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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질문은 멈추지 않는다
2023-10-30 06:00:00 2023-10-30 06:00:00
생략, 은유, 비약.
 
공산주의 국가의 영화들은 수준이 높기로 유명하다. 권력의 감시로 말하고 싶은 것들을 생략하거나 은유로 표현하다 보니 당연히 비약이 심한데 오히려 그 방식이 예술성의 본질에 가닿는 역설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역설이 아니다. 예술은 본디 예술가의 고뇌가 탄생시키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애초에 예술일 수가 없다.
 
“이렇게만 바꾸면 걸작이 될 것 같아!”
 
이미 촬영을 마친 영화의 결말을 바꾸고 싶어 이틀의 추가 촬영을 요구하는 감독 김열. 하지만 이 촬영은 ‘추가’인 동시에 ‘비밀’이기도 했다. 1970년대 당시는 삼엄한 검열의 시대였으니 말이다. 따라서 영화 <거미집>의 김열 감독이 무사히(?) 촬영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창작자 본인의 열정만으로는 불가했다. 그와 함께 반란을 모의한 세력들의 끈끈한 의리와 보위가 그 이틀을 보장할 수 있었다. 그럼 영화가 세상에 나온 이후에는? 영화관계자들의 ‘이틀 후의 삶’을 가능케 했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냐는 질문인데, 답은 두말할 것도 없다. 관객이다. 그 영화를 봐주고 박수쳐 준 관객이야말로 진정 시대의 절망을 넘어 사람을, 영화를, 예술을 지킨 장본인이다. 
 
영화 <타인의 삶>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동서독이 갈라져 있던 1980년대에 예술인들을 감시해 온 비즐러라는 인물을 변화시키고야 만다. 앞서 얘기했듯 강한 억압을 뚫고 예술의 꽃을 피우려는 의지의 결과물은 끝내 인간 본연의 감정을 향해 직진한다. 이것이 권력이 예술을 통제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영혼의 세포에 스며드는 것, 이른바 침투력을 가진 것이 예술이다.
 
“그들은 피흘리지 않는 열정이 없는 삶을 참지 못했어. 죽음만이 유일한 그들의 희망이었어.”
 
비즐러의 영혼을 건드린 사람 중 한 명인 드라이만은 예술인이란 피를 흘리는 것만이 삶의 이유이자 희망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베토벤의 소나타 <열정>을 듣고 ‘계속 듣다간 혁명을 완수하지 못할 것’이라던 레닌의 말을 평생 기억했다. 진정한 예술인의 삶이 모든 변화의 원천이라고 그는 믿었고, 그 믿음은 옳았다.
 
2024년 예산안이 발표되었다. 문화예술분야의 삭감된 예산을 보며 정말 이것이 한류의 본산국인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칸영화제 수상자들과 영화계 인사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영화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일이 있다면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드리겠다고 약속한 말이 모두 허언이었는지 의심케 한다. 코로나19 이후 위기에 빠진 한국영화산업을 이대로 매장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문화체육관광부의 전체 예산이 전년도 대비 3.5% 증가함에도 문화예술 분야가 1.9% 감소한 이유에 대해 윤 정부는 반드시 해명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의 콘텐츠가 세계적 위상을 얻게 된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이 바로 ‘리얼리즘’이다. 가상의 현실을 다루되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반영하는 능력에 대한 인정이다. 그러나 그 현실은 풍자와 유머로써 무겁지 않게 많은 대중의 가슴에 가 닿는다. 당연히 국경과 이념을 초월해서 말이다. 국내 흥행은 실패했지만 칸영화제에서 12분간이나 기립박수를 받은 <거미집>을 다시 조명하고 싶은 것도 그래서이다. 엄혹한 시절을 버티며 지금의 한국영화, 한국문화를 있게 한 김열 감독 같은 이들을 보며 위기의 한국영화가 여기서 주저앉지 않을 것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굳이 부여하고 싶은 것이다. 이창동 감독이 진즉 말하지 않았던가. ‘영화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고. 그러니 두려워하시길. 질문을 던지는 것이 단지 영화만은 아닐 것이므로.
 
이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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