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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카운트’ 진선규, 평양냉면 같은 이 남자의 매력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 박시헌 선수 실화 모티브
첫 주연 떨리는 마음…“시헌 선생님 문자 받고 울컥해 눈물날 뻔”
2023-02-17 07:07:07 2023-02-17 12:06:2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평양냉면 맛도 모르면서 무슨 인생의 맛을 논하냐”라고 어느 선배가 했던 말을 떠올려 봅니다. ‘슴슴하다’란 북한말이 이렇게 대중적으로 일반화된 건 당연하게도 ‘평양냉면’의 매력 때문일 듯합니다. 누군가는 평양냉면의 국물을 ‘행주 빤 물’이라고 진저리를 치지만, 또 누군가는 ‘그 맛에 한 번 중독되면 헤어나올 수 없다’고 숱하게 권하는. 그런 맛과 멋과 매력의 3박자를 하나로 묶어 버린 ‘슴슴하다’란 단어. 사실 취향을 앞세운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평양냉면’의 맛과 멋과 매력을 알기는 쉽지 않을 듯 합니다. 하지만 이 배우의 존재감을 떠올리면 매콤하고 칼칼한 느낌의 짬뽕 칼국수가 생각날 듯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자꾸만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이 머리 속에서 회오리치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정말 그랬었습니다. 실제 조선족 조폭인 줄. 하지만 영화 속 까까머리를 하고 무대에 올라 “저 조선족 아니에요”라고 눈물 흘리며 수상 소감을 펼치던 그 모습이 ‘슴슴하다’ 원천 소스였단 걸 그땐 당연히 몰랐습니다. 그리고 한 참 후인 요즘에서야 ‘그때 그 맛이 지금의 이 맛이었구나’를 깨닫게 만든 시작이었단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데뷔 이후 길고 긴 무명의 터널 끝에서 만난 첫 주연작 ‘카운트’의 맛이 왜 그토록 슴슴했는지 알 것 만 같았습니다. 아니 ‘그래서 이랬구나’라고 알게 된 ‘카운트’였습니다. 배우 진선규의 슴슴함은 변치 않는, 그리고 절대 끊을 수 없는 중독의 중독을 불러 일으킵니다. 평양냉면의 맛은 몰라도 진선규의 연기 맛을 알게 된 ‘카운트’입니다.
 
배우 진선규. 사진=CJ ENM
 
‘카운트’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복싱 금메달을 땄지만 당시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판정시비 논란을 불러 일으킨 금메달 복서 박시헌 선수 얘기를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입니다. 7080세대들에게 박시헌 선수는 분명 낯선 인물은 아닙니다.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였지만 지금도 비운의 복서란 타이틀이 붙어 있는 선수. 이 선수의 얘기를 통해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드는 걸까. 진선규는 자신이 연기한 박시헌 선수와의 실제 대화 내용을 전했습니다.
 
“저야 연기만 하는 배우이기에 과정은 잘 몰랐지만 박시헌 선생님이 영화화에 반대를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뭐 좋은 얘기라고…’라면서. 너무 가슴 아프죠. 제가 뭐라 말씀을 드릴 건 없지만, 극중에 ‘이게 은메달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란 말. 실제로 선생님이 하셨던 말이고 진심이셨다고. 표면적으론 금메달이고 1등인데, 그 1등 때문에 그렇게 사랑했던 복싱을 내려 놓으셨 잖아요. 도대체 그 세월을 어떻게 사셨을까. 전 가늠도 잘 안되더라고요.”
 
배우 진선규. 사진=CJ ENM
 
결국 감독과 제작사 대표의 간곡한 설득에 박시헌 선수는 영화화를 승낙했다 합니다. 우선 박시헌 선수는 서울올림픽 이후 선수 생활은 거의 하지 못했지만 이후 세월이 흘러 코치와 감독으로 복귀해 대한민국 복싱 대표팀 총감독 자리에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실패한 삶에 대한 상업적 풀이가 아닌 포기하지 않았던 한 남자의 꿈과 바람을 통한 뜨거움을 담아낸 영화에 박시헌 감독은 마음을 움직인 듯했었습니다.
 
“진짜로 그러셨던 거 같아요. 본인에겐 너무 아픈 기억인데, 그걸 굳이 다시 꺼내시는 게 당연히 부담이고 싫으셨을 거에요. 그런데 영화의 취지나 그런 부분을 공감 하셨나 봐요. 저 실제로 처음 만났을 때 진짜 가슴 떨렸어요. 참고로 저도 복싱을 오래 했어요. 그저 취미이긴 한데(웃음). 몇 년 했거든요. 하하하. 선생님께서 영광스럽게도 미트도 한 번 잡아 주셨거든요. 제가 원투와 잽을 몇 번 때렸는데. ‘허투루 배우신 게 아닌데’라면서 칭찬해 주셨어요. 진짜 너무 영광이었죠.”
 
배우 진선규. 사진=CJ ENM
 
진선규가 ‘카운트’에서 박시헌을 연기하기 위해 고민했던 건 외모 또는 외형이 아니었습니다. 참고로 실제 모델 이름도 ‘박시헌’이고 극중 배역 이름도 같은 ‘박시헌’이었습니다. 그만큼 진선규에겐 부담이 더 커진 셈입니다. 그는 버티고 버티면서 자신의 꿈을 위해 포기하지 않던 인간 박시헌의 모습에서 어쩌면 자신의 과거를 본 것 같기도 하다며 공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잡아낸 포인트는 내면 그리고 성격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되게 잘 생기셨어요(웃음). 저랑은 조금도 닮은 게 없으세요. 하하하. 당연하게도 외형을 모사할 생각은 애당초 생각도 안했어요.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하지. 시나리오에 나온 것들 중에 끈기와 성실함 그리고 가치관 등을 제가 배우를 하기 위해 버텨온 것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의 곁은 지켜 준 가족들 모습도 저와 비슷하고. 더군다나 저도 선생님과 같은 진해 출신이에요(웃음). 아마 퍼센티지로 말씀드리면 선생님과 내적인 부분의 닮은 꼴은 100중에 90 이상이지 않을까요. 하하하.” 
 
배우 진선규. 사진=CJ ENM
 
그는 이번 ‘카운트’에서 메인 입니다. 주연입니다. 데뷔 이후 처음입니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다른 영화의 인터뷰와는 체감 자체가 너무 다르다’고 눈에 보일 정도로 떠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범죄도시’에서 조선족 조폭 ‘위성락’을 연기한 그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참고로 진선규, 기자들 사이에선 착하다 못해 비단결 같은 마음으로 통하는 가냘픈 마음의 소유자로 유명합니다. 주변 누구에게도 얼굴을 찡그리지 못하고 또 화를 내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연으로 이번 영화 현장에서 웃지 못할 상황도 정말 많이 겪었답니다.
 
“제가 진짜 어디에서도 중앙에 위치해 본 적이 없어요(웃음). 중앙에서 누구를 이끌고 제가 뭘 정하고. 그런 건 태어나서 해본 적도 없고. 한 번은 현장에서 스태프 분이 식사 시간이 됐는지 ‘배우님 점심은 주변 어디로 잡을까요’라고 묻는 거에요(웃음). 제가 너무 당황해서 ‘아니 그걸 왜 저한테’라고 말해 버렸어요. 하하하. 평균적으로 현장에서 식사 시간이 되면 주연 선배님들에게 먼저 물어보는 게 예의 잖아요. 근데 ‘카운트’에선 제가 그 자리였어요. 아우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이상해서 으~~~(웃음)”
 
배우 진선규. 사진=CJ ENM
 
앞서 언급한 내용은 에피소드일 뿐이었습니다. 사실 진선규도 주연을 꿈꾸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지금의 자리가 어색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도움도 많이 주고 응원도 많이 해주기에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고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더 멋지게 소화하고 더 멋지게 버티는 걸 체득하고 있는 중이라 합니다. 그는 그래서 주연이 됐고, 또 그 자리에 있으니 과거 무명의 단역 시절 막연하게 상상만 했던 일을 이번 현장에서 해봤다며 배시시 웃습니다.
 
“제가 진짜 정말 오랫동안 무명의 단역 생활을 거쳐 왔잖아요. 그분들에게 주연 배우가 말 한 번 건내고 대사 한 번 맞추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아요. 영화가 주연 배우 혼자 잘 한다고 되는 작업이 절대 아니에요.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연기는 없다고 하잖아요. ‘카운트’에서 계속 단역 배우 분들과 대사도 맞춰보고 또 식사 시간에 함께 어울리고. 그러면서 각각의 모든 배우 분들의 역량을 끌어 내는 데 작은 힘이지만 보태고 싶었어요.”
 
배우 진선규. 사진=CJ ENM
 
그는 자신의 아내인 배우 박보경이 자신의 곁에서 묵묵하게 버티면서 지금의 진선규가 있기까지 응원해 준 것처럼 실제 박시헌 감독이 선수 시절 겪었던 힘든 일을 곁에서 지켜 준 사모님이 너무 대단한 분이라고 추켜세웠습니다. 극중에서 자신의 아내를 연기한 친한 동료이자 개인적으로 누나 동생 사이인 오나라와의 호흡을 떠올리는 진선규는 박시헌 감독의 실제 아내 사연이 이번 영화에 고스란히 담긴 점을 거론하면서 박시헌 감독이 시사회 당일 전해 준 문자를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나라 누나가 제 와이프를 연기했는데, 결혼하고 신혼여행도 안간 점. 절대 미국은 안 간다고 한 점. 선생님 연금 통장 손도 안댄 점. 결혼식도 못 올리고 지내신 점. 모두 실제 사모님 사연이에요. 사실 사모님은 아직도 영화를 못 보시겠다고. 너무 가슴 아팠고 힘드셨으니. 그 마음이 너무 와 닿죠. 그래서 저도 더 부담이 됐고. 시사회날 너무 떨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선수가 링 위에 올라가기 전에 떨면 안되다’라고 용기를 주신 문자를 보고 저도 모르게 터졌어요. 정말 좋은 영화란 평가를 받고 싶어요. 제가 연기한 박시헌이란 한 남자의 얘기가 우리 모두의 가슴을 울리는 뜨거운 얘기로 다가섰으면 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성남 엔터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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