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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전쟁과 윤리적 자제
2023-09-12 06:00:00 2023-09-12 06:00:00
우크라이나 전쟁이 선을 넘고 있다. 지난 9월 6일 바이든 행정부는 ‘더러운 폭탄(dirty bomb)’으로 불리는 열화우라늄탄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열화우라늄탄은 우라늄 농축과정에서 추출된 원료로 만든 포탄으로 화학적 독성 때문에 유해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무기다. 폭발 과정에서 나온 방사능 먼지가 악성 종양, 선천적 기형, 불임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있으며, 토양 및 지하수를 오염시킨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냉전 시대 개발되어 1991년 걸프전 때 처음 등장했고, 1998년 코소보전쟁에서도 사용되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런 윤리적 문제와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열화우라늄탄을 지원키로 한 것은 폭탄의 높은 관통력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기로에 서 있는 이때에 러시아의 요새화된 방어선을 뚫기 위해서는 장갑차나 전차의 철판을 뚫을 수 있는 보다 강력한 무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지난 7월 미국이 집속탄(cluster bomb)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로 결정할 때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하나의 폭탄 안에 수백 개의 자탄이 들어 있는 집속탄은 모폭탄이 상공에서 터진 뒤 그 속에 있던 새끼 폭탄이 쏟아져 나와 사방으로 흩뿌려지면서 광범위한 파괴를 내는 무기다. 집속탄 1개만으로 축구장 3배 면적을 초토화시킬 정도로 파괴력이 크다. 집속탄이 문제가 되는 것은 소형 자탄의 상당수가 불발탄으로 남아 마치 지뢰처럼 민간인을 희생시킨다는 점이다. 새끼 폭탄의 불발률이 최대 40%에 달하는데, 2차 대전 이후 집속탄으로 인한 민간인 사상자는 5만 5천에서 8만 6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베트남 전쟁 때 사용된 집속탄으로 라오스에서는 2008년까지 연간 수백 명이 사고를 당했으며, 현재도 터지지 않은 불발탄이 시한폭탄처럼 곳곳에 남아 있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가 집속탄 지원을 결정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탄약 부족 문제를 계속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전쟁이 터지면 전략적 요구 앞에 윤리적 고려는 밀릴 수밖에 없는가? 미국 내부와 일부 우방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는 연이어 비윤리적 무기를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하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에 대해 누려오던 미국의 도덕적 우위가 훼손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미국만이 아니다. 나토 회원국 중 열화우라늄탄을 우크라이나에 처음 지원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지난 3월 영국의 지원이 알려지자, 러시아는 핵 충돌이 가까워졌다고 반발한 바 있다. 물론 국제법을 위반하고 전쟁규범을 가장 노골적으로 무시한 나라는 러시아다. 애초에 주권국가의 영토적 존엄성을 무시하며 침공을 감행했고, 발전소, 학교, 병원 등 민간시설에 대한 무차별 폭격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집속탄의 경우도 러시아는 이미 무차별적으로 우크라이나를 향해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해 바흐무트 격전 등 동부 도시 초토화과정에서 집속탄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것이 국제 인권단체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정도의 차이일 뿐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윤리적 고려는 점차 뒷전으로 밀리는 모양새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허용되지 않는 행위가 있다는 것이 근대 이후 정립된 국제규범이다. 무엇보다 전투원과 비전투원은 구별되어야 하며, 민간인 희생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전쟁의 실체는 이와 다르다는 것이 안타까운 역사적 교훈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가 가장 극적인 예다. 히로시마 도시 인구 30%에 해당하는 7만여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는데, 그 희생자 대부분은 군수노동자를 포함한 민간인들이었다. 원폭 투하 전에 핵무기의 위력을 일본에 경고하기 위해 공개 시연하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결국 직접 사용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또한 민간인 희생을 줄일 수 있었던 사전 경고는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 일본이 겪을 심리적 충격을 극대화하여 항전 의지를 꺾는 것이 원폭 투하의 목적이기 때문이었다. 나토의 세르비아 공습 때도 윤리적 고려는 부차적이었다. 78일간 3만 5천여 회에 걸쳐 이루어진 공습으로 민간인 500여명이 사망했는데, 그중엔 실수로 인한 오폭도 있었지만 발전소, 방송국 등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민간시설에 대한 의도적 공격도 있었다. 
 
어쩌면 전쟁에서 윤리를 기대하는 건 이상주의에 불과할지 모른다. 전쟁 자체가 비윤리적이고 비인도적 행위다. 전쟁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는 것, 애초에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인도주의의 발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져야 할 ‘윤리적 선’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 둘씩 지워져 가는 건 좋은 징조라고 할 수 없다. 이제 남아있는 궁극의 대량살상 무기는 핵무기다. 러시아는 여러 차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하며 핵 공갈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나토의 군사개입에 대한 경고 성격으로 실제 실행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된다. 또한 핵무기에 대해서는 도덕적 혐오가 다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점도 위안이 된다. 그러나 전황이 절박해질 때, 전략적 요구가 엄중해 질 때 ‘핵 금기(nuclear taboo)’라는 윤리적 억제가 계속 작동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신뢰할 수 없는 윤리적 자제가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르기 전에 전쟁이 하루 속히 끝나길 바랄뿐이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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