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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샘 스미스, 황금빛 조형으로 빚은 '언홀리한 질문'
올해 그래미 수상…논 바이너리·바디 포지티브 선언
망사까지 8차례 의상 변화…"사랑과 자유 가져가길"
2023-10-19 16:15:53 2023-10-19 16:15:53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입틀막(입을 틀어 막는)' 수천 관중이 눈 앞에 동시 펼쳐진 이 광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파격에 파격, 다시 파격을 더한 의상과 퍼포먼스는 인류가 수십세기 동안 묻어둬온 금기의 환기이자 질문.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레이디 가가의 생고기드레스나 마를린 맨슨의 악마주의까지는 아니어도, 최근 몇년 간 한국에서 펼쳐진 공연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실험적이고 충격적이었습니다.
 
17~18일 이틀 간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샘 스미스의 내한 공연 말입니다. 
 
영국 출신의 이 팝스타는 지금 세계적으로 뜨거운 음악가 중 한 명입니다. 2014년 데뷔해 아델(35)과 함께 영국식 소울·팝 발라드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 잡힌 지 오래입니다. ‘Stay with Me’, ‘I‘m Not the Only One’은 21세기 발라드 중 메가 히트곡. 5개의 그래미를 비롯해 브릿 어워드, 아카데미, 골든글로브(‘007 스펙터’ 주제곡) 트로피를 휩쓴 장본인입니다. 
 
17~18일 이틀 간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샘 스미스의 내한 공연. 사진=AEG 프레젠트
 
2018년 첫 내한 공연에서 보여준 그 가을밤의 애수 짙은 감성, 감미로운 비단결 음색으로 기억하는 국내 팬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올해 1월 발표한 4집 '글로리아(Gloria)'부턴 본격 파격적인 변화를 꾀했습니다. 이 음반 수록곡 '언홀리(Unholy)'로 그래미 어워즈의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상(공동수상한 킴 페트라스는 트렌스젠더 여성 최초의 그래미 수상)도 받았습니다. 데뷔 초 날씬하고 말끔한 슈트차림에서 이제는 드래그퀸(연극적인 여장 남자) 분장을 한 가수로, 논바이너리(남녀라는 이분법적 성별에서 벗어난 제3의 성)와 바디 포지티브(몸 긍정주의)를 선언한, 일견 '불경한(Unholy)' 음악에 세계는 열광 중입니다. 
 
인간의 몸 개념을 다시 환기시키려는 까닭일까. 이날 성인 입장 팔찌를 차고 들어서자마자 무대 정중앙 거인이 누워있는 듯한 형상을 황금빛 조형물로 만든 무대 장치가 유독 눈길을 끌었습니다.
 
'또각또각' 여성의 구두 소리로 문을 연 공연 초반은 5년 전 무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기본 밴드 사운드와 가스펠적 합창단의 화음을 베이스로 자신의 팔세토식 창법에 조화시키는 식. 사랑의 달콤함과 이별의 씁쓸함을 감싸안 듯, 깊어가는 가을밤의 애수를 치즈 케익 같은 달콤함으로 노래하는 ‘스미스식 연가’. 포문을 연 'STAY WITH ME'와 'I'M NOT THE ONLY ONE' 같은 데뷔 초기작들부터 'DANCING WITH A STRANGER'까지 이어가는 동안, 완전무결한 라이브 실력과 비단결 음색을 연신 뽐냈습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날 공연은 1부 'LOVE'를 지나 2부 'BEAUTY'와 3부 'SEX'를 지나는 동안, 의상과 수위가 점점 더 거세지는 형태로 나아갔습니다. 비단결처럼 미끄러지는 스미스의 고음 가창은 큰 차이가 없었으나, 기사 작위 같은 은색 상의에 웨딩드레스를 매칭시킨 의상부터 포실포실한 분홍색 털 롱드레스, 망사까지 총 8차례 극적인 패션과 퍼포먼스로 달라진 음악 세계관을 체감케 했습니다. 2부와 3부 전환에서는 직접 쓴 시를 화면상으로 흘리며, 성스러운(홀리한) 가스펠 사운드가 암전 속 돔 전체를 휘감는 연출도 선보였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이 자유를 가져갔으면 합니다. 일어나든, 춤을 추든, 노래를 따라 하든 마음대로 하세요. 그리고 서로 사랑해요.”
 
17~18일 이틀 간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샘 스미스의 내한 공연. 사진=AEG 프레젠트
 
얼굴만 보이는 성경 속 신화에나 나올 법한 의상으로 문을 연 'GLORIA'에서는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댄서들에게 찍게 하는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망사 스타킹 차림으로 재차 분장한 뒤에는 마돈나의 곡 ‘Human Nature(1994년)’의 "당신을 드러내요, 당신을 억압하지 마요"라는 구절을 읊으며 웃통을 벗고 농염한 댄스를 춰보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곡이자 피날레 'UNHOLY'에선 빨간 조명 속 뿔이 달린 모자와 창을 들고 열창했습니다. 
 
성별의 경계란 무엇이며, 추악하다고 판단하는 외모의 기준은 무엇인지, 스미스와 댄서들의 퍼포먼스는 계속 인류의 금기에 도전하는 듯 했습니다. 그 유려한 목소리와 파괴적인 몸짓들로.
 
이날 공연을 보는 내내 4년 여전 한국 땅을 처음 밟은 아르카(Acra) 무대가 번뜩 떠올랐습니다. 대형 화면에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이미지들이 카메라 플래쉬처럼 반짝이며 성 정체성 문제를 설복하던. 
 
삶이 지닌 문제, 불규칙한 혼돈의 세계들을 새로운 형태로 정의내리는 것, 불경과 신성을 재단치 못하는. 어쩌면 그것은 공연예술과 문화 만이 해낼 수 있는 저항이자 도전이 아닐는지. 
 
17~18일 이틀 간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샘 스미스의 내한 공연. 사진=AEG 프레젠트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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