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권익도의 밴드유랑)넬, 조명으로 설계한 '3막의 우주'
넬 단독 콘서트 '번'…인테리어 소품으로 조명 재창조
꽉찬 음압의 록 사운드…마이크 터지기도
대중음악 공연의 미답지 개척 "작은 불씨 하나 삶 바꿀 수 있어“
2023-09-01 00:00:00 2023-09-01 17:14:06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시작은 실루엣, 거대한 흰색 천막 뒤 멤버 그림자들이 드럼 비트에 맞춰 쪼개지던 연출의 미학.
 
강렬한 네온 색감처럼 번져가는 신곡 'Wanderer'의 시퀀스 사운드(컴퓨터 프로그래밍), '시뮬레이션 띠어리(Simulation Theory·우리가 사는 세계가 사실은 고차원 지성체의 모의실험으로 만들어진 가상세계라는 이론)'에 영감을 받은 이 곡과 함께 막이 오르자 여기저기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평소 좋은 공연이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것과 같은 경험이라 생각해왔습니다. 혹은 아이슬란드의 오로라 같은 대자연 풍경을 갑작스레 맞닥뜨릴 때 뛰는 두근거림 같은 것이랄까요. 지난 18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노들섬라이브하우스에서 총 6차례에 걸쳐 열린 록 밴드 넬(NELL)의 단독 콘서트(Burn)'에서 총 '3막 구성' 식으로 연출의 변주를 꾀할 때마다, '역시 넬 공연은 다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지난 18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노들섬라이브하우스에서 총 6차례에 걸쳐 열린 록 밴드 넬(NELL)의 단독 콘서트 ‘번(Burn)'.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하쿠나마타타
 
특히나 기존 체육관이나 큰 규모의 극장에서 진행하던 방식과는 달리, 클럽 공연 분위기로 더 날카로운 밴드 사운드에 다가갈 수 있도록 조명과 사운드, 분위기를 셋팅한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만난 모던 록 밴드 넬(NELL) 멤버들, 김종완(보컬이정훈(베이스이재경(기타) "기존 인테리어 용품들을 재제작해 새로운 조명 연출을 해보고 싶었다. 영상이 없더라도 즐길 수 있는 클럽 공연, 색다른 조명을 제작해보는 공연 형태를 구상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이날 흰색 천막이 걷힌 1막 이후, 두 번째 곡 'Dear Genovese' 때부턴 통상 인테리어 용품으로 쓰이는 타공판(철망)을 조명 앞에 덧대 공연장을 기묘한 분위기로 바꿔놨습니다. 철망 사이로 투과하는 조명은 이내 빛과 그림자를 넘나들며 우주적 풍경을 만들었습니다. 세번 째 곡 'Dream Catcher' 때부턴 2, 현수막에 가려진 그래피티 형태의 대형 글자 'BURN'이 흡사 뱅크시의 작품처럼 현수막 위에 서서히 쏘아올려지며 서서히 선명해졌습니다. 마지막 3막 격인 중반 부 'Starshell'부터 밴드는 아예 현수막마저 떨어 뜨리며, 뒤에 배치된 수백개의 조명을 음악에 뒤섞어 냈습니다.
 
지난 18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노들섬라이브하우스에서 총 6차례에 걸쳐 열린 록 밴드 넬(NELL)의 단독 콘서트 ‘번(Burn)'.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하쿠나마타타
 
지난해에도 멤버들은 억대에 달하는 투자액으로 국내외 대중음악계에서 처음 시도되는 아크릴 조명을 직접 창작한 바 있습니다. '조명의 우주',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아이디어로 '공연도 창작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이들은 증명합니다.
 
1999년 결성. 2002년 서태지의 인디레이블괴수인디진합류. 2016년 독립레이블 스페이스보헤미안 설립. 2001 ‘Reflection of’ ‘Speechless’로 시작해 지난해 ‘Moments in between’까지 총 9개의 정규작과 데뷔 24주년인 이들은 대중음악 공연의 미답지를 개척해왔습니다. 직접 본 메탈리카, 디페쉬 모드, U2 공연 같이온 몸에 전율이 일던 경험을 추구합니다. 기승전결의 알찬 공연 구성과 화려한 무대 연출은 해외 록, 팝스타들의 내한무대를 보듯 현란합니다.
 
지난 18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노들섬라이브하우스에서 총 6차례에 걸쳐 열린 록 밴드 넬(NELL)의 단독 콘서트 ‘번(Burn)'.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하쿠나마타타
 
‘지금의 넬 사운드로 편곡하거나 새로운 연출을 위해 아이디어 회의를 수개월에 걸쳐 진행하는 것은 '직업으로서의 음악가'인 이들에게는 필수입니다. 이번 공연에선 날 선 초기작('Take Me With'-'기생충')부터, 대체로 지글거리는 록 사운드에 최적화된 음악들('Burn', '부서진', 'Starshell', 'All this fucking Time')을 라이브로 들려줬습니다. 밴드 피아 출신이자 서태지 8집 음반 녹음에 참여한 바 있는 드러머 양혜승은 쇠팔을 휘저으며 천둥 리듬을 쪼개댔습니다. 새 기종의 텔레캐스터를 기반으로 한 꽉 차고 쨍한 사운드를 느껴지게 했습니다. 실제로 27일 마지막 곡 '기생충' 땐 드럼 세트 내 심벌 마이크가 터져버릴 정도로 꽉 찬 음압으로 관객들과 하나됐습니다.
 
"저희도 어릴 때 홍대 '피드백'이라는 클럽 공연장에서 관객 3~4명 앞에 두고 음악을 했던 때가 있었어요. 그리고 오아시스(영국 브릿팝밴드)의 인터뷰를 보고 '저런 마인드라면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의도치 않게 작은 불씨 하나가 삶을 바꿔 놓을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넬의 공연이 또 다른 작은 불씨 하나가 되지 않을까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은 거니까.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나비 같은 몸짓처럼
 
록밴드 넬.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하쿠나마타타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