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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소통의 열쇠말-세대, 젠더, 노동, 인종
2023-10-27 06:00:00 2023-10-27 06:00:00
한 경제 매체에 실린 어느 회사 이야기다. 새로 발령 난 팀원 가운데 한 사람이 5시 20분만 되면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을 팀장이 보고 의아하게 생각해 그 이유를 물었다. 팀원은 “저녁 6시 퇴근 이후 통근버스를 타고 집에 귀가하면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저녁을 먹게 됩니다. 그래서 5시 20분 구내식당에서 미리 저녁을 먹습니다”라고 답을 했다.
 
팀장은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팀원 때문에 기가 막혀 “일과 시간에 밥을 먹으러 가면 안 된다”라고 주의를 줬지만 팀원은 “알겠습니다”라고 대답만 하고 구내식당 저녁 식사를 멈추지 않았다. 다시 한번 주의를 주자 팀원은 “팀장님 담배 피우러 자리 비우는 시간 다 합치면 몇 십 분이 될 텐데, 그건 업무 시간 아닌가요? 전 화장실 가는 것 빼고는 하루 종일 업무에 집중하는데, 담배 피우는 시간 대신 저녁 먹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큰 문제인가요?”라고 항변을 했다.
 
이 에피소드는 우리 시대 시니어와 주니어 사이 직장 내 소통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풍속도다. 팀장은 익숙한 상명하복 문화로 훈계하려 했지만 세대 가치가 전혀 다른 팀원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이제 소통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말 가운데 하나는 세대다. 
 
뿐만 아니라 젠더, 노동, 인종 역시 아주 예민하고 신중하게 소통이 이뤄져야 할 영역이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 젠더 이슈가 되는 사례를 자주 만난다. 어느 회사 사장님이 여직원에게 “여자치고는 일 잘해. 어떡하려고 그래, 남자를 빨리 만나야 돼. 걱정 안 돼? 왜 결혼을 못 했지? 남자 친구가 생기면 더 재밌는 인생일 텐데”라고 말했다가 성차별로 지탄을 받았다. 
 
2017년 어느 국회의원은 민주노총 총파업에 참여한 학교 비정규직 급식노동자들을 놓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급식소에서 밥하는 아줌마들. 솔직히 조리사라는 게 별 게 아니다.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다. 옛날 같으면 그냥 조금만 교육시켜서 시키면 되는 거다.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화가 돼야 하는 거냐?”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밥 짓는 노동을 한가한 소일거리 정도로 폄하하고 나아가 노동을 천시하는 인식이 사고의 밑바닥에 깔려 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었다.
 
경남 거제시의 한 시의원은 7000 명에 이르는 지역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조례안 심사 자리에서 “베트남 애들 10명 중의 1명은 뽕을 합니다…걔들이 4~5명씩 모여 다니면서 침 뱉고 슬리퍼 끌고 시내 다니면 우리 관광 이미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라는 발언을 쏟아냈다. 외국인 혐오와 노동 혐오가 겹친 결과였다. 
 
올해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 담당자가 ‘실업급여 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한 발언은 여성과 노동에 대한 공공의 편견과 혐오가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저희 고용보험이 생긴 목적에 맞는, 그런 남자분들 같은 경우 정말 장기적으로 갑자기, 그런 분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오시는데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은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옵니다. 그 다음에 실업급여를 받는 도중에 해외여행 가요. …샤넬 선글라스를 사든지, 옷을 사든지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이 모든 불통의 원인은 하나다. 올곧은 생각을 올곧은 방식으로, 지당한 말씀을 지당한 방식으로 전한 것이다. 올곧음과 지당함의 기준이 지독한 자신의 편견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말이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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