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토마토초대석)하신아 웹툰작가노조 국장 "플랫폼 큐레이팅 배치구조…작가 자기착취 고착화"
국감 참석해 창작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제기 예정
작가들, 컷수 상한선 없는 무한경쟁으로 과도한 업무량 시달려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에 유급 휴재권도 없는 실정
"불공정 계약 관행 여전…자율보단 법적으로 노동권 보장해야"
2022-10-04 06:00:09 2022-10-04 06:00:09
[뉴스토마토 이선율 기자] "웹툰·웹소설과 같은 큐레이션형 플랫폼들은 큐레이팅(작품을 수집, 선별해 배치)하는 것이 곧 권력이 된다. 수만여개 작품중 몇개의 작품만 올리다보니 해당 배너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플랫폼에 복종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사무국장은 웹툰 플랫폼의 이 같은 구조가 창작자들을 무한경쟁에 내몰아 과다한 노동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짚었다. 매주 수천여개의 웹툰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한정된 배너 자리에 자신의 작품이 노출되게 하고 또 수익을 올리기 위해선 플랫폼들이 과한 요구를 하더라도 거스르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하신아 웹툰작가노조 사무국장이 인터뷰 후 웹툰 작업을 하는 모습. (사진=이선율 기자)
 
웹툰·웹소설 작가로 활동중인 하신아 사무국장은 웹툰산업에 오랜 기간 몸담아오며 작가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오랜 기간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인물이다. 1997년 만화 스토리 작가로 데뷔, 2013년 웹툰·웹소설 작가로 전업했고, 이후 2020년 웹툰작가노동조합 설립에 참여해 사무국장으로서 현장의 창작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듣고 알리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지난해 국감에선 웹툰시장의 불공정 계약 관행 해결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중재 하에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과 '웹툰 상생협의체'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올해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에선 참고인으로 참석해 창작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제기에 나선다.
 
창작자들의 건강권 문제가 올해 국감의 이슈로 급부상한 이유는 최근까지도 웹툰 창작자들의 과로사 문제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카카오페이지 웹툰 '록사나'의 작화 작가가 유산 후에도 작품 연재를 계속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고,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웹툰 '나혼자만 레벨업'을 연재했던 장성락 작가는 불과 37세에 지병으로 사망해 과도한 노동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공론화됐다.
 
하 국장은 "카카오페이지에선 지난해 기준 6만7000개 규모의 웹툰이 있는데 주제별로 설정된 6개의 배너 자리에 하루, 몇시간이라도 올라가지 못하면 내 작품은 어디 있는지 모르고 묻히게 된다"면서 "관계자를 통해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이에 대한 기준, 알고리즘이 없고, 카카오가 직접 권한을 가지고 뽑는다 들었다. 로맨스·판타지가 잘나가니 그런 장르 위주로 배너에 많이 올라갔는데 지난해 관련 매출이 반토막 났다"고 말했다. 
 
하신아 국장이 플랫폼의 큐레이팅 과정에서 배치된 6개의 배너 작품을 보여주는 모습. 수만여개 웹툰 중에서 겨우 6개의 웹툰만 배너 자격을 얻어 추려지고 있다면서 관련 기준은 공개되지 않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사진=이선율 기자)
 
 
창작자가 채워야 하는 컷수와 관련해서도 플랫폼들이 사실상 컷수 상한 제한을 두지 않고 있어 작가들을 자기 착취로 내몰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하 국장은 "웹툰 컷수는 제한이 없다보니 대다수 작가들은 한회당 100컷, 120컷 내외의 과도한 업무량을 소화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수익에 직결되는 문제인 데다 상한이 없다보니 양을 늘리는 방법으로 자기 착취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플랫폼사는 강제하는 부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조회수, 유료결제 순위 등이 시시각각 나오는 등 치열한 경쟁에 놓인 창작자들은 웹툰 컷수를 늘리면서 더 화려하게 작화를 해야 이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 국장은 웹툰 창작 근로자에 대한 규정, 유급휴재권 개념, 창작에 대한 대가 산정방식 등이 명확하게 규정돼있지 않아 열악한 근무환경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봤다. 하 국장은 "실제로 우리 웹툰작가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업무를 하고 있다. 사실상 자는 시간 빼곤 거의 쉬지 못하고 일하고 있는 셈인데, 계속 소진되는 느낌을 받고 있으면 아이디어도 잘 나오지 않는다"면서 "평균 노동시간과 산출되는 노동량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명확한 실태조사부터 해야하고 이를 기반으로 유급 휴재권 등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논란이 됐던 플랫폼·CP(에이전시)와 창작자간 불공정 계약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은 실정이다. 특히 만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후차감 MG(최소 개런티) 방식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하 국장은 "후차감 방식의 MG가 가장 큰 문제인데, 선지급된 돈의 두배만큼 수익을 내야 판매수익을 나눠주는데 그건 리스크를 작가한테만 부과하는 것이다. 게다가 굿즈, 해외 판권 등 2차 권한까지 통으로 계속 수익을 차감해가는 계약도 있다"고 꼬집었다. 
 
스타 작가의 경우 후차감 MG 방식에선 수수료를 더욱 높게 떼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하 국장은 "제보에 따르면 네이버는 수익 구간별로 수수료를 다르게 징수하고 있는데, 1억 이상 수익을 내면 40% 수수료를 떼간다. 30% 계약인 데도 1억이 넘으면 그렇게 떼어간다는 것"이라며 "많이 벌었다고 많이 떼어간다는 논리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카카오의 경우 수수료는 30%인데, 기다리면 무료 등 배너나 프로모션에 걸리면 45%를 떼어간다는 식으로 계약조건이 제각각인 것도 문제점으 꼽았다. 
 
결국 하 국장은 신산업인 웹툰 및 웹소설에 대해 별도의 법안 마련을 통해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만화진흥법과 같은 기존의 법안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별도의 법규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웹툰법(가칭)'을 이달 중으로 발의할 예정이다. 하 국장은 "웹툰, 웹소설은 새로 성장한 신규 콘텐츠로서 기존 법 개정으론 문제 해결이 어렵다. 웹툰·웹소설 창작 근로자의 개념과 표준 규격 등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면서 "네이버, 카카오는 대표 K웹툰 플랫폼으로서 먼저 자리잡은 상황에서 웹툰법이 생긴다면 전세계에서 한국이 모범사례로 남게 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생산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고 이후 수익에 대한 공정한 분배를 약속하는 일, 더 나아가 웹툰 불법 유통 문제가 더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지켜주는 안정적 웹툰 시장이 형성되는 것을 바란다"며 "그래야 창작자의 실질적 자유가 보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당하게 계약해지를 하는 일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도록 법적으로 노동권 보장이 돼야한다"고 덧붙였다.
 
이선율 기자 melody@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