 가치를 지켜야 하며 여기에 독립운동 정신이 포함된다. 육군과 육사가 헌법 정신을 젖혀 놓고 각자 희망하는 가치를 선택해도 좋다고, 위임해 준 법령은 없다.
 
둘째,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광복군을 창설할 때 항일 의병과 신흥무관학교, 독립군을 계승한다고 밝혔다. 이승만 정부도 현대 국군을 조직할 때 광복군 계승 원칙을 명확하게 천명했다. 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이범석 장군을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으로, 초기 육사 교장에 광복군 출신 인사를 내리 임명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미 군정청조차 통위부장(국방부 장관 격)과 조선경비대 총사령관에 광복군 출신 인사를 앉혔다.
 
셋째, 다른 기관과 비교해 보자. 한국 해군과 공군은 독립전쟁 전통을 중시하며 구성원한테 그 정신을 교육하고 있다. 공군은 임시정부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세웠던 윌로우즈 비행학교 등을 항공독립운동으로 높이 평가하고 기념한다. 미 육군은 반영 독립전쟁 때 민병대를 조직의 기원으로 삼는다. 한국 육군만 독립전쟁 전통을 못 본 척하고 있다.
 
필자는 국방홍보원장 재직 때 육사를 방문했다. 당시 육사를 지방으로 옮기고 그 땅에 아파트를 짓자고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었다. 필자가 육사 교장한테 아이디어를 줬다. 해사, 공사, 국방대학교와 달리 육사가 서울에 자리 잡은 장점을 살려 국방안보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운영하면, 육사 존재감이 커지지 않겠는가. 육사를 발전시키고 싶었다. 최근 육사가 독립영웅 흉상을 철거한다고 하자, 이웃인 서울 노원구청이 육사와 문화행사 공동 개최 계획을 취소하기도 했다. 안타깝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10월25일 홍범도 장군 순국 80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홍 장군의 공적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국가보훈부는 독립유공자 서훈 등을 통해 나라 정통성을 유지하는 기관이다. 육군과 육사 지휘부가 철거 행동을 앞세우지 말고, 국가보훈부, 국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같은 전문기관과 의논하는 게 어떤가. 육사는 특정인이 특정한 가치를 홍보하려고 만든 사립학교가 아니다.
 
박창식 전 국방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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